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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틈새, 그 공간이 빚는 격렬함

구름뜰 2009. 8. 15. 08:45

제9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⑤ [중앙일보]

2009.08.15 01:24 입력 / 2009.08.15 06:51 수정

너와 나의 틈새, 그 공간이 빚는 격렬함
시 - 김행숙 ‘따뜻한 마음’ 외 19편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 외로워졌어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너의 얼굴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미소는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은

회오리처럼

마음이 세차게 몰아닥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수수께끼의 형상으로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 -


흔히 마음은 문이 단단히 달린 집인양 표현된다. 그러나 김행숙(39·사진) 시인이 그리는 ‘마음’은 무정형의 것이다. 얼어붙었을 때 오히려 고정되고, 녹아내리면서 어디론가 달아나버리는, 그런 것이다. 그런 마음의 형상이란 타인과의 관계, 만남에서 빚어진다. 그래서 시인은 ‘너’를 이야기한다.

“‘너’가 매우 가까운 존재로 느껴져요. 너와의 관계로 인해 내 형상이 유지되고 반응하고 느끼는, 그런 존재.”

흔히 ‘너’란 부재하는, 먼,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남들이 너와 나의 거리를 말하는 동안 시인은 아주 가까운, 그러나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빚어내는 ‘틈’을 이야기한다.

“나와 다른 존재와의 사이, 그 틈은 아주 좁으면서도 감각·사유의 운동이 일어나는 격렬한 공간이지요. 너와 내가 엉켜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컴컴한 마룻바닥에서 “은빛 칼처럼 빛이 쑥 올라오는 틈새”(‘어두운 부분’)나, 환한 빛 속에서 포옹한 두 사람의 접촉면이 만들어내는 어둠처럼.

이광호 예심위원은 “따뜻한 마음이라는 감정 혹은 정서는 관념에 속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어떤 순간의 반짝이는 이미지를 빌려 육체가 감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서로 재탄생시킨다”고 평했다. 이경희 기자

◆김행숙=1970년 서울출생. 1999년 ‘현대문학’ 등단. 강남대 국문과 교수. 시집 『사춘기』『이별의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