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오전 11시에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는 브런치 콘서트가 있었다. 이날<몰도바 국립 방송 교향악단 내한 공연>은 개관 20돌 생일기념공연이었다. 몰도바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해체로 독립된 나라다.
소프라노 장선화씨와 테너 정현수씨의 <타임투 세이굿바이>는 영혼을 울리는 듯한 선율과 두 사람의 완벽한 하모니까지 환상적이었다. 현장에서 듣는 음악이 감동을 더해 주는 경우는 이런 클래식음악회 같이 요란스럽지 않은 장르에서 제대로 느낄수 있고 가능한 몰입이어서 더욱 좋았다. 테너의 진중한 듯 사려 깊게 절제된 무대매너와,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소리와 부드럽고 따듯한 눈빛, 환한 얼굴까지. 여성만이 나타낼 수 있는 우아하면서도 명랑한 애교까지 섞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이든의 교향곡 제 45번 ’고별’ 4악장이 마지막 연주곡이었다. 곡이 연주되는 동안 30여명 의 연주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처음엔 별 관심 없는 듯 마에스트로 게오르게 무스테아 (1951년생)의 지휘는 계속된다. 중반부에 접어들 무렵, 퇴장했던 연주자 한명이 다시 나타나서는 연주자들에게 뭐하고 있느냐고 빨리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 퇴장한다. 그때부터 남은 연주자들도 더욱 스피드하게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그는 초조해 진다. 일어서는 연주자에게 애교스런 몸짓으로 가지 말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주먹을 쥐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지휘하다 말고 뛰어 내려가 붙잡아 보지만 소용없다.
음악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세 명의 연주자만 남는다. 그는 지휘를 포기하고 여성 바이올리스트 옆에 앉아서 쉬며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지없이 그녀도 떠나고, 낙심하여 축 처진 어깨로 앉았다가 깜빡 잠이 든다. 두 분 남은 연주자도 차례로 연주를 끝내고 퇴장한다. 그는 잠들어 있다. 잠시 뒤 다시 들어온 연주자 그를 깨워주고 자리를 뜬다. 잠에서 깬 그는 다시 단상에 올라 텅 빈 연주자석을 향해 지휘를 한다. 아무도 없자 살며시 몸을 돌려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지휘, 그러다가 쓸쓸히 퇴장한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고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완벽한 연출이라고 느껴질 만큼 곡과 잘 맞는 상황 극 같기도 했다. 원래 하이든의 고별은 이런 식으로 하는지 아니면 오늘 우리만 볼 수 있었던 퍼포먼스 인지는모르지만 매우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남성 연주자 몇 분을 불러내 인사를 시켰는데 갑자기 단상에 올라가서 인사해 보라는 제스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멋쩍어 하면서 퇴장한 이 연주자 다음 인사하는 이에게도 한 번 올라가보라고 괜찮은 것 같다는 몸짓으로 권하지만, 다음 연주자는 단상에 올리지 않고 객석 앞쪽까지 바짝 데리고 와 인사를 시킨다. 순간순간 재치 있고 뛰어난 순발력으로 지휘자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나는 무겁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감성에 충실하며 이완된 기분으로 제대로 즐긴 클래식이었다.
커튼콜도 여러 번 있었다. 앵콜을 4번이나 받는 탓에 공연시간이 길어졌다. 클래식이 이렇게 흥겨울 수가 있나 싶게 마에스트로의 역량이 돋보이는 연주회였다. 앵콜을 받을 때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는 표현을 몸짓으로 맘껏 표현했다.
앵콜곡이 다 끝나고 이번엔 보란 듯이 아까는 너들이 먼저 나갔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나간다는 당찬 몸짓이다.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듯 연주자들의 눈길이 마에스트로를 향하고. 이런 부분까지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밌었다. 객석은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클래식 음악이 아름다운 건 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아져서 일 것이다. 한곡 한곡을 위해 그들이 쏟아 부었을 피나는 노력을 생각하면 감동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 바이올린이 이렇게 가늘고 섬세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몰도바 교향악단> 연주는 뛰어났다. 관객에게 공감대를 형성해내고자 애쓰는 탈장르 분위기를 클래식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음악회였다.
가끔 이 도시에 사는게 정말 복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맑은 공기와, 서울권에서보다 더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지자체가 지원하고 미리 검증해서 선택하는 공연물들과 10분이면 가능한 금오산과 명품도시를 위해 애쓰는 여러 분야에서의 노력덕분에 시민들의 토양이 조금씩 기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수도권이 아니라도 누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공연이 끝나고 점심으로 햄버그와 음료수를 생일 턱으로 예술회관 측에서 나누어 주었다. 마로니에 잔디공원 벤취에서 늦은 점심을 즐기는 모습들도 보기에 참 좋았다.
글 사진 이미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