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여행을 많이 한다.
봄에 태어났는데, 그해 여름 보행기타고 서해에 서 있었다.
조금 커서는 아버지하고 여행을 다녔다. 둘이서 이발소 가서 머리 깍고, 사우나 가서 땀내고,
장난감이며 책들을 사러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어두워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방학만 되면 철저하게 집 떠나서 살았다.
그들은 크고 작은 섬들을 찾아가서 깊은 물속에 들어가서 놀았다.
낯선 바닷가에서 태풍을 만났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넜다.
알프스 산록의 작은 마을에서는 제 또래의 소년들과 만났다.
그들은 다른 기후, 다른 지형, 다른 문화속으로 겁 없이 들어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개학 전날쯤에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숨 돌릴 틈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 아이가 금방 소리치면서 나온다.
"엄마, 내 책 어디 있어? 내 교과서, 2학기 교과서 말이야."
나는 아이의 교과서 읽는 버릇이 있다.
"응? 교과서! 그걸 어디 뒀을까?"
한참 생각해도 기억이 멍할 뿐이다.
세식구가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2학기 교과서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여름 해는 어느덧 기울기 시작했는데, 식구들 마음은 급해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교보, 교보문고로 가자!"
누가 먼저 문을 열고 뛰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자동차를 차고에서 꺼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세 식구는 입은 옷 그대로, 현관문이나 닫았는지 대문은 잠갔는지 안중에도 없었다.
어쨌든 세 식구를 태운 차는 허둥지둥 광화문을 향해, 교보 책방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다음 날, 교과서를 한 짐 지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깜짝 놀랐어, 내 책 보고. 교과서를 아직 안나눠줬대......,"
김점선 - 점선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