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실컷 놀기만 하랬더니

구름뜰 2009. 10. 29. 08:40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교교육이 없으면 사람은 더 훌륭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집에서의 일상생활에서, 스승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제자를 대하듯이 경건하게 아이를 대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내가 독점해서 관리하고 있는 듯한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가 서너 살이 되니까 친구들이 유치원엘 가기 시작했다.

자기도 가겠다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첫 번째의 충격이었다. 하는 수없이 보냈다.

3년이나 유치원엘 다녔다. 아주 즐거워하면서.

 

친구들이 학교엘 갔다.

우리 아이도 당연히 자기도 학교에 가는 걸로 알고 들떠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또 기가 막혔다. 열심히 검정고시의 좋은 점을 얘기하면서

학교에 안 다니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 또 말했다.

 

그래도 아이의 들뜬 기대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도중에 언제든지 학교를 그만 둘 수 있다고 누누이 설명했다.

 

숙제도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더욱이 방학숙제는 처음부터 아예 잊어버리도록 애를 썼다.

 

우리아이가 열 살 되던 해 여름방학, 부모의 끈질긴 노력으로 방학을 통째로 놀아재꼈다.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산 속으로 냇가로 헤매고 다니면서 놀았다.

그런 아이를 우리는 '타잔'이라 부르면서 즐거워했다.

 

개학이 며칠 안 남은 어느 날 저녁, 처음으로, 난생처음으로 아이가 방 안에서 문을 잠갔다.

우리는 감짝 놀라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문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방바닥에 숙제를 쫙 펼쳐놓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엎드려서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방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김점선 - '점선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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