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인 큰 아이가 오랫만에 아빠 생일이라고 주말을 이용해 왔다.
지난 봄 엄마 생일에 선물을 못 해 줬다며 기억도 없는데 함께 준비해왔다. .
어버이날엔 커플티를 사 오더니 이번에 속옷 세트다.
속옷매장이 1, 2 층으로 구분되어 있어 아빠것은 당당하게 샀는데
2층 여성복 매장 방문은 쉽지 않았다며 문 닫을 시간쯤에 올라가서 샀단다.ㅎㅎ
엄마거라고 말하지 그랬더니 키와 몸무게만 얘기해주고 샀단다.
어쨌거나 속옷을 그것도 아들에게 받고 보니 기분이 좋다.
밤이 늦어 11시 반쯤에 귀가하는 우리집 막내 고 3
큰애는 동생을 보자마자 자신의 경험담을 진지하게 늘어놓는다.
교복도 안 갈아 입은 동생에게 건네는 말..
"권아 1시간이 1초처럼 흐르지?"
"......,"
"형아가 목숨 걸고 공부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줄게.
너가 수능을 잘 쳐서 좋은 대학에 갈 수록 네 외모가 돋보일거야.
왜냐하면 공부잘하는 얘들이 대체로 외모가 별로거든
공부 못하는 학교 가면 잘생긴 얘들이 너무 많아 형아도 우리과에서 탑 쓰리 정도 되는데,
너도 이 정도외모면 수능 성적 잘 나오면 탑 파이브 안에 들수 있는 학교에 갈 수 있고
그러면 네 외모가 엄청 돋보일거야. 여학생들의 눈길이 느껴질 정도지..
수능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명이기도 하다 열심히 해라."
(탑 파이브라고 강조하는 건 자기가 동생보다 조금 더 잘 생겼다는 뜻이다.)
작은아이는 공감을 하는지 말이 없다.
우리집 큰애기 이녀석은 자신의 외모에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산다.
주변에서 인사로 잘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다보니 생긴 부작용같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쬐끔 잘 생긴 축에 들기는 한다. ㅎㅎ
이런 녀석이 수능 열흘정도 앞둔 동생에게 외모론으로 수능을 잘 쳐야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파했는데 주방에서 이 이야기를 듣던 나는 처음엔 이상하게 듣겼는데 되새겨 보니
딱 큰애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에 ㅎㅎ 웃음만 나왔다.
작은 아이는 별 대꾸 없이 진지하게 듣더니만 정말 내 외모가 그 정도 될까 하는 물음으로 형아를 쳐다본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막내는 형아의 말이면 무엇이든지
선각자가 해주는 말인양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니까 니가 좋은 학교를 가야 한다는 거야 결론은......"
나무랄 수도 없는 이론인것 같기도 하다. 외모는 바꿀수 없는 거니까
너가 속한 환경 바꿀수밖에 없다는 거다. ㅎㅎ기특한 발상이라고 해야할지.
외모 지상주의를 탓해야 할지. 신세대 발상 답긴 하다.
큰애는 낙천적이며 자기 주장이 강하고 추진력도 있다.
고 3인 작은 아이는 아직 덜영근 풋사과처럼 풋풋하기만 할뿐 유드리도 없고 고지식한 편이다.
녀석도 수능치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 달라질 것이란 기대를 큰애를 통해서 경험한 터라
약간 까칠해도 시기적으로도 그런때라 별로 걱정을 안한다.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엄마에겐..
남들은 딸이 있어 딸하고 잘 통해서 좋다지만
딸이 없는 나는 큰 아들이 오면 잘 통해 녀석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음악 취향이 비슷하고 제 주변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겐 풋풋한 젊음을 함께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재밌는 시간이 된다.
쇼핑을 가도 잘생긴 녀석이 옆에 붙어 다니는 것도 기분좋고
저는 또 '물주'라서 그런지 엄마랑 함께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라고. 나는 큰아들 덕분에 딸 가진 기쁨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씩 자식키운 보람같은 뿌듯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 참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