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 1권을 읽고

구름뜰 2009. 11. 13. 10:23

 

 

 

재미있는 소설을 읽은 후, 세상이 뭔가 조금 바뀐 듯 보일 때가 있는데

<1Q84>의 독자들도 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다 읽은 후 당신의 주변 세계는 이미 200Q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이니치 신문 2009, 6,14

 

간절히 바라는 것, 그것이

'리얼'을 만들고,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소설.

--산케이 신문 2009,6,14

 

 

하루키(60세)씨가 5년 만에 낸 1Q84는 출시되자 마자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제목부터 독특하다. 장편으로  두권인데 일단 1권만 읽고 이 글을 써 본다.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긑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거야.

 

  첫장을 넘기면 나오는 이 문장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읽는 내도록 이글과 반대 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글이 주는 암시는 크다하겠다.

그래서 하루키가 앞에 내세운 이 문장을 염두에 두고 진지하게 읽었다.

 

1984년을 살면서 1Q84라고 정의한 세상, 달이 두개인 세상, 

아오마메에게만  보이는 두개의 달, 그래서  칭한 1Q84년,

 작가가 이글을 어떻게 마무리 해 낼지 짐작이 잘 안되는 것도 독특하다.

 

스케일도 크고 내용도 비중 있는 부분들이 많다. 장편답게 얽혀서 전개되고,

읽으면서 허구지만 또 믿어보자는 두갈래 마음으로 읽었다.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것인지, 난해한건지.

아니면 어차피 소설이란 문제를 제기할 뿐

수학처럼 답이 없다는 문장이 책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

 

1권을 읽고나서 의구심만 증폭되고,

 첫장을 다시 보니 '믿으면 모두 진짜가 된다'는 작가의 말이 또 와 닿고,

 소설이라 스토리 중심으로 읽기는 했지만 문장에도 관심을 두고 읽었다.

 

 

 

거미는 집을 짓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저 거기 가만히 붙어 있는 것 말고는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자리에 붙어 계속 사냥감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수명이 다하면 허옇게 말라죽는다.

모든 것은 유전자에 일찌감치 설정되어 있는 일이다.

거기엔 망설임도 없고 절망도 없고 후회도 없다.

형이상학적인 의문도, 도덕적 갈등도 없다.

아마도,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스타킹을 엉망으로 만들며

별 볼 것도 없는 산겐자야 근처에서 수도고속도로 3호선의 영문 모를 비상계단을 홀로 내려간다.

좀스러운 거미의 둥지를 털어내며, 어처구니 없는 베란다의 너절한 고무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이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전자로 이미 설정되어 있는 삶이라고 표현한 이부분도

거미이야기지만 여운이 남는 문장이다.

거미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얘기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다양한 삶! 거미가 거미처럼 사는건 괜찮지만

사람의 유전자로 태어나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메세지 같기도 하고, 

계속 의문문으로 접근해야 하는 하루키 소설! 

 

아오마메는 킬러다. 버젓이 직장이 있지만 아내(여성)에게 상처만 입히는 남자들을

완벽하게 저세상으로 보내주는 킬러다.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는 부분은 사주받은 누군가를 죽이러 가는 길에

교통체증을 만나고 택시에서 내려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내려가면서

보게 되는 거미에 관한 묘사다.

 

 

 

그는 어떤 일이건 타인에게 요구받는 걸 절대 못 참는 타입니다.

비판도 못 참는다. 특히 그것이 여성의 비판일 경우에는,

그런 한편 자신이 남에게 뭔가 요구 할때는 거침없다.

아내를 골프채로 때려 갈비뼈를 몇 대나 부러뜨릴 때도 그다지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없으면 지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방해하거나 무정하면 화를 낸다. 그것도 격렬하게.

머릿속의 자동온도조절 장치가 날아가버릴 만큼

 3장 변경된 몇가지 사실 - 부분

 

아내를 폭행하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  나선 길에서 교통체증을 만나게 되는 도입부인데.

 고속도로 체증길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비상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녀는 1Q84를 처음으로 경험한다.

3년전에 바뀐 경찰유니폼을 입고 있는 경찰을 보게되는 것이다. 

경찰이 어느 공간에서 돌연 나타난 게 아닌이상

아오마메가 그 공간으로 들어간것 같은 착각을 주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외에 다른건 없는 1984년 일 뿐이다.

 

 뇌 하부의 어떤 특별한 부위를 찔러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줄 아는 킬러!

심장마비나 과로 스트레스로 인한 죽음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의사의 눈에는 심장 발작 정도로 밖에는 미심쩍은 점은 발견되지 않게하는

아오마메는 목표물이 정해지면 완벽한 자연사로 만드는 킬러다. 

 

 

 

글을 고쳐나가면서 덴고가 새삼 실감한 것은, 후카에리가 무슨 문학작품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쓴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내면의 있는 이야기를-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가 실제로 목도햇던 것을 - 우선 언어를 사용해 기록했을 뿐이다.

딱히 언어가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언어이외에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적절한 표현수단을 찾지 못햇다.

그것뿐이다. 문학적 야심 같은건 처음부터 없다.

 

후카에리가 공기번데기에서 묘사하려고 한 혹은 기록하려고한 세계의 본디 모습을

자신이 거의 정확히 파악해가고 있다는 촉감이, 혹은 촉감에 가까운 것이 덴고 안에 생겨났다.

후카에리가 그 독특하고 한정된 언어를 사용하여 묘사하려고 한 광경은

덴고가 공들여 주의 깊게 고치는 것에 의해 전보다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그곳에 떠올랐다.

그곳에는 하나의 흐름이 생겨나 있었다. 덴고는 그것을 알 있다.

그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강한 것뿐이지만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쓴 것처럼,

그 결과물은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공기번데기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그곳에서 힘차게 일어서려 하고 있엇다.

- 6장 덴고 - 우리는 꽤 먼곳까지 가게 될까- 부분

 

도입부 1장은 아오마메,  2장은 덴고, 이런식으로 소설은 두 사람의 삶을 교대로 다룬다.

둘은 연관성이 전혀 없는듯 살아가고 있다. 

두개의 달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인지정확히 모르겠지만

두사람이 어느 접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짐작만 막연히 든다.

 

덴고는 학원의 수학강사이며 소설 쓰는 사람이다.

출판사 편집인 고마스의 부탁을 받고 후카에리라는 열일곱살 소녀가

쓴 <공기 번데기>라는 작품을 고쳐쓰기로 한다.

 후카에리가 쓴 어슬픈 문장에 덴고의 문장을 합쳐 아주 이상적인 작품을 만들자는

고마스의 음모에 덴고는 아닌줄은 알지만 <공기 번데기>작품에 끌린다.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고쳐쓰고 싶은 본능같은 것을 느낀다.

 

열흘동안 늘일건 늘이고 줄일건 줄여서 작품을 만든다.

그러면서 그 작업을 통해 후카에리가 묘사또는 기록하려고한 부분들을 자신이 거의 정확하게

파악해가고 있다는 촉감이 혹은 촉감에 가까운 것이 덴고 안에서 생겨난다.

기술적인 측면의 보강이라는 생각으로 그 소설을 접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결과물은

처음부터 자신이 쓴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힘차게 자기 안에서 일어서려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자신이 배척당하는 소수가 아니라 배척하는 다수에 속한다는 것으로 다들 안심을 하는거지,

 아, 저쪽에 있는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하고 어떤 시대든 어떤 사회든 기본적으로 다 똑같지만

많은 사람들 쪽에 붙어 있으면 성가신 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래, 소수의 사람 쪽에 있으면 성가신 일만 생각해야 하지."

"그렇다니까. 하지만, 그런 환경에 속하면 적어도 자기 머리를 쓸 수 있게 될지도 몰라."

6장 덴고 - 우리는꽤 먼곳까지 가게 될까 -부분

 

 

덴고의 10살 연상의 걸프렌드와의 대화내용이다. 따돌림에 관한 이야기 부분이다.

배척당하는 소수와 배척하는 다수에 관한 묘사에서도

  다수냐 소수냐에만 관심있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것 같다. 

 

본질은 외면하기도 하고 알필요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이어서

어쩌면 성가시다고 사람들이 다수편에 서는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그 다수라는 것이 머리를 쓸 줄 아는 소수보다

더 농밀하지 못한 엉터리 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본질을 머리나 가슴으로 찾으려 하지 않고 숫자로만

성가시지 않은 것으로만 점철시키려 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상하게 굴러가는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리틀 피플은 몸이 작으면서도 아주 많은 물을 마신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건 수돗물이 아니라 빗물이고 근처의 작은 시내를 흐르는 물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낮 동안에 작은 시냇가에서  양동이에 물을 길어와 그것을 리틀 피플에게 마시게 했다.

비가 내리면 빗물받이 아래 양동이를 놓고 받아두었다.

리틀 피플은 똑같은 자연의 물이라도 시냇물보다는 빗물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같은 소녀의 친절에 감사했다.

제 8장 덴고 - 모르는 곳으로 가서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다- 부분

 

후카에리의 소설 <공기 번데기>에 언급된 리틀피플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공기 번데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으며

눈먼양을 돌봐야 하는 소녀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눈먼 양이 죽게 된다는 정도의 얘기만 나오고

 소녀는 벌로 죽은 눈먼양과  갖힌다는  그런 이야기다.

이것 역시 암시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독재자를 우회적으로 그린 가상 인물인것처럼,

1Q84에는 리틀피플이 나온다. 언어적 대비다.

 

아직 리틀피플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전편에서는 알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히 영향력은 있을 것 같은 리틀피플의 역할이

후반부로 갈수롤 기대된다는 것만 짐작된다.

 

 

 

이럴테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가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이다. 라고, 내 의식이나 전신에 이상이 발생한 게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모종의 힘이 작용하여 내 주위의 세계 자체가 변경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쪽 가설이 아오마메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의식에 뭔가 결함이나 왜곡이 있다는 실감은 아무래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가설을 좀더 발전시켰다. 

이상이 발생한 건 내가 아니라 이 세계다.

그래 맞아 어딘가의 시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소멸하고, 혹은 퇴장하고,

다른세계가 거기에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레일 포인트가 전환되는 것처럼. 특히 지금 이곳에 있는 내 의식은 원래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세계 그 자체는 이미 다른것으로 변해버렸다.

그곳에서 이루어진 사실의 변경은 지금으로서는 아직 한정된 몇가지 뿐이다.

새로운 세계의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원래 세계로부터 그대로 흘러들어와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생활을 해나가는 데 특별히 현실적인 지장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변경된 부분은 아마 앞으로 갈수록 더욱 더 큰 차이를 내 주위에 만들어갈 것이다.

오차는 조금씩 불어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그러한 오차는 내가 취하는 행동의 논리성을

손상시켜 자칫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할지도 모른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

그건 말 그대로 치명적이다.

 

 

1Q84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오마메는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것

좋든 싫은 나는 지금 이 '1Q84년'에 몸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4년이다. 공기가 바뀌고 풍경이 변했다.

나는 이 물음표 딸린 세계의 존재양식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숲에 내던져진 동물과 똑같다. 내 몸을 지키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장소의

룰을 한시라도 빨리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이상해진 건가, 아니면 세계가 이상해진 건가, 그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병과 병뚜껑의 크기가 맞지 않는다.

병 때문인지도 모르고 병뚜껑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사이즈가 맞지 않은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제9장 아오마메 - 풍경이 변하고 룰이 바뀌었다- 부분

 

 

아오마메만 느끼는 1Q84년

아오마메에게만 보이는 두개의 달,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실과 이상인건지,

어떤 관념과 실체인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거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답은 모르겠다. 계속 암묵적으로 두개의 달이 후반부로 갈 수록 많이 자주 등장할 것 같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10살때 같은 반이었지만 아오마메가 전학을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아오마메는 덴고를 유일하게 사랑하는 대상으로 가슴에 묻고 산다.

언젠가는 만날 그를 생각하면서 아니 못만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반대로 덴고는 아오마메의 눈빛을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것 뿐이다.

사랑같은 감정은 없으며 그녀를 추억할 뿐이다.

이소설이 던져주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평행선 같은 삶, 그리고 두개의 달

아오마메만 보는 두개의 달을 덴고도 보게 되는 것인지..

그러면 둘은 만나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지 아니면 지금 두개로 보이는 달이

다시  하나로 보일날이 있을지. 

 

 

 

 

유토피아라는 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연금술이나 영구운동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카시마 측에서 하는 일은,

내가 감히 평을 하자면,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로봇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어,

인간의 머리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회로를 제거해버리는 곳이지.

조지오웰이 소설에 썻던 것과 흡사한 세계야. 하지만 자네도 아마 알고 있겠지만,

그런 뇌사적인 상황을 자진해서 원하는 자들이 이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러는 게 어쟀건 속은 편하거든, 번잡스러운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입 딱 다물고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돼. 굶어죽을 일은 없어,

그런 환경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닌 게 아니라 타카시마 학원은 유토피아겠지.

  

어린아이에게는 분명 즐거운 곳이었을거야.

하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고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면 많은 아이들에게

다카시마의 생활은 생지옥에 가까운 것이야.

내머리로 세상을 생각하려고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위에서 힘으로 억누르니 말이지.

그런 말하자면 뇌의 전족 같은 거야.

제 10장 덴고 -진짜피가 흐르는 실제 혁명 - 부분

 

 뇌사적인 상황을 자진하고 원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뇌의 전족!

이 책에서  크게 다루는 주제는 사이비 종교단체에 관한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가족의 헤체같은, 부모의 잘못된 인식이나 의식의 오류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

 그로인해 일그러진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지만

놓치지 말고 읽어내야 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은 시종일관 들었다.

 

 하루키는 가볍게 지나가는 것 처럼, 다룬것 같지만  '본질'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읽으면서 계속 들었다. 독자가 간과하기 쉽도록 해놓은 장치

물론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덴고나 아오마메는 성인이지만,

어린날의 불행이 족쇄처럼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유의지로 당당하게 사는 것 같지만,

어린시절 그러 했듯이 정상적인 생활과는 약갼 동떨어진 두사람의 삶이다.

 

아오마메는 덴고를 기다리고 그러면서도 남자가 그리울 때는

언제나 남자사냥을 나설만큼 그녀 역시 몸따로 마음따로 사는 여자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 킬러로서의 삶을  당연히 저세상으로 갈 인간을

보내주는일로 정당화시키며 산다

 양심의 가책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못하는 여성이다.

 

덴고도 10살 연상의 유부녀와의 성적인 관계만을 유지할뿐 결혼이나

이성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이성에 대한 책무가 싫어서

그냥 성적인것, 자기 만족과 편리만 추구하는 남자다.

 

 작가는 현실속에 내재된 보이지 않은 부분, 

 소설같은 삶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현실은 아니지만 상상력이나 어떤 관념만으로도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음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시적인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한다. 상징적인 것이 많아서 계속 반문하면서 읽게되는

 어렵다 결론은, 아니 결론이 없는 소설같다. 그냥 읽고 생각하고 기억해두면 될것 같기도 하고..

 

 

 

 

소설을 읽는 행위는 일조의 도피였다. 책장을 덮으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소설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수학의 세계에서 돌아왔을 때만큼

삼엄한 좌절감을 맛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덴고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째서일까. 그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윽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야기의 숲에서는 사물 간의 관련성이 제아무리 명백하게 묘사되어 있어도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수학과의 차이다.

이야기의 역할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문제를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동의 질이나 방향성을 통해, 해답의 방식을 이야기 형식으로 암시해준다.

덴고는 그 암시를 손에 들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그 암시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 적힌 종이쪽지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모순을 지니고 있어서 곧바로 실제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언젠가 나는 이 주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이 그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덥혀준다.

14장 덴고 - 대부분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 - 부분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것, ㅎㅎ 당연

이 책도 소설인지라 다른 삶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소설을 읽는 행위도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가능성 그 암시를 들고 현실로도 한번 느껴보라는

 그 일이 소설이 추구하는 허구인지도 모른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와 떨어져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지갑속의 돈을 마음껏 쓰고 싶었다.

입고 싶은 새 옷을 입고 사이즈가 맞는 구두를 신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었다.

친구를 잔뜩 만들어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고 받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오마메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가장 마음이 편안해진건 

금욕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할 때라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누군가와 어딘가에 놀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 저지를 입고 자기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쯤 이었던 것 같다. 

섬세한 편이 못되는  남성적인 성향인 엄마와 섬세한 편인 아버지의 성격을 보면서

두분의 장단점 중에서 내 나름대로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만 흡수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름의 자의식은 얼마간은 내 성격형성에 많은 공헌을 한 셈이다.

 

 그런 덕분인지 나는 엄마보다는 훨씬 더 섬세한편이고 여성적인 편이다.

하지만 가끔 남성적인 것들이  내게서 불쑥 튀어 나올때가 있다.

' 어쩔 수 없어 엄마 슬하에서 이정도면 양호한 거야' 라며 나도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살기도 한다.

 

내 관념으로 보아온 내 부모모습도 어린눈으로 본 그 시절의 관념이었고,

돌아보면 내가 봤던 내 눈에만 띄었던 그런 모습은 내 편견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내 엄마만큼 넓은 마음이지도 못하고 속도 깊지도 못한 나를 볼 뿐이다.

웃기는 일이다.  당시에 내가 가진 관념은 어쩌면 못된 송아지  뿔이었고,  언발톱이었다.

 

그나이가 되어봐야 그 심정을 아는 것처럼, 경험해 보지 않고 가진 생각들은

내 편견이나 선입견인지도 모른다. 조심하면서 겸손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롭고 풍족한 광경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던 부자유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이 자유로와지는 건  어떤 것일까. 그녀는 곧잘 자문했다.

하나의 감옥에서 멋지게 빠져나온다 해도, 그곳 역시 또 다른 좀더 큰 감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지정해준 남자를 다른 세계로 보내고 나면 아자부의 노부인은 그녀에게 보수를 건네 주었다.

 

- "왜냐하면 당신은 천사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당신의 행동이 순수한 마음에서 나왔다는 건 잘 압니다.

그래서 돈 같은건 받고 싶지 않은 그 심정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 마음이란 건 또 그것대로 위험한 것이랍니다.

살아 있는 몸을 가진 인간이 그런 걸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그러니 당신은 그 마음을 기구에 닻을 매달듯이 단단히 지상에 잡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한 것이에요. 옳은 일이라면, 그 마음이 순수한 것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지요. 내 말 알겠어요?"

15장 아오마메 기구에 닻을 매단듯 단단하게

 

아자부의 노부인은 저세상으로 보내야할 대상이 생기면 아오마메에게 명하고

아오마메는 여축없이 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노부인에게 명령을 받는 다는 생각은  전혀 안하는 아오마메는

자신이 당연히 그 일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표면적으로 볼때 

노부인의 청부살해를 거절하는 적은 없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매번 생각할 뿐이다. 

 

자신이 가진 선입견때문에  자신이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노부인의 하수인에 불과한  선택되어진 인간인지도 모른다.

아오마메는 언제나 늘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임한다.

 

그 부분에 보수 받기를 권하는 노부인의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어."

"열살 때, 어떤 남자애를 좋아해서  손을 잡았어."

"그럼, 지금 그 사람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아오마메씨는 알아보지도 않았다는 거야?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아." "내가 바라는 건 어느 날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는 거야.

이를테면 길에서 마주친다든가, 같은 버스에 탄다든가."

"운명적인 해후?"

"뭐 말하자면."

"그때는 그에게 분명하게 털어놓을 거야.

내가 이번 인생에서 사랑한 사람은 단 한사람, 당신밖에 없다고."

"우연히 만날 확률은 상당히 낮을 거 같은데. 게다가 벌써 이십 년 동안 못 만났으면

그 사람도 얼굴이 변했을 거야.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기나 하겠어?"

"아무리 열굴이 변했어도 한번 보면 나는 알아. 못 알아볼 리가 없어."

"그런데 아오마메 씨는 두렵지 않아?"

"어쩌면 그 사람을 영원히 못 만날지도 모르잖아. 물론 우연히 재회할 수도 있지.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게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끝까지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잖아?

게다가 만일 만났다 해도 그 사람은 이미 결혼했을 수도 있고,

아이가 둘쯤 딸려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잖아?

만일 그렇게 되면 아오마네 씨는 그뒤의 인생을 내내 외톨이로 살아가야 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자기가 좋아한 사람과 맺어지지도 못한 채.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않아?"

"두려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설령 그 사람이 아오마메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아오마메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남자는 덴고다

하지만 덴고는 이런 아오마메에 관한 기억은 눈빛이 독특한 아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두사람은 평행선을 달리듯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두 사람이 어느 접점에서 만나게 될지, 아오마메에게만 보이는 두개의 달이

어느시점에 덴고에게도 보이게 되는지 계속 의문을 더해 가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어느 한쪽이 간절히 염한다면 만남은 가능하다고,

 시와 소설에서 그리워하면 만난다고 하는 메세지들이 무수히 많지만

 실제로  그것이 우연히 이루어진다면 그건 인연일 게다.

 

반대로 사람이 만들어내는 인연도 있지 않을까.

충분히 찾을 수 있지만 찾지 않고 우연을 기다리는 아오마메와

그녀의 그런것을 꿈에도 생각못하고 사는 덴고가 만난다면 둘은 사랑할 수 있을까

 열살적 그 추억만으로 가능할까.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

 '이런 것이었구나!' 라고 느껴지는 감정,

그런 사랑은 내 마음이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되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하지만 한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고 사는 삶도 있을 것이다.

 

 

."

 

"메뉴든 남자든 다른 뭐든,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건지도 몰라.

그건 이미 일찌감치 정해진 일이고, 우리는 그저 선택하는 척하고 있는 것뿐인지도.

자유의지라는 거. 그저 나만의 선입견인지도 모르지. 가금 그런 생각이 들어."

"만일 그렇다면 인생은 정말 암울해."

"그럴지도."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상대라 해도

그 쪽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인생은 지옥은 아니다. 가령 약간 암울하더라도."

15장 아오마메 기구에 닻을 매단듯 단단하게

 

이미 정해진 것 같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한것의 연속,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면 정말 암울할 일이다

또 설령 그 선택하는 척하고 있을뿐, 내 의지라는 것이 내 선입견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더 암울하고 살맛 안나는 일 아닐까.

 

선택, 끊임없는 선택, 그리고 내 선입견, 내가 만들고 내가 선택하는 내 선입견

선입견이란 것도 내 그릇만큼 만드는 것인건 맞는것 같다.

언젠가 하느님을 믿는 자가 좁쌀만한 인간이면 그 하나님도 좁쌀 만하고

바다 같은 사람이 믿으면 그 하느님도 바다 같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람은 제각각 제 생김새대로 사는지도 모른다.

 

불교교리가 주는 메세지는 희망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 모습을 만들었고,

오늘의 내 모습으로 내일의 나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내게 닥칠 화나 선도 지금의 내 사는 모습으로 화를 줄일수도 있고

복을 늘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 끊임없이 정진하며 최선의 삶을

살라는 것으로 결국 귀결된다. 얼마나 멋진 이론인가.

'복 주십시요'하지말고 지금 복 받을 행동하고,

'좋은 일 없을까'하지 말고 좋은일 찾아서 하라는 것이다.

'좋은날 되세요'가 아닌 '좋은날 만드세요'인 것이다.

 

물론 '좋은날 되세요'는 상대에 대한 좋은 기원의 의미가 담긴 순순한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말하자면 인삿말이 아닌 내 마음가짐은 그렇게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누구와도  관련없는 내가 만들고 내가 주인공인 내 삶의 주체가 되라는 얘기다. 

 

아무리 형편없는 상대라고 하더라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로

마침하는 아오마메의 사랑처럼, 사랑은 생명의 양식이 아닐까.

우리 범인들이 하는 사랑은  내맘 같은 사랑이 아니어서 화나기도 하고

그래서 실망하면서 또 역시 사랑하고 아파하며 그래도 그사랑으로 사는 일,

사랑은 어쨋거나 아름답고 소중한 감정이며 생명의 양식이다!

 

비록 그 사랑이 내 사랑을 몰라주는,

아오마메처럼, 허황된것 같은 사랑도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녀가 줄곧 내세우는 그래도 사랑하므로가 그 이유다.

사랑도 인생도 딱히 이것이다라고 말한다는 건 쉽지 않지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살아있는 동안의 이야기가 아닐까.

 

사랑하는 감정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오롯이 표현해내는 성직자들을 보면 참 부러울 때가 있다.

신에 대한 사랑을 숙명으로 여기며 사는 삶은 은혜롭다.

 

 

 

 

꼬박 열흘 동안 <공기 번데기>를 고쳐서 새로운 작품으로완성해 고마쓰에게 건네준 뒤,

풍랑없는 바다처럼 평온한 하루하루가 덴고를 찾아왔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좋은 변화다 덴고는 소설을 쓰면서

자기안에 새로운 원천 같은 게 생겨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 많은 물이 샘솟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바위 틈새의 자그마한 샘이다.

하지만 소량이라 해도 물은 끊일 새 없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서두를 건 없다. 초조해 할 것 없다. 그것이 바위의 움푹한 곳에 가득 고이기를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물이고이면 그것을 손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책상을 마주하고, 떠올린 것을 문장의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집중적으로 <공기 번데기>를 고쳐나가던 작업에 의해,

지금까지 그 원천을 가로막고 있던 바위돌이 치워졌는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덴고도 잘 알 수 없지만

어떻든 그런 '무거운 덮개가 비로소 열렸다'라는 실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이 가뿐해지고 비좁은 곳에서 나와 자유롭게 팔다리를 펼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이 본디부터 덴고의 내면에 있었던 무언가를 적절히 자극한 것이리라.

덴고는 자기 안에 의욕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16장 덴고-마음에든다니 정말 기뻐- 부분

 

<공기 번데기>리라이팅 이후로 덴고는 자신의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이라는 것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공기 번데기>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무언가를 자극받았고

그것이 새로운 소설쓰기로 에너지가 모아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달은 누구보다 오래도록 지구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보아왔다.

아마도 이 지상에서 일어난 현상이며 행위 모두를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은 침묵한 채 말을 하지 않는다.

한없이 차갑게, 정확하게, 무거운 과거를 품어안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공기도 없고 바람도 없다. 진공은 기억을 아무 상처없이 보존하기에 적합하다

어느 누구도 그런 달의 마음를 풀어낼 수 없다.

- 하지만 사물은 같아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건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거예요.

그 당시는 밤의 어둠이 훨씬 더 깊었을 테고, 달은 그만큼 더 환하고 크게 빛났겠지요.

- 하늘에 뜬 달은  똑같아도 우리는 어쩌면 다른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사 세기 전에는 인간은 좀더 자연과 가까운 풍성한 영혼을 갖고 있었겠지요."

17장 아오마메 우리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 부분

 

두개의 달,,,

 

 

그녀는 자신이 본래의 1984년이 아니라 몇 가지가 변경된 1Q84년이라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었다.

아직은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하루하루 리얼리티를 더해간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가 그 새로운 세계에는 아직 많은 듯했다.

그녀는 더욱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아오마메 느끼는 달은 어쩌면 자신의 잊고 싶은 부분과  꿈꾸고 싶은 부분, 그러니까

현실에서 불가능한 그 부분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합리화시키면서 사는 모습도,  이사회에서 봤을 때는 킬러일 뿐인것처럼,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든 그에 속한 신자들이든 모두는 다 아오마메처럼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무식하면 무식한데로 살고, 의식하고 인식하는 문제들도 그렇지 않다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게 사는 삶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고 살아가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에그리 대수로울까 할수도 있겠지만, 역시 답이 없다.

 

20세기 타임지 선정한 성공한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에 선정한 성공한 사람은 <내 맘에 드는 나>라고 한다.

'내 맘에 드는 나'로 사는 삶, 이런 가장 쉬울것 같은 성공!

의식수준의 향상이 가져다 준,  본질이 무엇인지 간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렇게 향상된 세상을 우리 인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맘에 드는 나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삶인 것이다.'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두 눈을 아무리 크고 똑똑하게 뜨고 있어도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해요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건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만큼이나 간단하지요.

"그 '선구'라는 교단의 교주가 쓰바사를 성폭행했습니다.

영적인 깨달음을 부여한다는 구실을 붙여 그것을 강요했어요.

초경을 맞기 전에 그 의식을 거쳐야 한다고 부모에게 통한 것이지요.

아직 더럽혀진 적이 없는 소녀에게만  순수한 영적인 깨달음을 부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렬한 아픔은 한 단계 위로 상승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말을 고스란히 믿었어요.

인간이 어디까지 어리석을 수 있는지. 실로 놀라울 뿐이지요. 쓰바사의 경우만이 아니예요

우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교단 내의 다른  소녀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저질러 왔어요.

교주는 비뚤어진 성적 기호를 가진 변태일 뿐이에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단이니 교리는 그런 개인적인 욕구를 감추기 위한 편의적인 의상에지나지 않아요." 

 

인간들이 복잡하게 굴절된, 때로는 너무나 이상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삶을 사는것이 유전자에게 과연 어떤 메리트가 있다는것일까.

초경전의 소녀를 범하느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남자. 기골이 장대한 게이 경호원

수혈을 거부하며 스스로 죽어가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

임신 육 개월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여자.

문제 있는 사내들의 뒷덜미에 날카로운 침을 꽂아 살해하는 여자.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 남자를 증오하는 여자들.

그런 사람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과연 유전자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것일까?

유전자들은 그런 굴절된 에피소드를 컬러풀한 자극으로서 실컷 즐기고,

혹은 뭔가 또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일까.

아오마메는 알지 못한다.

그녀가 아는 것은 자신은 이제 또 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 정도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나는 이인생을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반품하고 새 것으로 바꿔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기묘한 것일지라도.

일그러진 것일지라도 그것이 나라는 탈것의 존재방식이다.

제 19장 아오마메-비밀을 함께 나누는 여자들 - 부분  

 

 자신이 믿고 싶은것만 믿고,  보고 싶은것만 보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대부분의 모습이다.

그건 본능적인 것과 비슷한 지도 모른다. 

반품하고 싶다고 바꿀수도 없는  인생이라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

 

언젠가는 이 세상하직할 거라는 것외에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알수있는 것은 별로 없다.

뜻하지 않는 내일이 나를 기다릴 수도 있기에 오늘의 나는 늘 최선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최선의 내일의 최선이고 내 삶의 최선이리라.

 

 

 

시간과 공간과 가능성의 관념

시간이 일그러진 모양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덴고는 알고 있다.

시간 그 자체는 균일한 성분을 가졌지만, 그것은 일단 소비되면 일그러진 것으로 변해버린다.

어떤 시간은 지독히 무겁고 길며 어떤 시간은 가볍고 짧다.

그리고 때때로 전후가 바뀌거나 심할 때는 완전히 소멸되기도 한다.

있을 리 없는 것이 덧붙여 지기도 한다. 인간은 아마도 시간을 그처럼 제멋대로 조정하면서

자신의 존재의의 또한 조정하는 것이리라. 다르게 말하면,

그 같은 작업이 더해짐으로써 가까스로 지나온 시간을 순서대로 고스란히

균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 인간의 신경은 도저히 그것을 견뎌내지 못할 게 틀림없다.

그런 인생은 아마도 고문이나 다름없으리라. 덴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은 뇌의 확대에 의해 시간성이라는 관념을 획득할 수 있었고,

동시에 그것을 변경하고 조정해가는 방법 또한 몸에 익혔다.

인간은 시간을 쉴새없이 소비하면서 그것과 병행하여 의식에 의해 조정된 시간을 쉴새없이

재생산한다.이건 보통 작업이 아니다.

뇌가 신체의 총 에너지의 40퍼센트를 소비한다고 일컬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 22장 덴고 시간이 일그러진 모양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지.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아오마메씨는 뭔가 두려운 게 없어?"
"물론 있지."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는 게.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잇는지 잘 모른다는 게."

"아오마메 씨는 지금 뭘 하고 있는데?"

"그걸 알면 좋을 텐데."

"지금은 1984년이고, 장소는 일본 도쿄야."

"너처럼 확신을 갖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괴상하기는."

"그런 분명한 사실에 새삼스럽게 확신이고 단언이고가 어디 있어?"

"지금은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걸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그래?" "그런 속사정이랄까 특별한 트낌. 나느 좀 이해가 안 되네. 하지만 지금이 언제건 이곳이

어디건 아오마메 씨에게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보기에는 그건 무척 부러운 일이야.

나한데는 그런 사람도 없어."

"네 말이 맞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언제건 이곳이 어디건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를

만나고 싶어 죽을 만큼 보고 싶어. 그것만은 확실한 거 같아. 그것만은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어."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는, 세습들, 

 가장 기초적인 가족단위에서 빚어지는 월권행위 같은 것들. 

부모를 선택하고 자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부모, 자식과의 인연,

부모는 세습해주고 싶지 않은 것까지 자식들은 세습하게 되는 환경,

 환경은 정신도 지배하고 인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현명하게 잘 헤쳐나오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쉽지 않다.

알을 깨는 것처럼, 자신이 깨야 하는  환경인 것이다.

 

내게 자의식이 생기던 중학교 시절, 나는 내 부모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전에 보이지 않던 편견과 열등 같은 것들을 내 부모님에게서 읽을 수 있는 시기가 왔다.

그건 원래 내 부모 모습이었지만  내가 성장해서  인식하는 부분들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두려웠던 것도

  내가 느꼈던 그런 부분을 내아이도 내게서 느끼는 시기가 올것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내 부모보다 과연 나을 수 있다고 장담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을 보면서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어려운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스토리가 계속 암시하는 것들로만 전개되어 가서 더욱 그런것 같다.

구체적인 실상은 아주 작은 표면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이 읽으면서 계속 든다.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 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멋있다.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라."

제23장 아오마메 이건 뭔가의 시작에 지나지 않은다 - 부분

 

"자기 영어의 lunatic(루나틱)하고 insame(인세인)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

"둘 다 정신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형용사지. 자세한 차이까지는 모르겠어."

"insane(인세인)은 아마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은 것.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는 거야.

그에 비해 lunatic(루나틱)은 달에 의해, 즉 luna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긴 것,

19세기의 영국에서는 lumatic이라고 판정받은 사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 죄를 한 등급 감해줬어. 그 사람의 책임이라기 보다 달빛에 홀렸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법률이 실제로 존재했대.

즉 달이 인간의 정신을 어긋나게 한다는 걸 법률적으로도 인정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뭐냐면, 지금 있는 달 한개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미쳐버릴 수 있는데, 달이 하늘에 두 개나 떠 있다면 인간의 머리는

점점 더 이상해지는 거 아니냐는 거야. 바다의 밀물 썰물도 바뀔거고 여자의 생리불순도

더 많아질 거야. 정상이 아닌 일이 줄줄이 생길 거 같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 세계에서 인간은 노상 머리가 이상해지는 거야?"

"아니 그렇지도 않아. 딱히 머리가 이상해진 건 아니아. 여기에 있는 우리하고 대충 똑같은 일을 해."

"여기가 아닌 세계에서 사람들은 여기에 있는 우리와 대충 똑같은 일을 한다.

그렇다면 여기가 아닌 세계라는 것의 의미는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여기가 아닌 세계라는 것의 의미는 여기에 존재하는 세계의 과거를 바꿔 쓸 수 있다는 것이야."

덴고는 말했다.

"나 좋을 대로 과거를 바꿔 쓸 수 있다고?"

"그래."

"자기는 과거를 바꿔쓰고 싶어?"
"당신은 과거를 바꿔쓰고 싶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과거라든가 역사라든가, 그런 걸 바꿔 쓰고 싶다고는

요만큼도 생각 안 해. 내가 바꿔쓰고 싶은 건 지금 여기에 있는 현재야."

"하지만 과거를 바꿔 쓰면 당연히 현재도 바뀌어, 현재라는 것은 과거가 모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거니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게 있어. 자기는 예전에 수학 신동에 유도 유단자였고 긴 소설도 쓰고 있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해.  하나도."

그렇게 딱 잘라 단정해도 덴고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것도 알고 있지 않다느 건,

요즘 들어 덴고에게는 이른바 일상적인 사태 같은 것이었다. 특별히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제 24장 덴고 여기가 아닌 세계라는것의 의미는 어디 있을까.

 

아오마메가 느끼는 1Q84! 달이 두개인 세상을 덴고는 <공기 뻔데기>이후로

잘쓰여지기 시작한 장편소설 주제가 되는 것 같음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지만

여기에서 1편이 끝맺는다.

2편을 읽지 않고  생각도 정리되지 않은 것같은 소설을 두서없더라도

 1편을 나름 정리해 보고 싶었다. 분량도 많고(600페이지 정도)

역시나 정리가 하나도 안된다는 느낌 뿐이다,

그래서 읽는 분들이 이건 뭔 소리야 할지도 모르겠다.ㅎㅎ

그래도 리뷰로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어렵고 골치아파서서 던져두고 싶지만 그래도 두권다 구입한터라 아그작 아그작

씹어 삼키고 싶은 근성도 생기고 해서 어거지로 정리를 해 보았다.

답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딱히 없는 것을..  

 

 

2편이 어떻게 전개될지 봐야 겠지만

참 소설가의 상상력이란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