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구름뜰 2009. 12. 11. 15:44

 

 

 

얼마 전에 대학 친구와 이야기 나누던 중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얘, 난 마흔이 넘어도 마음이 이럴 줄 몰랐어."

나는 친구가 말한 '이럴'의 의미를 한순간에 확연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십대에 미숙과 혼돈을,

삼십대의 현실 적응 노력과 무력감을 서로 지켜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와 같으며, 그 마음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될 수 있음을 짐작한다.

"얘, 나는 예순이 되어도 마음이 그럴 거라는 사실이 더 그래."

우리는 '이럴'이나 '그럴'에 내포된 의미를 구체적으로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공감하는 시선을 나누며 웃었다.

 

'사람풍경'은  마흔을 넘어서는 나이에 해외여행 경비마련을 위해

집을 팔아 떠난 김형경 작가의 여행이야기이다.

여행중에 내면의 상처를  위로하며 치유해가는 심리 여행 에세이다.

2004년 겨울에 나온 책이고 여행은 밀레니엄을 전후한 시기에 다녀왔다

 

 특징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단락별로 나뉘어 해부한듯 헤쳐 놓았다.

 소 단원들의 주제는.

 무의식, 사랑, 대상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투사 분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 자기애, 자기 존종. 몸사랑, 에로스, 뻔뻔하게,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변화, 자기실현등

  단락 단락을 읽다보면 단어이해는 기본이고 감정이해도 된다.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서 그 속에 투사된 내 자신을 보게도 되는 그런 책이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가족이든 친구든 관계에서 힘들때 

이해불가 일 때 주제어들을 찾아 읽어보아도 위로가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질투심에 휩싸여 있거나.. 시기하거나  자기존중 등 이게 아닌데 싶을때

병원갈수도 없는 이런 감정에 휩싸여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플때

그런 시간들을 보낸 경험이 누군들 없을까.

그럴때 그 감정의 원리이해 처방약으로 괜찮을 것 같다.

 

작가가 전문 서적을 참고한 부분들이 많아서

몰랐던 지식(심리학 분야)을 습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도 모르고 사는 내 안에서 숨쉬고 있는 다양한 감정의 근원,

그리고 고착되고 악화된 것들까지.

내 심리든 타인의 심리든 심리 이해에 도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하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퍼센트

여섯살까지 95퍼센트 형성된다고 한다.그들은 대체로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신분석을 받은 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간 정신을 설명하는 말인가 싶어 놀란 일이 있다.

 

'자기의 심리학'을 주창한 제임스 F. 매스터슨이라는 이는 <참자기>라는 책에 이렇게 쓰고 있다.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 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뜻이다."

정신분석에서는 개인이 겪는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직면하고 의식 속에 통합하는 방법을 쓴다.

 

-무의식을 통합 하는 방법으로

첫째 단계는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과 그 감정이 어린 시절에서 발달되었음을 깨우치는 일이다.

둘째 단계는 어린 시절을 우리에게서 떼어버릴 수 없듯이 그러한 감정들 또한 우리 자신의

일부임을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셋째 단계는 몇 가지 제약을 가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그 감정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거나 능력 발휘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힘겨운 일이기에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며, 계속 반복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이 문제가 되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 중에는

성을 포함한 사랑의 문제, 돈을 포함한 현실적 삶을 관리하는 능력,

생을 활기 있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놀이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실 그것은 생의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하고 핵심인 문제일 것이다.

 

무의식-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로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간의 착시현상이었다.

아직도 발굴 중인 2천년 전의 고대 유적과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중세문화

그리고 첨단 문명의 현대식 건물이 한 공간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의식에서도 착오 현상이 왔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여러 층위를 나타내는 비유 같기도 했다.

무의식-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부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부제가 무의식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다.

 우리 내부에는 자신도 감히 접근해보지 못한 엄청난 무의식의 영역이 있다고 한다

혼란이나 고통, 아픔 등을 경험하면서

그때 그때 자신을 돌아보는 일 그리고 그 일들에 반응하는 일 등이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이 통합된 나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 영역을 감지, 잘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그런 다른 모습은 어릴적 형성된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3살이전의 상황)에 내재된 것들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순간 수면위로 올라오는 현상, 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신과의 화해가 필요한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프랑스 정신 분석의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분석가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것으로

귀착된다는 것을 때닫는 일이다. 사람들이 더듬거리며 털어놓는 불평은 언제나

현재나 과거에서의 사랑의 결핍, 현실적이거나 상상적인 사랑의 결핍이 원인이 되고 있다.

나를 이 무한의 상황 속에, 고통이나 황홀 속에 위치시키지 않고서는 그 불평을 들을 수가 없다."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할 때 그 중에서도 아기때 엄마와 나누었던 애착 경험이

인간 정신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된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넘어서서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통합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랑이 한 사람을 아름답게, 자신감 있게, 성숙하게 만드는 이유 역시

그 어려움을 이겨낸 성과일 것이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인간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한다.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일이라 한다.

사랑-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사랑 -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엄마와 나누었던 애착 경험이 인간 정신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된다.

아기에게 엄마는 최초로 경험하는 행복감의 근원이며 동시에 분노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랑 -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부분 중에서

 

 

역시 사랑이다.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사랑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누구나 경험한다.

그래도 사랑하고 끊임없이 갈구하는 일. 살아있는 자들의 숙명인 사랑, 

 

'사랑을 제대로 하는 일이 인간정신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부모자식, 형제자매 간에도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 원만한 관계가 된다.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면 가족이라고 해도 메마른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고 사랑이 필요하고, 필요하기에 사랑할 일이다.

 

살아가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니까. 많이 많이 사랑할 일이다.

 

 

대상선택 - 타인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

사람들은 저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의존적인 사람은 엄마처럼 보살펴줄 사람을,

자기애적인 사람은 미화된 자기 이미지를 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방해하는 제삼자, 최상의 가치, 연인을 구원하려는 태도 등도 저마다의 기준이다.

 

 

 '대상선택' 역시 부제처럼 타인을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긴 하겠지만

젊은 시절엔 애착정도에 따라 상대의 존귀함을 나누어 느끼지만

나이가 들면 주변을 비롯 모든 이들이 다 소중한 존재라는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일곱걸음 옮겨서

한 말이라는 이 말도 석가모니 자신에 대한 말이 아니라.

 생명갖고 태어난 인간의 소중함을 말한 것인 것처럼

 나이들어갈 수록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치면 석가모니는 태어나자 마자 알았으니 역시

성자의 자질이 태생에서 부터 있었는지 놀라운 일이다!

 

사람이 참 소중하고 귀하다는 느낌,

 젊은 시절엔 그만큼 미숙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알게되는 것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나이듦도 역시 나쁘진 않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나이든 사람의 조언이 필요한 시기이다.

 

 

분노- 대상 상실의 감정, 혹은 돌아오지 않은 사람.

분노는 전형적으로 사랑의 뒷면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거나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가끔 부부싸움 중에 화를 내는 경우,

그 분노의 본질은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걸  이 단원을 읽으며 제대로 알았다.

그러니까 남편이 내게 화가 나 있다거나 내가 남편에게 화가 나 있다는 건

 '사랑이 필요해'라는 신호이고 화난 상대에게 '왜 그래?"라는 의아해하는 반응보다는

'사랑이 필요해?'라는 반응으로 응해주어야 정답에 가깝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다.

 

싸움의 감정에 휩싸여 밉상인 상대를 '사랑을 필요로 하는군'이라고

이해하기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을것 같다. ㅎㅎ

인간의 영역으로는 조금 무리일듯.. ㅎㅎ 안그런 사람도 있겟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니 이해는 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역시 나부터도 쉽지 않을것 같다.

이론과 실전은 예외도 많다.ㅎㅎ

사람은 상대적이니까.. 등등등 이유를 찾아보면 이론에는 없는 이유들이 속출한다.

왜 고모양으로 밖에 사랑해주지 않나 싶지만, 그래도 분노 뒷면에 깔린 심리를 알게 되었으니

 분노에 휩싸였을때는 "사랑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건 알겠는데

좀 생뚱맞을 것 같기도 하고.ㅎㅎ

 

그동안의 습관 때문에 쉽게 나올말도 아닐것 같기도 하다.

싸움의 전조증상이 예감될 때, 선수치듯이 '사랑이 필요해'

정도로 언질을 주는것은 무난할 것 같다. 혼자생각.ㅋㅋㅋ

 

 

 

우울- 정신의 착오 혹은 마음의 요술 부리기

우울증은 흔하고 보편적인 것이어서 정신의 감기쯤으로 인식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중요한 장애이기도 하다.

우울증이란 실은 인식의 착오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도깨비짓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불안 -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여행은 낯설고 위험한 상황에 방치되는 일이고 그리하여

내면의 불안감과 더 첨예하게 맞닥뜨리게 된다.

불안장애는 유아기 때 엄마가 사랑을 주는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고 한다.

 

공포- 분노가 가면을 쓰고 다른 대상에게 옮겨진 것

로마에서 맞닥뜨린 공포는 낯설고 무질서한 곳으로 들어설 때의 정상적인 감정이었다.

삶에 장애가 되는 비정상적인 공포는 대체로 내면에 억압된 분노의 감정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의존-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

인간은 태생에서부터 의존적이기 때문에 늘 의존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건강한 의존은 서로 돕고 교류하는 유익한 관계지만

병리적 의존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자주 의존성을 우정이나 사랑과 착각하기도 한다.

종교는 가장 대표적인 의존 대상이다.

 

건강한 의존, 서로 돕고 교류하는 유익한 관계

그런 관계는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좋은 인간관계,

선하고 착한 바람직한 관계에서 누리는 평안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에너지 원이 되는 게 아닐까.

 

 

중독- 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

대상에 대한 의존이 너무 심해 그것 없이는 생활이 유지되지 않을 때

그것을 중독이라고 한다.

중독의 대상은 현실적 삶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몰입하는 대상이며,

그 심리적 근원에는 유아기의 결핍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질투-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질투는 삼각관계에서 발생하는 세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근간은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심감 없음'이라고 한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상대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마음에 질투의 감정이 생긴다고 한다.

 

삼각관계에 처하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호감을 품었던 사람을

후배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 마음에서 지워낸 일도 있었다.

여자 친구들끼리 친근함의 정도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오가는 걸

느껴질 때도 그 관계에서 발을빼곤 햇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질투가 없다고, 질투는 불필요한 감정 낭비일 뿐이라고 믿었다.

그게 다 그릇된 인식이었음을 정신분석을 받은 후에야 알았다.

내게는 질투가 없는 게 아니라 깊숙이 억압되어 있었고,

그 것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자신의 질투를 감히 마주 보고 인정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질투를 외면하면서 삼각관계에서 발을 뺄 때마다

나는 그 게임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 속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굴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질투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감정을 모두 타인에게 투사해서 질투하는 사람을 상대하기 어려워했고 또 한심하게 여겼다.

질투심, 아니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은 내 오랜 심리적 어려움의 근원이었다.

 

--질투심을 극복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의 노력이라고 한다.

상대방에게서 완전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

어떠한 감정이나 행위도 무시되지 않고 받아들여진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질투심이 극복되므로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좋다고 한다.

질투 -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부분 

 

시기심- 타인이 가진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

시기심은 행복, 성공, 명성 등 가치 있는 것을  누리는 사람에 대해

불쾌감과 악의를 느끼는 것이라 한다.

그 심리적 배경은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내게 결핍되어 있다'는 감정이며

자신과 무관한 사람을 향해서도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시기심질투라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10년도 넘은 이야기다. 아이들로 인해  안면을 터고 지낸 이웃이 있었는데

그녀는 남의 흉내도 잘냈고 이야기 소재도 무궁무진했던 아줌마였다.

아이들로 동석하거나 어쩌다 잠깐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게 남은 것은

그녀의 이야기속에 등장한 이웃들의 선입견만 남았다.

 

그녀가 투사한 대상들은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개운하지도 않은 모습들 뿐이었던 탓에 

역시 그 자리를 떠나와도 내게도 그런 심상으로 남게 되는 걸 경험했다.

그러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와의 대화를 멀리 했다.

 

지금 생각해도  특별히 기억에 남은 건 없지만 뒤가 개운치 않은 일처럼

그녀의 이야기속엔 늘 앙금같은 무언가가 느껴졌는데

그것이 그녀가 좀 예민하고 질투심이 많은 정도라고 그때는 생각했었는데 

이 단원을 읽다보니 그것이 시기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심리적 배경이 결핍감이라는 것과, 자신과 무관한 사람을 향해서도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니 딱 들어맞는 얘기같아서 더 안타깝다.

소유의 차이나 결핍외에도 미모, 재능, 명예, 행복 등 시기심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한다.

타인이 가진것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시기심에는 정당한 근거도 수치심도 없다고 한다.

무서운 감정이다. 시기심 역시 무의식의 저깊은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감정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시기심이라는 감정을 느꼈는가 돌이켜 보니

 일시적인 감정상태는 경험해 본 것 같은데

그리 오래 지속된적은  없었던 것 같으니 다행인지 모르겠다.ㅎㅎ

 

내 유아기는 맏이인데다 아버지가 군에 있었던 탓에 결혼하고 3년만에야 낳았다고 한다. 

그러니 무척 사랑 받은듯 하다. 아마도 세살이전까지는..

그 다음은 두살 터울의 남동생, 엄마 아빠가 엄청 기다린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 때 부터 내게 형성된 감정이 있다면 애정 결핍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그냥 짐작만 해보는 이야기이다. 무의식의 세계라 단정지을 수가 없다.ㅎㅎ

 

 

 

투사-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놓기

투사란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욕망, 생각,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놓는 방어기제라 한다.

지역감정, 인종차별주의, 마녀사냥은 대표적인 투사현상이다.

투사 방어기제를 벗고 모든 것이 '내 탓'임을 인정하게 되면

정신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타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나의 내면에 있는 요소들이 거울처럼 되비치는 현상일 뿐이다.

내면에 억압된 부정적 측면이 많은 사람은 더 자주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되고,

그만큼 더 자주 타인에게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당신 앞에서 제삼자에 대해 험담한다면

그 사람은 돌아서서 그 제삼자에게 당신에 대해서도 험담할 것이다."라는

속설이 심리적으로 참인 이유 역시 투사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베어 하트라는 인디언 주술사가 쓴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라는 책에는

주술사였던 삼촌이 그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서 물속에 얼굴을 비춰보게 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잔잔한 물에, 다음에는 막대기로 연못을 휘저은 뒤 얼굴을 비춰보게 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네 속에는 네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네가 싫어하는 것이 실로 네 자신의 일부이다. 늘 이것을 명심하거라."

 

'요가 다이어트'라는 책을 쓴 이는 체조선수 였는데 늘 체중조절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 책에는 그가 시도했던 다이어트 방법들이 서른다섯 가지나 소개 되어 있다.

그런데 요가를 받아들이고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어느 단계를 극복하자

마음에서 군살이 빠지듯 몸에서도 살이 빠지더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 모든 고통을 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모든건 내 잘못이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고통의 가장 큰 불씨는 바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 중략..

잘 이해해야 할 것은, 단순히 '무조건 내탓'으로 돌려 참으라는 뜻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가만히 문제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자연스레 얻게 될 발견이다."

 

불교의 일체유심조,카톨릭의 내탓이요.. 요가, 인디언 문화에서 말하는 이 모든

내탓이론이 아마도 투사현상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나 역시 평소에

나를 불편하게 했던 타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의 내면에 있음을 인정했다.

--투사현상을 통해 나 자신의 추악함과 나약함과 못남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나자

'내 탓'이라고 말하는 단계가 어디쯤인지 절로 알 것 같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정신의 힘이 강해자면서 마음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책임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어떤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은 마음자리가 어디인지 짐작할 것도 같았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보이고 타인들이 나를 시기한다고 느껴질 때면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지나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타인의 소유물 중에서 무엇을 파괴하고 싶은가?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지금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똑같은 심리적 이유로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내면의 것을 이야기하고, 그들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에게 보이는 관심을 반만 줄여도 생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역시 케슈탈트의 말이다.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방어의식이거나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중 하나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투사 -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놓기 부분

 

 

투사,, 제일 무섭고 치밀한 감정 같다.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묘한 힘을 발휘하는..

이런 투사의 감정도 나이가 들수록 이해가 되어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던지 어떤 말을 하던지

그 것은 자신을 되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말은  내 모습이 내 주변이라는 얘기 같다.

반대로 내 주변이 곧 내 모습이라는 애기이기도 하다.

 

 

분리-세상을 반으로 축소시키는 태도

인류는 태초부터 두편으로나뉘어 싸워왔다.

내 편과 네 편, 아군과 적군, 왼쪽과 오른쪽, 옳음과 그름.......,

이분법은 사람들의 마음 아주 깊은 곳까지. 일상의 세밀한 곳까지

질투해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둘로 나누어 바라본다.

 

회피- 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의 도피

내 여행의 본질은 회피 방어의식의 발로였다.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회피 방어기제를 상요하면서 오래도록

나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바다위에 놓여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다리는 도망쳐봤자 도달 할 곳 없는

회피 방어심리의 상징 같아 보였다.

 

동일시- 타인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들기

동일시는 한 개인이 타인의 어떤 점을 받아들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현상이다.

여행 중에 자주 시선을 끌던 대상은 노린과 거리의 예술가들이었고,

그들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동일시를 체험하고 있엇다.

로마와 아시시에서 만난 거리의 바이올리니스트들

거리 예술가들의 긍적적이고 밝은 모습과 자주 접하면서 나의 내면에도 동일시에 변화가 온 듯,

그들의 모습을 더 크게 사진에 담게 되었다.

 

 

타인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동일시'감정은

함께 공감하거나 소통할때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이 더 많을것 같다.

 

순간적인 것 외에도 동일시는 상대를 짐작하고 확신하는 부분이라서

그만큼 잘 알아야 느낄수 있는 감정일것 같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처럼,

대상에 대한 완벽한 신뢰가 있어야 동일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라는 생각이 든다.

 

함석은 선생님은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고 물으셨지만

이 단원을 읽다보니 동일시하는 대상을 그대는 가졌는가?라고 묻고 싶을만큼

동일시 감정은 사람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첫 단계 인것 같기도 하면서

지속되는 관계속의 보이지 않은 든든한 믿음 같기도 할 것 같다.

 

내 마음이 충만해서 나만 느끼는 동일시 감정이라면 때론 허방다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보다는 관계를 원만하게 다듬어 가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역할을 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콤플렉스-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

콤플렉스는 극복하거나 떨쳐낼 수 있는게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고 인정해야 한다.

콤플렉스를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수치스러웠던 그것을 의식속에서 통합하는 순간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이 나오게 된다.

콤플렉스가 내것이 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j 모러스는 콤플렉스를 처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콤플렉스를 숨기고

대신 다른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답처럼 작다는 결함을 맵다는 기능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컴플렉스를 사랑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그 자체를 인정하는것,

심리적 결함이 아니라 심리적 특별함. 행, 불행도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처럼, 콤플렉스도

다른쪽으로 승화시키는 에너지 원으로 사용하라니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이라는 부제처럼,

어떤 상황이든 내가 받아들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것만이 해야할 일이고 지혜롭게 사는 일이다.

 

부부간의 문제도 상대에 대한 욕구불만이 있다면 내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글을

오늘 우연히 신문에서 보게 되었다. 욕구불만을 내안에서 찾는다는 말이

언뜻 이해 가지 않았지만 욕구라는 것도 마음의 문제라는 얘기였던 것 같다.

 

2개 먹고 싶은데 1개 뿐이라면  1개로 만족할 줄 알라는 것이다.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까?  1개도 못먹는 사람 생각할 수도 있고,

2개 먹어 살찐 사람 생각하면서 내겐 적정양이 1개이고 그래서

 비만이 아니어 다행이라는 등등의 주변 여건까지 긍정적으로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욕구불만이 아니라 자기 만족감까지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외에도 찾아보자면 얼마든지 찾을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봐도 알수 있다. 잘되는 사람은 항상 잘 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고

못되는 사람은 항상 못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느 상황이든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고 결국엔 행복도 내 마음자리 문제인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병리적 자기애와 건강한 자기애로 나타난다.

병리적 자기애는 자신이 옳다, 선하다. 정당하다고 느끼는 의식이며

과대한 전능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건강한 자기애는 병리적 자기애의 모든 부정적인 면들을 인식하고

끌어안을 때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라 한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나르시시즘도 정상적인 자기애와 병리적인 자기애로 나뉜다고 한다.

모든 개인의 내면에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선하고, 옳고, 정의롭다는

성향을 간직하기 위해 무의식에 억압해둔 그 반대 성향이 있다.

그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의식을 들쑤시거나 의표를 뚫고 솟구쳐 오른다.

건강한 자기애란 바로 그 병리적 자기애를 인식하고 그것을 의식속으로

통합하는 행위 위에서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애라고 한다.

 

모든 종교적 수행은 정신의 성장으로 가는 길에서 자신의 추악함과 보잘것없음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한다.

불교나 도교에서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자들은 그 과정을 넘어서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수행 중 맞닥뜨리는 자신의 참모습이 너무나 추악하고 혐오스러워

그것을 수용하는 일이 죽기만큼 힘들다고 한다.

뒤늦게 카톨릭에 입문한 한 선배가 이렇게 말하는것을 들은 일이 있다.

 "내가 저 먼지나 티끌 같은 존재구나 싶어지면서 어느 순간 신 앞에 납작 엎드리는 마음이 되더라.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불교용어로 "마음을 항복받는다"는 말이 있다 선배가 납작엎드렸다는 상태,

오체를 땅에 대고 거듭 몸을 낮추는 절 동작 그 모두가

나르시시즘의 극복과 관련된 일이라 생각한다.

정신분석을 받은 이후 나 역시 외면하고 억압했던 내면의 것들을 꺼내보았다.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부정적 감정들, 분노, 불안, 공포, 의존성, 시기심, 질투.

모든 종류의 방어의식이 고스란히 나의 내면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 모든 추악하고 천박한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일은 충격이었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에는 아주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은더 힘들었다.

이제 나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 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점이 더욱 만족스럽다.

자기애-퇴행과 성장으로 난 두 갈래 길 부분

 

 

얼룩 덜룩하고, 울통불퉁한 존재, 그래도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

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점도 끌어 안을 수 있게 된다는 것..

당근 그래야 하고 그리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랑, 자기애가 먼저다.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라 자기충만으로 겸손할 수 있는 그런 자기애!

 

 

 

자기존중- 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

자기 존중감은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감정이다.

대중 스타들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외로움과 결핍감을 안은 채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유는 내면으로부터 자기 존중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한 사람의 사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처럼 가슴 아픈 구절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일에 지극한 만족감을 느낀다"는 뜻이고 또한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돌볼 줄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내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며, 그리하여 내사랑을

찾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본 일이 없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른다."는 뜻과 닿아 있을 것이다.

장국영 자살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이 바로 거기였다.

그는 아마도 타인들의 욕구에 응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을 것이고,

그래서 자주 사람들에게 치인다는 느낌을 받으며 인간관계를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타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토록 주변에 사람이 많고 그들과 상호 헌신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내면이 텅 빈 것 같은지 몰랐을 것이다.

그 모든 관계가 자신의 욕망, 자신의 만족감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것도 알지못했을 것이다.

 

나를 존중하는 삶 -나사니엘 브랜든 40년동안 자기존중감에 대한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

1 우리 자신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 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기본적인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2 우리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수 잇는 권리를 가지며,

또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기존중감이 천부적으로 절로 생기는게 아니라

습득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삶에 책임을 지며,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고독을 참아내며 성실성과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인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자신의 긍정적인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인정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하는 마음,

그것이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의 본질을 형성하는 토대라고 한다.

자기존중 - 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 부분

 

자기애와 자기존중감의 본질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습득하고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는 것처럼,

제대로 명심하고 습득할 때 삶이 행복해 질 것이다.

 

행복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느낌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들의 혼합체 같다.

그 속에는 절제와 인내도 필요하고 용서도 필요하다.

어찌 좋은 것만 있을까. 그런 것들을 잘 조율시켜가면서 긍정적으로 사는 습관

받아들이는 습관 생각하는 습관들을 통해서 길들여지고 터득되는 것일게다.

 

 

몸사랑 - 몸이 곧 정신이고 육체가 곧 정체성이다.

몸은 정신과 긴밀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에 무력감이 오고 마음이 아프면 그것이 바로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몸을 치장하는 의상은 몸을 보호하느 수단이면서도

또한 정신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뻔뻔하게- 유아적 환상없이 세상 읽기

'뻔뻔하게' 란 유아적 환상 없는 냉철한 현실 인식,

그 위헤 서 있는 엄혹한 생존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친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지켜보기

폼페이 처럼 관고아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는 도시,

관광객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하는 나라가 더관광객에게 친절하다.

그들의 친절은 또 하나의 관광상품이기 때문이다.

 

인정과 지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놀라운 힘

인정과 지지는 존재의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느 것은 인정받기 위해서이고

가끔 무너지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지지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한다.

남성만 그럴까. 여성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정과 지지야 말로 심리적 안정은 물론 어떤일에든 다시 일어설수 있는 힘이 된다.

'너는 할 수 있을거야' 라는 믿음,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는 말처럼,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 본성에는 인정과 지지가 필요하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를 지지해 주고 있다고 믿어지면 그것이 원동력이 된다. 

인정과 지지의 힘이다. 

 

공감 -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

공감은 모든 정신 치료자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이며 미학의 중요한 개념이라고 한다.

프란체스코 성자가 그토록 추앙받는 이유도 서민들에게 공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능력은 인간 감정의 다채로운 영역에 대해 세밀하게 체험한 위에서 획득되는 능력일 것이다.

내 속에 억압되어 있는 분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타인의 분노에 대해서도

헤아려볼 수 없다. 내 마음의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면들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만

타인의 그런 감정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처입은 자가 치유한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모든 종교 지도자나 신화 속 주인공이 왜 반드시

고난과 순교의 시간을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정확한 명제일 것이다.

 

공감능력이 가장 둔한 부류는 나르시시스트라고 기록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럴 것도 같았다. 항상 자기만 옳고, 자기 방식만 주장하고,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행동하고.....

그런 이들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 채 타인을 자기 욕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다.

 

공감은 18세기 미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이었다고 한다.

예술 작품에서 받은 감동이란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마음과 공감하는 순간의 상태일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창조한 사람의 마음에 곧바로 감응하게 만드는 힘.

그것도 시공을 뛰어 넘어 모든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강력한 힘의 비밀이

아마도 공감일 것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공감 역량은 유아가 아직 말을 하기 이전에,

엄마와 아기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공감은 전의식적으로, 조용하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예술작품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감동'이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어떤 가품을 대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울림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그 울림이 심장이나 두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고, 그 자극이 감정과 신체에 어떤 파장을 만들때,

그 떨림을 세밀하게 느껴보는 것이 내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그 떨림의 지점에서 공감 작용이 일어나는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떤 그림 앞에서 놀란 듯 걸음을 멈출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떨림을 느끼며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을때.

그런 때는 또한 무의식의 어느 지점과 조응하고 있을 것이다.

공감-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

 

 

내 안에 분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도 없다는 것,

 내 마음의 이해가 먼저라는 공감 부분의 부제는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이다.

공감은 나와 상대를 동일시하는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상처든, 흉터든, 재로 남은 일이든, 그런것들을 극복한 일,

그 상처의 치유 과정에서 얻게 되는 교훈들, 아프고 힘든 시간들.. 시간이 해결해준 많은 일들,,,,

그것들은 세월의 힘으로 남아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 준다.

  '상처입은 자가 치유 한다'는 말처럼,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것이고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무상한 세월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은  무한히 많다.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인  공감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기본이 아닐까.

공감, 너와 나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단어다.

못난 마음, 화나고 분노하는 마음,  상처 뿐일지라도 공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것이며 행복해 지지 않을까.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단어,  '공감' 사랑의 시작도 공감부터일 것이다.

 

 

용기- 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

용기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안은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능력이라고 한다.

홀로 존재하는 용기, 내면과 직면하는 용기, 선을 지키는 용기 등

우리 생의 각 국면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롤로 메이는 생의 각 국면에서 여러 종류이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홀로 존재하는 용기,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는 용기,

선이나 도덕을 지키는 용기, 신체의 힘을 잘 사용하는 용기, 창조하는 용기,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감정의 동요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그는 어떠한 용기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모두

그 사람의 무의시적 공포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단순한 허세라고 말한다.

용기가 없다면 사랑은 단순한 의존 상태가 되고 용기가 없다면 충성심은 획일주의가 되고 만다.

용기는 일체의 정신적인 덕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라고 한다.

용기- 절망속에서도 전진 할 수 있는 능력

 

변화 -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최근 몇 년간  삶은 내게 실험 같은 것이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여러 자아를 만났고,

타인과 관게 맺는 방식을 점검해 보았으며, 선배 여성들의 삶에서 앞길을 더듬어 보았다.

 

 

오래도록 나 역시 결핍감을 추진력으로 하여 살아왔을 것이다.

그 결핍갑을 메우려는 욕망을 마음의 동력장치로 삼아 현실적인 무엇인가를 성취해왔다.

질투는 나의 힘, 분노는 나의 에너지, 콤플렉스는 나의 추진력......, 다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나르시시즘적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일상의 어려움이나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멀리 떠나고자 하는 방어의식......,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내 삶을 이끌어온 게 틀림없었다.

 

삶이 막다른 곳에 부딪친 이유도 거기 있엇을 것이다.

모든 정신, 에너지는 양날의 칼이기에 외부로 나아가는 만큼

내면으로도 향하여 알게 모르게 나 자신에게 해를 끼쳤을 것이다.

감정을 무겁게 짓누르고, 정서의 생기를 빼앗고, 창조성을 억압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무리 성취해도 만족감이 없었고, 이유도 없이 몸이 아팠고,

어쩐지 삶이 자꾸만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생의 에너지와 추진력이 되어주었던 바로 그 힘들에 의해 몸과 마음이 무너지게 되었을 것이다.

변화 -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부분

 

 

결핍감을 추진력으로 살아가는 일, 멋진 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주어진 현실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는 일,

그런 것들이 어떤 일에서든 성공의 원동역이 되는 사레를 수도없이 보아왔다.

몸이 좋지않아 시작한 운동이 마라토너를 만들었다거나

스포츠 선수를 비롯한 숱한 일화들을 보면 ,언제나 그렇다.

성공은 희망뒤에도 있지만, 결핍되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결핍되어 보지 않은자는 느끼지 못한 그 결핍이 추진력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모르는 분노가 일때가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사회적 모순으로 인한  개인과 개인의 상황이 아닌 개인과 단체(공공)와의

대립에 처하고 나면 한번씩 기 막히고 벽에다가 얘기하는 것 같은 상황도 있다.

이런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름 몸부림 쳐 보지만 방법이 없을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런 분노와 초조, 신경질, 해결책을 요구하는 닦달 등등

그 개인의 모습,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개인의 모습이 곧 그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빨리빨리에 익숙하고 기다리거나 공중도덕 등 지킬것 다 지키는 문화에 익숙한 사회는 아니다.

많이 달라져 가고 있지만 그런 개인의 모습은

 그 사회가 달라지면 그개인의 모습(반응)은 저절로 달라 진다고 한다.

의식의 변화가 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게고,

그런 사회적 믿음이 형성되어야 선진사회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회적 믿음으로 내가 지키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한 길이라는 것

내가 지켰을 때 손해보지 않는 다는 느낌.. 등

설령 예기치 않은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이 사회 또는

그 공기업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리라 믿는것도 사회적인 믿음이라고 한다.

그럴때 그 사회의 개개인은 여유로우며 크게 흥분하거 닦달할거나 하는 일 없이 그 사회적은 믿음이 구축되어 있기에 담담하게 일탈의 상황도 수긍하는 의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기실현-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기 실현은 억압이나 회피 방어를 벗고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차즌 일이라 한다.

본서으 자기와 만날 때에야 지혜와 통찰의 순간이 찾아온다.

 

르로이트는 예술가들의 창조성이란 억압된 리비도(성적욕망)의 승화된 표출이라고 했다.

어떤 정신분석의들은 특별한 사람들의 천재성이라 그들의 신경증이거나 광기라고도 한다

고흐의 삶에서 보이는 여성과의 소통 불능, 억압된 리비도,

강화된 광기, 폭발한 창조성 들을 염두에 두면 그런 정의는 옳아 보인다.

고흐의 삶은 위험한 무의식의 충동을 아슬아슬하게 다스려온 과정에 다름 아닌 듯 보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학파가 창조성을 승화라고 정의하는 데 반해 융은 다르게 설명한다.

융에 의하면 창조적 재능이란 이미 우리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천부적 영역이며,

창조성이 발현되는 행위는 우리의 자가가 그 창조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리비도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창조성을 발휘했던 피카소 같은 인물에 대해 생각하면

융의 정의가 더 적합해 보인다.

 

피카소 예술적 성취와는 별도로 팔십의 나이에 십대와 결혼 아이를 낳았다.

피카소가 자신의 예술적 창작 얼마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집중했는가 하는 점,

피카소의 창조성은 융이 말한대로 무의식의 거대한 영역을 저항이나

억압없이 자아가 수용한 데서 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는 내면에 어두운 욕망과도 소통했으며, 부정적 자아들도 그냥 내보였고,

그 모든 국면들이 인간임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해 위에서 입체적으로 분해된 그의 인물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이끌어왔다."

는 말은 그가 창조성의 근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피카소의 창조성은 억압된 리비도가 없었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 같다.

반대로 고흐는 수많은 사랑에 실패했고, 일찍 떠났다.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다보면 그의 생애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는지  엿볼수 있다. 

 편지글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진솔함은 달려가 위로해 주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만 했다.

사촌여동생을 좋아했고 두번째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랬고

 세번째는 임신한 창녀와의 사랑이었는데 그 아이와 함께 잠시나마

행복하게 살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목사인 아버지와의 불화로 도 힘들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고갱과의 동거도 2달로 끝났다.

 결국 귀를 자르고 자살하기 까지..

 

고흐는 가족에게서 배척당한 아니 스스로 떨어져 나간 그런 삶을 살았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고 어른들의 삶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잃지 않는것은 그림에 대한 강한 열정 그것하나로만 산 것 같다.

생전에는 누구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은 그림이었지만 

그의 사후는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삶을 살았던 화가,,

천재들의 비애를 접하다 보면 차라리 평범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대부분 아픈 삶을 살았다.

 

그래도 그를 알아준 사람, 물감을 사주고 돌봐준 동생 테오와 나눈 '영혼의 편지' 읽다보면

그래도 테오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천재를 알아봐준 사람은 동생 테오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역시 기록물은 세대를 초월해서 남겨지고 누구에게든 자신의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인류가 남길수 있는 것들중 가장 진솔한  것인지도 모른다.

 

 

창조성의 비밀은 내면에 있는 자아의 다양한 국면을 인식하고 통합하고

표출하는 능력에 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들은 그런 행위를 '자기 실현'이라고 칭한다.

억압이나 회피의 바어를 벗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닿는 것,

그것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본성의 자기와 만날 때에야 빛나는 지혜와 통찰과 창조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창조성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 때, 낯선 지방을 방문할 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도 창조성을  발휘한다.

생이라는 것도 60이나 70년 쯤 되는 시간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기획해서

사용하는가 하는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자기 실현이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생을 보다 지혜롭고 풍족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엮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자기실현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은 아닐지 몰라도

정신은 더욱 윤택해지는 길이며 지혜로워지는 일이다.

그래서 나이듦이란 좀 더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지고 안정되어 가는 과정 같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제시한 나이가 마흔이 되어도 '이럴'마음일줄 몰랐다는 말과

예순이 되어도 '그럴'것이라는 '이럴' 과 '그럴'은 이나이에 제대로 공감이 가는 단어다.

5년전 그때는 눈에 띄지도 않은 문장이기도 했다.

 

나이듦이란 굳이 내색하지 않고 요란스럽게 살갑게 굴지 않아도 마음 저편이 느껴지고

 '이럴'이나 '그럴'을 공감하는 일인것 같다.

 

 젊었을땐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는일이고 편안하고 안정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여서

열매로 치자면 숙성되고 단맛이 들어 가는 과정일 터이니 행복한 과정! 인  것이다.

 

그래서 반갑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주름살이야 늘지만 그 여유같은 주름도 젊음은 못가지는 여유일 터이니

나이듦의 특권이라 생각하면 그것 또한 싫지 만은 않을 수도 있다.

 

70, 80이 되어도 마음은 늘 마흔의 '이럴''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란 걸 느끼게 된다.

 아니 확신하게 된다. 마음은 세월도, 시간도, 나이도 다 비켜가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이 고운 마음 아름다운 마음 다스리기 만이

우리가 진정 행복하고 윤택하게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5년전 신간일 때 구입해서는 재미없다고 대충 읽고 던져 두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역시 내 나이를 실감했다.

 재밌는 책은 아니었지만 이해하고 싶어서 손에서 며칠을 놓치 못했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은 책이라 던져두었다가 펼쳐보기를 몇번,

이렇게라도 몇자 적어두어야  흔적이라 남기는 일같아서 정리해 보았다. 두서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