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눈보라-사이토 마리코

구름뜰 2010. 1. 18. 08:44

 

 

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 애랑 같이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하는 내기이다.

창문 밖에서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하나씩 눈송이를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눈으로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 땅에 착지해 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정했어" 내가 작은 소리로 말하자 "나도"하고 그 애도 말한다.

그 애가 뽑은 눈송이가 어느 것인지 나도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제 것을 따라간다.

잠시 후 어느 쪽인가 말한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로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 야단맞을 때까지 열중했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있다.

 

 

 

* 단호히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내게  '운명적으로 뽑힌 하나의 눈송이' 라고 말입니다.

'정했어' 하고 나는 이미 말해버렸습니다.

"거짓말해도 절대로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 야단맞을 때까지"

당신께 열중하겠습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풀풀" 날리며 눈보라 속 허공을 떠도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들 부박한 존재의 운명이기에 더욱, 한때가 아니라 아마도 끝까지, 나는

"그런 식으로"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 지만, 내겐 오로지 "단 하나의 눈송이" 인 당신.

당신은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지상에 안 닿아있습니다.

엄원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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