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도가니- 공지영

구름뜰 2010. 3. 6. 15:06

  

 

해야할 일들이 순차적으로 밀려들고, 이래 저래 분주한 2월을 보냈다. 

책 서평 쓰는 일이 사고력 향상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읽은 책을 정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어영 부영 지나다 보니 물흐르듯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은 '사랑후에 오는 것들'과 함께 구입해 읽었는데 날짜를 보니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도가니'는 공지영작가가 많이 준비한 책 같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젊은 인턴기자의 법정스케치 풍경을 그린 이 한줄의 신문기사를 읽게 된것이

공지영 작가가 이 책을 쓰게된 동기라고 한다.

실화를 배경으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모티브로 쓴 책이다.

이 글을 쓰기위해  숱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등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글 쓰는 작업은 내 안에 축적된 지식과 경험, 구체적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은

배경지식들까지. 짜낼수 있는 모든 것들을 총 동원하고,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은 찾고 물어 알아야 써나갈 수 있는 작업의 연속이다.

 

특히 이런 사회적 이슈가 된 글을 쓰기위해선  엄청 더 많이 준비해야 했을 것이고,

다 드러내지 못했을 이야기들까지. 나름의 첨삭과정 거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균형감을 유지하면서  퇴고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까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단명 일 순위 라는 '작가'라는 직업이 충분히 존경받아도 될만한 직업군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도 쉽지 않은 일을 작가들은 해 낼 수 있으며 해 낸다.

시대적으로 암울했던 근 현대사의 수많은 문필가들이 일제에 저항하며

그 처절함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승화,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민중들에게 호소했던 글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에서 부터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비롯

다 열거하기도 벅찰만큼 많은 작품들을 보면 작가들을 향한 경외와 감탄이 인다.

 명문이 괜히 명문이 아님을  읽을 때마다 알게 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 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어네지가 필요한것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서유진은 안개 낀 거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법이라는 것이 엄연 있고 인권이 있지만,

실상은 힘있는 자들에게만 존재하는 것 같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

그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잔혹하고 냉철하고  철저한지를

인두겁을 쓰고 어찌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속에선 까발려지고 들여다 볼 수 있다.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모르기에 그들이 지키려고 애쓰는 에너지 만큼 그것을 쟁취할려고 ㅎ지 않으며

그래서 기득권 , 그들만이 누리게 되어있고 그렇게 굴러가는 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들의 잔혹함이나 음모, 지략 같은 것에 관심도 두지 않는다.

내 일이 아니면 골치 아파서라도  무심해지는것이 위리 살아가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시사 고발프로 같은 것도. 볼때는 엄청 흥분하지만 보고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사느라 바쁜게고, 아니라는 생각에 실천하는 양심으로 어떤 일을 할려면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치열해야 하며,

당연 내 일은 뒤로 미루거나 제껴두어야 한다.

 

상대에게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상처 받는 일일수도 있다. 그것을 감수하고도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조금식 변하고,, 삶의 질은 나아진다. 

 

 

 

이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사명감 같은 것을 보았다.

누구도 하기 쉽지 않은 일을 글로 파고드는 집요함 같은 것.

책속에서 돌아온 싱글이며 장애아이를 둔 서유진은 끝까지 싸운다. 

싸우는 만큼 상처받는 일 같지만  그렇게 싸우고 이겨낸다.

내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일하는 사람들..

 글쓰는 사람들이라도  외면하지 말고 열심히 쓰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을

 공지영 작가도 느꼇을 것 같고 그래서 이 책이 나올수 있엇던 게 아닐까. 

 

10년전의 의식과 지금 의식수준이 달라진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은 분명 조금씩 이런 사람들로 인해 변화되고 있다.

 

무진에서 살고 있었던 서유진과 강인호는 대학 선후배 사이이다.

  주인공 인호는 무진의 청각장애인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부임하는 날부터 학교에서 이상한 기류를 느낀다.

 말못하는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위치만 곤고히 하며 살아가는

짐승만도 못한, 그 용서할 수 없는 교장 교감 그외 그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

 

무진시가 모두 그들 편이라고 할 만큼 경찰도 교회도 모두 모두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지만,  두사람은 진실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

법정싸움이 계속 될수록 강인호도 예기치 못했던 상처를 받는다.

 자신과 과거에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이 나중에 자살했던 일,

그 여인이 제자였다는 이유로 제자를 성폭행한 파렴치범으로 까지 몰려져 언론에 뭇매를 맞게되고

그의 아내는 상처를 받게 되며 제발 그만할것을 종용하지만,

그는 싸워야 겠다는 소명감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아내가 서울에서 그를 데려가기 위해 내려온 날 밤..

강인호는 잠든 아내의 머리맡에  편지를 남긴다.

 

 

 

사랑하는 당신.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무진을, 안개를, 그리고 이 무진의 안개 속에서

발견한 어떤 희망 혹은 또다른 나를 .

 

이곳에 내려올 때 나는 거대한 대도시의 자본이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내버린

한 마리의 패배한 짐승 같았어.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 

그런데 내가 가르쳐야 할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어.

그런 뭐랄까. 정의 혹은 신성 혹은 좀더 존귀한 것에 대한 갈망 . . . . . .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돈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며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어떤 것을 향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거야.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

그것도 아주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 어떤 기쁨을 맛보았어.

그리고 그것은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지만 낯설고 고귀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인 내 속에 원래 그런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웃을 위해, 더불어 함께하기 위해 싸울 때 내가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안 거야.

그리하여 한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다른 존엄한 생명들을 짓밟는 자들과

싸우고 싶어졌던거야. 이것은 내 인생에서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나는 다른 누구를 위해서보다 나 자신을 위해꼭 이 일을 마치고 싶어.

아이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조건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고생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거 같아.

 

새미 엄마,

내가 가려는 이 길이 우리 가족에게도 결국은 옳은 길임을 진작 말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내가 새미를 위해 이 일을 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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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여기를 떠나면 나는 아직도 그저 제자를 성폭행한 인간이고.

월급 몇푼 벌려고 무진까지 흘러왔다다가 기껏 부당해고나 당하고

다른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또 하나의 패배한 짐승이 될 뿐이야.

자본이 소화시키지 못하고 자본에 패배한 것도 모라자

이제는 야만에마저 패배당한 그런 인간이 될지도 모르지.

당신이 이해할지 모르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설사 수십억의 돈을 번다 해도 나는 영영 불행할 것 같아.

 

사랑하는 당신 오늘밤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천막을 철거하러 온대.

아이들이 거기 있어. 짓밟히고 상처받았으나 이제 겨우회복되고 있는 아이들이.

그 아이들도 내게는 결국 모두 새미와 같아.

그리고 동료들이 있지. 아닌것을 아니라고 말하다가 고난받는 내 동료들이.

그들은 내게 결국 모두 당신과 같아.

 

당신이 깨어나면 나는 아마도 여기 없을거야.

새미를 데리고 서울로 가서 조금만 기다려줘.

그리 길진 않을 거야. 약속할 게. 더 당당하고 멋있는 아빠와 남편으로 돌아가겠다고.

새미 엄마 내 비록 깃발을 휘날리는 그런 영웅은 아니나.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이 개들에게 짓밟히는 걸 그냥 바라볼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은 아니야.

무진은 내게 그걸 가르쳐주었어.

나는 당신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줄 것을 믿어.

그러니 당신도 날 믿어주길.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편지를 썼지만, 결국 강인호는 한사람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였던 강인호는

 차마 천막에서 서유진이 기다리는 걸 알지만 그곳으로 가지 못한다.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이른 아침 아내가 보기 전에 찢어 버리고, 결국 아내를 따라  무진을 떠난다.

 서유진은 끝까지 싸웠고 무진을 자애학원을 변화시켰다.

시간이 흘렀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한것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강인호에게 

서유진은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네가 보여준 헌신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어.

네가 우리를 잊었다 해도 우리는 네가 늘 그리울거야."

 

 현실의 무게감.

가장의 무게감.

강인호의 편지글은 가장으로서 가지는 무게감

이상과 현실의 차이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기대만큼 아닌경우도 더러 있지만 공지영 작가의 글은

성긴곳을 찾아 볼래야 볼 수 없을 정도로  꽉 짜여져 있다.

그것이 작가의 역량이라는 걸 알기에 읽을 때마다 좋다.

'도가니' 서평을 깊이 고민해 보지도 않고 지금에라도 몇자 남기는 것은 

읽어보라는 권유의 뜻이 있기도 하고,  장편이라 스케일이 방대한 때문이다.

 

이렇게 라도 몇자 적어두면 국물 맛이라도 본 듯한 기분이 들것 같아서

주말을 이용해서 몇자 적어 보았다.

혹여 읽는 사람들에게 실망이 될가 저어되지만,

그래도 이왕 읽었다면.. 그것으로 족하기를 바라며..

비오는 토요일 오후에 할일은 제쳐두고

짬내서 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