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일보에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를 연재했던
박광수님의 글과 그림에 김유철의 사진이 함께 실린 공저다.
<해피엔딩>은 그동안 박광수님이 낸 책 중에 열한번째라고 하는데
광수생각 만화나 짧은 산문들을 몇 편 경험한 적 있지만 책으로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작은아이랑 서점에 들렀다가 녀석이 고른것들 중에서 보게된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짧은 단상들이 그림과 함께 또는 사진과 함께 실려있는데
시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 1장에서 3장까지 있고,
4장에서는 '죽기전에 해야 할 일" 이라는 부제로 일곱가지 산문들이 실려 있다.
작가의 사색과 경험이 잘 어울리는 진솔한 글들이다.
겨울애(愛)
겨울속으로 당신을 묻고
봄에 만난 당신 곁에
이름 모를 꽃 한송이 피어 있다.
당신을 다시 만난 듯한 반가움에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솟는다.
당신 품에 핀,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꽃송이가
울지 말라고 내게 도리질을 한다.
당신 없이도 잘 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부모님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야기다.
보내고 나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
떠나고 나서야 알게되는 이야기 들이다.
해피앤딩은 그래서 제목처럼 마지막(죽음)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이별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의 가치를 찾는 작가의 심성을 만날수 있다.
죽음이 당연 행복한 소재는 아니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경험하지 않고서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
위사진은 책속에 실린 사진인데
"저 죽으면 봐요"라는 기막힌 메모!가 기상천외 하다.
할머니를 만나려면 자신이 죽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아는 정도의 나이라면 대여섯 살 쯤 일까.
할머니에 대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대목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슬프기보다는 자꾸 웃음이 나는 이런 순수함...
지금은 잠깐만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시간이 내 그리움 해결 해 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하게 웃으며 지금을 말하겠죠.
그래요, 저도 압니다.
그래요, 당신 말대로 다 털고
메마른 웃음으로 '안녕'이라고 말해야겠죠.
그래요, 당신이 내게 하는 말
다 알고, 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의 수많은 그 말들
잠깐만 멈춰주시겠습니까.
지금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끝까지, 사무치게
사막을 알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막을 다닐 필요는 없다.
단 하나의 사막이라도 모래바람을 뚫고 끝까지 다녀왔다면
그 것 으 로 족 하 다.
생선의 맛을 알기 위해 세상의 모든 생선을 다 먹어 볼 필요는 없다.
단 하나의 생선이라도 머리부터 뼈까지 남김없이 먹어 봤다면,
그 것 으 로 족 하 다.
커피맛을 알기 위해 세상의 모든 커피를 전부 마셔 볼 필요는 없다.
싸구려 자판기 커피라도 그 향을 가슴 깊이 음미했다면
그 것 으 로 족 하 다.
진정한 사랑을 알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마주할 이유는 없다.
단 한 사람과의 사랑이어도 뼛속까지 사무치는 것이었다면
그 것 으 로 족 하 다.
그것으로 족하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사무치게.
끝까지, 마지막까지, 사무치게,
매 순간 순간 한번 뿐인 인생..
그래서 소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한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일이 세상 전부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글귀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사무치게,,,
놓치지 말아요.
첫눈내리는 겨울밤 골목길에 그와 함께 있을때,
오랫동안 미뤄 왔던 "사랑해" 고백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던 어느 봄날,
작고 초라해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느끼곤
아버지를 등 뒤에서 꽉 껴안아 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별똥별이 떨어지는 어느밤,
소원을 빌 수 있는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도심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 사이를 뚫고 나온 작은 들꽃을 보며
바쁜 걸음 멈추고 잠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하루하루 미루면 어느새 나보다 더 커져서 안아줄 수 없는 아이
지금 안아줄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그 순간을 조바심으로 놓치지 말아요.
슬픈 영화를 보다가 옆 사람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눈물,
마음껏 울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자주 찾아오지 않을 세상의 모든 작은 기회들을 놓치고 후회하지 말아요.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 금 뿐 인 그 순 간 들 을
---제 1장 지금이 아니면 中에서
지금이 아니면 할수 없는 말들
마지막을 예감한다.
내 앞에 있는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음을
떨리는 내 손끝이
아득한 내 두눈이
두근거리는 내 심장이,
세상의 어떤 이별의 말보다 빨리 마지막을 알아버렸다.
마지막을 예감한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떠나는 당신을 온전히 놓아주는것
하지만 그 일이 너무 어렵다.
마지막이기에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음을 안다.
그것을 잘 알고, 공소시효마저 지난 말이지만
지금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기에
떠나는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오늘이,
지금이,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는 그말,
"사랑해요"
올 삼월 말일날에 시어머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교회에 다니기를 바라셨던 어머님 마음을 알았지만
신앙심이라는 것이 내게는 도통 생기지 않았다.
임종을 예감한 시간을 의사가 미리 알려 주었고, 의식도 없어서
기계수치로만 어머님 생명을 확인하는 시간 이었다..
산소수치가 100 이 정상인데 서너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내려 가기 시작하더니
50, 45, 30까지 내려가서는 한 순간에 0으로 바뀌어 버렸다.
화들짝 놀라고 다급한 마음에 무슨 말인가를 해드려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청각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준비했던 말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말,
"어머님 죄송해요, 찬송가를 못 불러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어머님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구요?"
떠나는 어머님께 마지막으로 할 말은 "사랑합니다" 말고는 없었다.
내 고백을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그러고선 어머님은 숨을 거두셨다.
그 순간이 아니면 다시 할 수 없는 가장 절박한 상황,
그것은 "사랑해요" 라는 말 말고는 달리 없었다.
코미디언 서영춘
요즘 세샹에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가물가물한 내 유년의 기억속에서도 그는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최고 코미디언으로 남아 있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다는 증거는 아직도 곳곳에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한 지점에 있다.
서영춘 선생의 영결식장에서 평소 그와 절친했던 동료 코미디언이 조사를 읽어 내려갔다.
"1928년에 태어나신 고 서영춘 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었습니다.
그는 코미디언으로 많은 발자취를 남겼으며, 가요 음반도 여러 장을 발표하셨으며,
여러 영화에도 출연하실 정도로 다재다능한 분이었습니다.
대표 영화로는 '여자가 더 좋아', '여자가정부', '부부 교대', '염통에 털 난 사나이',
'출세해서 남 주나', '만져만 봅시다', '가갈갈갈'......,"
조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많은 이들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껏 혀를 깨물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목만으로도 평생을 익살과 재치로 살아온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천 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십니다. 쿵자가 장장 쿵장장"
그 분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도 이렇게 노래하면서 천국을 순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문객들은 울다가 웃었고, 웃다가 울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준 서영춘 선생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 코미디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이글을 읽어가면서 나는 처음에는 웃었지만 어느새 울고 있었다.
이 순간
너를 만나고 싶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순간
긴 인생의 여행에서
체력이 바닥나고, 눈물도 바닥나고,
희망도 바닥나 모든것이 기진맥진한 지금
너를 보고 싶다.
털끝마저도 움직일 수 없는 이 순간에
너를 만나 네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긴 잠을 자고 싶다.
지금이 딱 그 순간이다.
---제 2장 할 수 없는 말들 중에서
눈물의 착각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건데요
눈물은 눈에서 차서 흘러넘치는 게 아니에요.
배꼽 언저리부터 조금씩 차기 시작한 눈물은
뜨거운 심장을 지나면서 따뜻하게 덥혀지고
이내 목을 넘어 눈가에 이르러 눈을 깜박이기 바로 전에
주르륵 미끄럼틀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겁니다.
그 래 서 눈 물 이 흐 를 때
목이 메고, 그 눈물이 뜨거운 거랍니다.
지금 눈물을 흘리는 당신이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눈이 와도, 항상, 비가 와도 항상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별이 총총한 날도 항상
별이 뜨지 않은 날도 항상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제거 울거나, 웃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제가 원할 때는 항상 자리 비우지 않고
늘 한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답답한 날 또 오겠습니다.
정 말 이 지 항 상
때 늦은 다짐
다 음 에 는 당 신 의 손 을 꼭 잡 을 게 요.
다음에는 미루지 않고,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할게요,
다음에는 당신이 힘들어 할 때 뒤에서 꼭 껴안아줄게요.
다음에는 한가한 오후 저녁,
당신과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 나갈게요,
다음에는 당신을 더 예뻐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줄게요.
다음에는, 다음 생에는 말이에요.
당신을 묻는 날, 늦은 다짐을 해 봅니다.
당신 말처럼 살아가면서 쉬운 일은 없습니다.
죽어서도 쉬운 일은 없습니다.
누군가를 묻는 일,
눈군가가 묻히는 일,
쉬운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땐 좋았지
잡지를 보다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가수이자 연기자인 김창완 아저씨.
사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곤 인터뷰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아저씨 나름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별 생각없이 읽어 내려가다가
어느 한 줄에서 그만 멈춰 버렸다.
기자: '그땐 좋았지' 라고 말할 순간이 있다면 그게 언제였나요?"
김창완: 막내가 죽기 전 어느 날이라도......,
그 기사를 읽고 나서, 내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드을 다시 생각했다.
너무 손에 쉽게 잡혀서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는 수많은 것들,
왜 우리는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
김창완아저씨의
가슴에 묻고 사는 아픔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한참을 울었다.
속이 후련하도록...
시간이 지나면
그랬구나......,
그랬구나......,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내게는 당신과의 일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나
당신이 보고 싶어요.
웃을때 한쪽 눈이 작아지는 당신,
그런 당신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요.
당신이 눈물 나게 그리워요.
내가 힘들 때면 나를 꼭 안아주던
당신의 품이 그 품에서 느껴지던
심장소리와 체온을 한 번만 더 느끼고 싶어요.
서러운 날이면 당신을 더 만나고 싶어요.
다시 만날 수 없는 당신이지만
한 번만 한 번만 더 만나보고 싶어요.
이런 내가 이상한가요?
---제 3장 사랑합니다 中에서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어찌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그래서 제호를 해피엔딩으로 붙이지 않았을까!
나는 내 부모에게 어떤 모습일까. 근자에 아니 작년의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 칠순잔치 때 부모님 친구분들을 초빙해 왔는데
그 중에 관상인지 무언가를 잘 본다는 엄마 친구분이 참석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우리 사남매 자녀들의 짝꿍까지 합해서 여덟명의 관상을 그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봐 달라고 요구했고
그 분은 잔치집에 오셨으니 신명나서 식사중에 역시나 즉흥적으로 봐 주신것 같다.
너무 잘 맞는다며 잔치가 끝난 며칠 후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엄마를 통해서 그 평을 들을 수 있었다.
사위부터 며느리까지 그 분 말씀을 빌어 한명 한명 돌아가면서 기억력도 좋게 전해 주셨는데
나에 관한 평이 그 중에서 제일 압권이었다.
큰딸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천사가 따로 없구만...."이라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나는 뜨악해져서 유구무언으로 웃기도 뭐할 정도의 이상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 왈,
"너 천사 맞잖아."였다.
그 분의 말씀보다 쐬기를 박듯이 " 너 천사 맞잖아"라는 엄마평은 거의 촌철살인의 경지였다.
이런 송구 스러울데가 엄마의 속내를 듣는 순간의 부끄러움이란,
자식보고 천사라고 생각하는 부모맘과 자식이 생각하는 천사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그런 단어에는 가당치도 않은 나를 아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부모맘을 어쩔까.
그 애피소드 이후로 나는 천사 흉내!라도 내는 게 도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필이 어떻게 통해서 첫인상으로 그런 것을 읽어내는지 모르지만,
근거도 타당성도 없는 얘기같지만, 그래도 잘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니
안 본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은 한다.ㅎㅎ
기분 나쁘지 않는 평, 아니 자신의 모습보다 더 좋은 평을 듣는 일은 기분도 좋고
그에 맞추려 애쓰는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로 내가 좀더 노력하는것만 봐도 그렇다.ㅎㅎ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는것은 해피 엔딩의 단초다.
부모님들께 무조건 잘하고 볼 일이라는 것에 무슨 이유를 달까.
복 받고 싶다면 내게 뭔가 좋은 일이 있었으면 싶다면,
부모님 기쁘게 해드리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나 영원히 어느상황에서도 내 편인 부모님,
자식의 영원한 응원군인 부모님게 잘해드리는 일이 자식으로서 제일먼저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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