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신경숙

구름뜰 2010. 7. 27. 10:11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팔 년 만이었다.

나는 단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어디야? 하고 물었다.

그가 침묵을 지켰다. 팔 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한 시간 단위로 풀어놓으면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올 것이다.

팔 년 만이라고 말했지만 팔 년 전에도 우리는 지금은 잊어버린 무슨 일인가로 사람들과 만나

서로 다른 곳을 보다가 헤어잴 때에야 가만히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게 다였다.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은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 따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고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 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 한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어느날

다시 한 번 찾아 읽는 그때도 마음이 흔들리는 그런 소설을 탄생시키고 싶다고.

쓰는 자와 읽는 자에게 치유와 성장의 시간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을 때도 그랬고, 이번 일곱번째 소설이라는 이 책도 그렇고,

신경숙의 소설은 독백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전적이며 섬세한것같다.

성향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를 부탁해도 공감하면서  읽었음에도

 한 줄 서평도 쓰지 못해  고민하다 덮어버렸고, 이번 책도 마찬가지로 똑 같은 마음이다,

 

무겁고, 아픈 이야기.. 

작가의 긴 호흡이 느껴지고, 장편을 담담하게 풀어낸  역량이 돋보인다.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감정이입이 쉽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말처럼 한 번  더 읽는다면 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기를 지나던 시절, 상처였지만 세월 덕분인지 이제는 반추해도 담담할수 있는..나이

누구나 통과해온 삶의 여정들,, 그렇지만 지금은 무엇때문에 그랬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은 것들

어떤 것들은 가끔 시공을 초월해 대면하게도 되는 것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누구나 안고 사는 것들을 섬세하게 풀어낸 것 같고

그 결따라 위로받게 되는 문장들도 많다.  

 20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도 있고,  다시산다면 해보고 싶은 일들도 있다.

그래서 청춘이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그가 여과도 없이 8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껑충 내 공간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세월이 흘러버려 무엇 때문이지 조차도 잊어버린 것들.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마지막 만남은 어떠했는지 그날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으며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 까마득한 그런 날들이 그와 함께 밀려오는 느낌..

그래도 헤어지고 얼마간은 마음속에 할 말이 남아 있어서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것들이 분명 있었는데

세월은 그것마저도 삼켰는지 지금은 사라졌고,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아득한...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들이네.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자들이기도 하지.

거대하게 불어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란 말이네

강물이 불어났다고 해서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나르게. 뿐인가.

강을 건너는 사람과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네.

여러분은 불어난 강물을 삿대로 짚고 강을 건네주는 크리스토프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전체이며 창조자들이기도 해.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물을 건너는 사람 중에서

 

 

 

우울한 사회풍경,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던시절

 내가 무얼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할지 길도 보이지 않던 시절,

그 시간속을 건너온 우리는 어느새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과 타협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않았던 청춘도 있었고,

 쳐다만 보는 이도 있고, 매번 떨어지면서도 다시 오르는 청준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던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만이 완전하게  각인되던 시절,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  학교를 떠나며 윤교수가 남긴 편지中' 

 

 

정윤과 단이 명서와 미루

정윤의 엄마는 병으로 죽고, 정윤의 고향친구 이자 남자친구인 단이는 군에서 의문사한다.

명서의 단짝 여친인 미루,  미루 언니가 대모 대열속으로  전신에 휘발유를 두르고 투신할때

그것을 직접 목격했고 말리다가 자신의 손에 화상을 입은 상처를 안은 미루

명서는 미루 곁을 지키지만 .... 결국  미루는 자살을 선택하고.. 

 

 윤교수만이 청춘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 줄 수 있었지만,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

우정같기도 사랑같기도 한 청춘시절의 관계망, 때로는 우정이었다가

사랑이기도 했던것 같은 순간들..  그런 감정조차도 역시 불완전했던 청춘시절..

 

사랑과 우정속에서 성찰하고 조망하며 넓혀지고 성숙해지는 인간관계..

 우정 같은 사랑과 사랑같은 우정을  정윤과 명서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명서가 정윤에게 . 늘. 을  잊. 지 . 말. 자 고 했던 것은

그것 말고는 정윤에게 상처많은 두 사람이 끌어 안을 수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처뿐인 영혼들,, 그 시절에 자신이 정윤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녀를 보내 주는것, 

그것이 상처주지 않고 사랑하는 일임을 명서는 알고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오늘,,, 지나간 오늘 오지 않은 오늘,  언제나 우리는 오늘만 살고 있다.

 

명서가 강조한 오늘은 그와 함께인 오늘이기도 하겠고, 날마다 충실해야할 오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하지만,  꼭 함께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떠나보내 주는 것이  사랑하는 방법인 사랑도 있을 것이다.

정윤 또한 명서를 그렇게 놓아준다. 그것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오래 사랑하는 방법인지 모르지만,

그 둘은 그렇게 서로를 놓아준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고 불쑥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와도 우정과 같은 사랑이고

사랑같은 우정이어서  지속할 수 있는 그런 평행선상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보다 소중한 날이 또 있을까.

어제 사랑했던 그 사람이 오늘 내 사랑이기도 하고 아닐수도 있지만

중요한건 언제나 오늘이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오늘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작은 배 한 척이 중에서

 

 

세개의 벽과 두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하지만 돌도 더위도 추위도

또한 당신도 막을 수는 없지

내 맘대로 내 속에서

마치 계절이 오가며

땅 위에 숲을 만들듯

내가 당신으 부쉈다 다시 맞추는 것을

- 우리가 불 속에서 중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곧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는 일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윤교수.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인간이거나 미미한 사물이거나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던 그런 순간이.

그가 팔 년 만에 두번째로 전화를 걸어와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아. 하고 말했을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우. 리. 오. 늘. 을. 잊. 지. 말. 자. 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폭로를 거슬러오르는 연어떼처럼 현재의 내 시간을 일깨웠다.

--

왜 그러지 못했나, 싶은 일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아,

그때!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던 자책들.

그 일과는 상관없는 상황에 갑자기 헤아리게 된 그때의 마음들,

앞으로 다가오는 어떤 또다른 시간 앞에서도 이해가 불가능하거나 의문으로 남을 일들..

--에필로그 중에서

 

 

 

 아픈이야기. 그때는 그리 아팠던 이야기들

이제는 회상하고 추억해도 세월덕분인지 담담해질 수 있는 이야기들.

그 시절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더 나은 선택의 귀로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읽혀지고,

상처가 있는 이라면 그 결을 따라서 위로 받을 수 있는 문장들이 많다.

좀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차분하게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이다.

 

 

 

무거운 느낌의 책을 덮으면서 갑자기 생각나 몇자 올려보는 사족! 

며칠전 <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 인터뷰를 라디오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우리 문학사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훈민(백성을 가르침)이라는 뜻도 그렇고

문학을 쓰는 이나 독자나 교훈이나 가르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문학은 재미가 있어야 하고,  카타르시스가  문학장르가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탈 장르가 필요한 시대라고 역설했다. 20년 전이나 지금 달라진 것이 없다고 ...

덧붙여 일본 책들이 물 밀듯이 들어오고 있지만 재미가 없는 우리 문학은

우리만의 것으로  맴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그러면서 일본에 가장 많이 팔린 우리 나라 책이

<즐거운 사라>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올해 다시 출판된다고 한다.

그리고 대체로 우리들이 재미있게 있는  역사적 기록물로도 남아 있는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태백산맥이나 토지 같은 이야기들은 

역사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글들은 역사가들에게 맡겨둘 일이라고 했다.

 

거침 없는 주장인데다 의식전환이 필요한 얘기 같아서 공감 가는 얘기도 더러 있었다.

갑자기 왜  그의 말이 생각났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무겁고 침울해지는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떤게 정답이란 건 없지만 독자가 공감하고 소통가능하다면 

 좋은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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