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루키의 독자들 중에는 작품 속의 주인공들과 작가를 혼동하여 무라카미 하루키를 그렇고 그런 인간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고 좀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장편, 단편 할 것 없이 그의
작품이란 작품이 총망라되다시피 번역, 소개되고 있는 요즘인데도, 인간 하루키를 얘기해 주는 글이 없다는 아쉬움에 결국 그의 수필을 번역하게 되었다. 그의 다섯 권의 수필집을 두어 가지 예외를 제외하곤 빼고 덜고 하는 짜깁기 없이 고스란히 실어서 세권의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2,3>으로 꾸민다.
그의 일상사와 관련한 잡다한 사항들이 하도 많아 번역 중 골머리를 좀 썩었지만
가능한 한 하루키의 삶에 표적을 맞춰 역주를 달았다.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을 번역할 때는 주로 정확성과 전체적인 일관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였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짤막짤막한 글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재치와 유머 감각을 살리느라 파격적인 의역도 시도해 보았다.
이 수필집 시리즈가 이미 낯설지 않은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그의 작품을 올바로 해석하게 하는 자료적 역할까지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3년 9월 김난주..
얘기를 나눠 본적도, 만난 본적이 없어도 그 사람의 글을 읽고 나면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느낌이 드는 장르가 수필이다.
수필은 진솔한 자기 성찰의 글이며 사유와 사색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경험의 산물이다.
그래서 수필(산문)을 읽다보면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친밀감을 더 농밀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나 소설은 '허구'로 자유롭고 작품속에 작가가 진정성을 드러내든 말든 그건 작가 몫이다.
물론 주제와 소재를 통해 작가의 향기를 맡을수는 있지만
독자에 따라서 다양할테고 눈치를 채든 못 채든 그것 또한 독자 몫이다.
소설은 반전이 있을 수록 흥미롭고 재밌다. 특히 반전은 극적일 수록 좋다..
살면서 한 번은 겪을까 말까 한 숱한 우연과 필연 쪼가리들이 뭉쳐지고 흩어지며
이어지는 스토리를 통해 독자는 재미와 교훈을 얻고, 더러는 자신의 일상 또는 과거의
어느 순간과 맞물려 공감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수필은 그런 반전의 재미는 없다. 반전이라야 작가의 상상력이나 발상의 전환! 정도다.
그런 장르 특성때문인지 독자들도 편식이 있다. 산문(수필)류 독자와, 소설류 독자로.
한 작가만 좋아해서 그 분 글만 읽다보면 그분 성향을 알게 되고,그 분은 이럴 때 이렇게 했으므로 이렇게 할 것이라는 짐작까지 가능하게 된다..
글의 위력,, 경험담이다...ㅎㅎ
지금은 나오는 책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로 번역 출판되는 작가,.
이 책은 그가 젊은 시절에 쓴 수필집 5권 중
'하루키 수필집'이라는 제호로 출판된 번역서 3권중 1권이다.
19살의 톡 튀는 감성과, 24살의 세계에 대한 이해 37살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낭만적 그리움을 투명하게 그려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이프스토리
지금은 환갑의 나이이고 최근래 발표작까지는 장편이 주류지만,
책표지 소개글처럼,
하루키의 젊은시절의 정서를 엿볼 수 있어 정겹고 피식 웃음이 나는 부분도 많다.
세대차이도 나고, 일본인 정서라서 공감이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살아가는 이야기와 사람심사, 근본이란 크게 다르지 않음도 보게 된다.
특히 일간지 칼럼 연재(1년 9개월간 )를 통해 글속에 인용한 사람들의 이후 반응 및 애피소드도 재밌다.
여기 실린 글을 일본에서 책으로 발표한 것이 1984년 인 것 같고,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처음은 93년 같고 이 시리즈물은 2002년에 펴낸 것 같다.
지금의 카리스마 작렬인데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드는 글과 절제도 별로 없었던
자유분방한 표현 등,생경스러우면서도 쏠쏠하며 인간적이다.
장래 글을 써서 연명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로부터 종종 "문장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 같은 사람 한데 물어본들 별 뾰족한 수가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데, 뭐 좌우지간 그런 일이 있다.문장을 쓰는 비결은 문장을 쓰지 않은 것이다 -라고 말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요컨대 '지나치게 쓰지 말라'는 뜻이다.문장이란 것은 '자, 이제 쓰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써지는 게 아니다. 우선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내용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하는 스타일이 필요하다.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나 스타일이 발견되는가 하면, 그것은 천재가 이 닌 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어디엔가 이미 있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빌려와, 적당히 헤쳐 나가게 된다.이미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받아들여지기 쉬운 법이라서, 재주가 많은 사람 같으면 주변으로부터 '와,
제법인데'라는 등의 소리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당사자도 그런 기분에 젖는다. 좀 더 칭찬을 듣고자 하여 - 그런 식으로 해서 영 그르친 사람들을 난 몇 명이고 보았다. 분명 문장이란 많이 쓰면 능숙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자신 속에 분명한 방향 감각이 없는 한, 그 능숙함의 대부분은 '재주'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그런 방향 감각은 어떻게 하면 체득할 수 있을까?
요는 문장 운운은 나중 일이고, 어찌됐든 살. 아. 가. 는. 일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
어떤 식으로 여자를 꼬실 것인가. 어떤 식으로 싸움을 할 것인가. 생선 초밥집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런 일
말입니다. 한차례 그런 일들을 다 겪어 보고 '쳇 뭐야, 이런 정도라면 문장 따위 일부러 쓸 필요도 없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게 최대 행운이고, 그래도 아직 쓰고 싶다'라고 생각되면 -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제쳐놓고 -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을 쓸 수 있다.
문장을 쓰는 법 - 중에서
좋은 글은 결국 그 사람 삶과 귀결되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엄중한 심판 같은 이야기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이는 글이 있고, 반대로 미사여구만 늘어놓아
뜬구름에 추상적인 관념만 늘어 놓은 글도 있다.
편견이나 아집이 보여 끝까지 읽을 수 없는 글도 있다.
작가의 나이와 상관없는 이런 느낌은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잘 쓴 글은 진솔함과 진정성이 먼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명문은 아니더라고 습작 과정을 통한 글쓰기의 장점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수 있거나 더 나은 상태로 승화시킬 수도 있으며,
스스로를 위로받을 수도 있으며 해소 할 수도 있으며 자기 발전의 여지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만도 아니어서 써 볼수록 매력있는 일이다.
하루키도 어느날 '자, 이제 쓰자' 한다고 써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듯,
좋은 글을 쓸려면 먼저 마음자리를 원만히 하여 자기 감성을 살려 두는 것도 필요하다.
잘 산다는 것부터가 요원한 일이어서 글쓰기가 애시당초 글른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을 읽었거나 한가지 주제로 글을 쓰고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것을 머릿속에다 담아두는 과정이 필요하다.
담아두고 가끔식 사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뿅!하고 구애의 반응처럼,
생각이 반짝하고 떠오르기도 하고 (발상의 전환이나 기억등) 마음이 동 할 때가 있다.
이것을 거창하게 영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하면, 좋은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맛을 보고 나면 글쓰기도 은근 중독성이 있다 잘쓰고 못쓰고 와는 상관없다...ㅎㅎ
단명 일 순위 직업군이 작가라는 통계만 봐도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과정만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으므로
일기도 좋고 메모도 좋고 쓰기부터 시작해 보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어찌 된 판인지 얼굴만 가지고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많다. 나로서는 서른이 넘어서 남편까지 있는 주제에 무슨 미남이냐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못한다.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나는 그런 류의 여자에게 훌리오
증후군이란 명칭을 붙인다.모 출판사에서 나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도 훌리오병 환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훌리오를 좋아하기 전에는 이브 봉땅의 팬이었는데, 이브 몽땅이 일본에 왔을 때는 와병 중에 있는 남편의 캐시 카드에서 말도 않고 이만 엔을 인출해서는,
티켓을 사가지고 혼자 콘서트에 가 '남편 따위 어떻게 되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눈물까지 흘려가며 감격했다는 대단한 사람이다.그래서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이 최근에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팬이 되었다.
"있잖아요, 무라카미 씨, 훌리오는 연 수입이 몇 백억에, 자가용 비행기도 있는 데다, 별장 같은 것도 한 다스쯤 있고, 전 세계에 애인이 몇 심 명이나 되고, 게다가 굉장한 인텔리라고요. 어때요. 부럽죠?" 하고 그녀는 말한다.
환경이 천양지차라 그런 말을 들어 봤자 전혀 부럽지도 아무렇지도 않다. 전 세계에 애인이 몇 심 명이나 산재한다니,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뼈가 빠지겠다.
나 같은 사람은 마누라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혹시 잠꼬대라도 옛날 애인 이름을 주절대지 않을까 싶어 부들부들 떠는 형편인데. 훌리오는 잘도 해내고 있다. 꼼꼼한 모양이죠, 틀림없이. 그녀는 만약 훌리오가 말을 건네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마음이 솔깃해질 것이라고 한다.그래서 훌리오의 몇십 분의 일 애인이 되어, 한해에 오천만 엔 정도 수당을 받겠다고, 그래도 한해에 오천만 엔을 다 쓸 수는 없으니까, 그중 천만 엔 정도는 지금의 남편에게 송금해 주겠다고 한다.
이런 여자를 정숙하다고 해야 좋을지. 나는 모르겠다.세상에 있는 일반 주부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것은 내 상상력 밖의 일이다. 훌리오이글레시아스가 뭐가 그렇게 좋단 말이냐! - 중에서
일본 아줌마들의 <한류>가 오래전부터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ㅎㅎ
그 시절부터 잘 생긴 스타를 동경했던 문화들이 있었던 듯 하다.
제목도 재밌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뭐가 그렇게 좋단 말이냐!
하루키를 담당하고 있는 모 출판사 아줌마의 훌리오와 이브몽땅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한걸음 더 나아가 훌리오의 몇 십 분의 일 애인이라도 되고 싶다는 솔직한 발언까지.,
아줌마여서 맘 놓고 얘기 할수 있는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문화적 차이일까.. ㅎㅎ
마누라 한사람만으로도 쉽지 않다는 하루키의 표현 또한 재밌다.
일본의 남편들은 자신의 아내가 자국의 스타도 아니고 외국 스타의 열성팬 인 것을
이쁘게 봐주는 지, 아니면 관심조차도 없는지.. 남편의 반응들도 엿볼 수 있다면 더 재밌겠다.
하기사 제목에서 처럼 하루키는 도저히 이해 못하는 남편인 것 같다.
한국으로 광광겸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장에 온 일본 주부들을 보면
그 열정만큼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 에너지를 다른 곳에다 쏟아 부으면 어떨까 하느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그들의 모습은 신나고 행복해 보인다. ㅎㅎ.
그런 열정도 없고, 신세대나 스타엔 관심조차 없는 내 모습과는 대조적인건 분명하다..ㅎㅎ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다.
오래된 수필 일수록 유행에 뒤처진 느낌이 들긴해도
그 진솔함이나 소박함 그 당시 정서를 옅 볼 수 있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그래서 소설이나 시를 쓰는 작가들이 오래전에 발표했던 산문집 같은 것들을 찾아 읽는 재미도
독서의 별미다.
나는 결코 일기를 쓰지 않은 인간인데, 미타카 시절에 한 해서는 무슨 이유에선가 짧은 일기를 썼다.
뭐 대단한 일기는 아니고, 뭘 먹었다든지, 무슨 영화를 봤다든지, 누구를 만났다든지,
몇 번 했다든지, 그 정도의 일밖에 씌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뒷날 보니 제법 재밌다.
1971년 당시를 보니, 석간이 15엔이다. 헤이본 펀치는 80엔, 쇠고기 200그램 180엔,
하이라이트 80엔, 콜라 40엔, 대충 지금 물가의 반 정도다.
그 해 1월 3일과 5일에는 눈이 내렸다. 1월 3일에는 10센티미터나 쌓였다.
이 날은 미타다 다이에 극장에서 야마시타 코사쿠의 <승천하는 용> '좋은 영화다'
아츠미 마리의 <좋은거 드리죠> '좋은 제목이다' 를 동시 상영으로 보았다.
5월에는 신주쿠의 케이오 명화관에서 <석양을 향해 달려라>와 <이지 라이터>를 보았다.
<이지 라이터>는 그것으로 세 번째 관람이다.
1971년이란 해는 대학의 학생 운동이 일단 전성기를 넘어서고,
투쟁이 음습화되어 폭력적인 내부 투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아주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실제로는 매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제법 뻔뻔스럽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남자들이 이러니 저리니' 하고 잘난 척 얘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다.
인간이란 특별히 대의명분이나 불변의 진리나 정신적 향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고,
이를테면 깜찍한 여자애랑 데이트나 하면서 맛있는 것 먹고 즐겁고 살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이를 먹어서 되새겨 보면 자신이 몹시도 긴장된 청춘 시절을 보낸 듯한 기분이 드는 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모두들 바보 같은 생각만 하면서 구질구질 살아온 것이다.
오래된 옛 일기를 일고 있으려니, 그런 분위기가 삼삼하게 전해져 온다.
이사 그래피티 6 - 중에서
일기나 편지 등 기록물을 통해서 그 시절 생각을 들여다 보는 일도 재밌을 것이다.
특히 연애편지 같은 것들은 말해 무엇하리 유치짬뽕 일수도 있지만,
그 순간만은 진실한 사랑이엇을 테니..
연애의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의 연서는 인간에 대한 가장 친애함이 무르익었을 때이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정서적 흔적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악인도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 아름답고 선한 모습은 없을 것이다. .
'대의 명분을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실재로는 바보같은 생각만 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래전 일기에서 발견하는 이런 발상!도 너무 재밌다.
그런지도 모른다. 정말,, 어쩌면 명분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사람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면 말해 무엇하리.. .
사랑하는 그 사람이 없다면 명분도 의미도 없어지는 삶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일기에서 연서로 이야기가 바뀌어 버렸지만,
기록을 남겨두는 일은 의미로 남겨두는 행위다.
메모습관이든 일기든 연서든 그때 그마음을 엿볼수 있으니
그날의 단상이라도 일기로 남기는 습관을 들인다면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아주 편리한 도구다.. ㅎㅎ
포털업체에 엄청 감사할 일이다.
사용료를 내라고 하면 내고도 할 맘이 있는 블로그 운영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세상이 바뀌어져서 어느날 문득 그런날이 올지도 모른다. ㅎㅎ
미래는 알수 없는 일이므로... . ..
상상력이란 ...
그다지 값비싼 물건도 아닌데, 어쩐지 사게 되지 않아 못 사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체중계가 그랬다. 늘 사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백화점 같은 데 가서 보면디자인이 마음에 꼭 들지 않은다든가, 가지고 돌아오는 게
귀찮아지거나 해서, 결국은 '다음번에 사지 뭐'하는 식이 되고 만다.
게다가 내경우 체중이 늘 60에서 61킬로그램 정도로 안정되어 있는 데다,
몸에 이상이 있는 곳도 특별히 없는지라,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있으면 편리하다는 정도이다.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올 가을 뜻하지 않게 체중계를 선물 받았다.이런 일이 생기면 무척 기쁘다. 지금까지 사지 않고 참아온 보람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중계가 두 개나 있은들 별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모두 재빨리 체중을 재어 보았다. 고양이 A가 3.5킬로그램, 고양이 B가 4.5킬로그램, 내가 61킬로그램이다. 체중계란 것은 제법 재미있는 물건이다. 한번 재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어,나 같은 사람은 하루에 열 번쯤 체중계에 올라간다.
틈틈이 재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인간의 체중은 하룻사이에도 1킬로그램에서 1.5킬로 그램 정도는 늘었다 줄었다 한다.당연한 일이긴 하나 식사를 하면 늘어나고, 배설을 하면 준다.
밤에 잘 때와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1킬로그램 정도 체중에 차이가 난다.
그리고 여름에 1킬로미터당 오 분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면 500그램이 줄고,
10킬로 미터에 1킬로그램 까까이 준다.
하기사 이런 현상은 발간작용에 의한 것으로, 수분을 보급하면 체중은 원래에 가까워진다.
또 한가지, 시내에 나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일 관계로 만나거나 하면 1
킬로그램 야윈다. 꽤나 미묘하다.
올 가을 나의 최고 체중은 64킬로그램, 현재는 58킬로그램이다.기초적인 다이어트와 가벼운 조깅을 한 달가량 하면, 5킬로그램 정도는 쉽사리 빠지는
모양이니까, 살이 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용기를 내시도록.
체중 증감에 대하여 -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남자나 여자나 자기 몸무게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것 같다.
체중계로 고양이 A,B 를 시작으로 하루에 열 두번도 더 달아 보며
자신의 몸무게를 관찰한 부분도 너무 재밌다.
체중증감에 관한 이야기중에 가장 인상적인 문장.
시내에 나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일 관계로 만나거나 하면 1킬로그램 야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확실히 몸무게는 준다.
평소보다 불행한 밤( 불면이든 스트레스든 부부싸움이든 또 다른 이유든)을 보내고 나서
아침에 몸무게를 달아보면 2킬로 그램 정도는 줄어드는 현상을 나도 몇 번 경험해 본적이 있다
성격이 못되서 더 애끓여서 내게만 특별히 많이 줄어드는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스트레스는 정신의 문제지만 그만큼 육신도 타격을 받는다. ㅎㅎ
영혼의 무게는 4그램(또는 40그램 또는 400그램 일 수도 있다.)이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죽기전과 죽은 후를 쟀더니 그만큼 차이가 났다는.
영혼의 무게는 육신의 무게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하지만
그 가볍지 만은 않은 생명의 무게 덕분에 우리 육신이 존재할 수 있으니 인체의 신비요 연혼의 신비다.
영혼이 살아있는 한 좋은 생각으로 영혼의 무게보다 몇 십배나 되는 몸무게를
하룻밤에 축내는 밤들은 없애거나 줄여가면서 지혜롭게 살 일이다. ㅎㅎ
육신을 잘 보존하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ㅎㅎ
어린 시절 외상으로 책을 살 수 있었던 것만큼 사치스러운 일도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우리 가족은 아주 평범한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책을 좋아해서 내가 동네 책방에서 갖고 싶은 책을 외상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물론 만화나 주간지는 안되고, 올바른 책만이다. 그러나 어쨌든 외상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신나는 일이었고, 덕분에 남 못지않은 독서소년이 되었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모두들 한결같이 놀라는데. 내가 자란 곳에서는 아이가 외상으로 책을 사는 일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 당시 내 친구 중에도 몇 명인가 그런 아이가 있어, 책방 계산대에서 "저요, 미도리가 오카에 사는 00인데요. 외상으로 해 주세요"라고 얘기라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그러나 그런 특권을 부여받은 아이가 모두 독서광이 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으니 불가사의하다. 불가사의하지요?
옛날 얘기를 계속하자면 당시 (1960년대 전반기) 우리 집에서는 가와데쇼보에서 출간하는 <세계문학전집>과
중앙공론사에서 나오는 <세계의 역사>를 매달 책방으로 배달되도록 주문하여,
나는 그것을 한 권 한 권 읽으며 십 대를 보냈다. 덕분에 나의 독서 범위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외국 문학 일색이다. 소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최초의 인연이라든가 환경에 의해 사람의 취향은 결정되고 마는 모양이다.
만약 그 당시 우리 집에서 주문했던 책이 <일본문학전집>과 <일본의 역사>이고,
최초로 읽은 책이 <파계>였다면 나는 지금쯤 탐욕스러운 리얼리즘 소설을 쓰고 일는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요령부득이다.어른이 되고서는 외상으로 책을 산 적이 없다. 마음먹으면 크레디트 카드로 살 수도 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 현금으로 지불한다. 역시 '00동에 사는무카라미인데요. 외상으로 해 주세요. "하고 스무스하게 말이 나오지 않으면 기분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책 이야기 3- 외상책 사기에 대하여
60년대 전반기라고 하는데 부모님이 외상책을 사 볼 수 있도록 했다는 환경이 놀랍다.
그렇다고 다 책벌레가 되거나 작가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책에 한해서 만큼은 무한대로 지원해주신 그런 아버지의 지혜가 부럽다.
지금이야 동네에 서점도 많고 놀것도 많지만 그 시절 책읽기 만큼 세상 엿보기로 좋은 것이 없었을 터이니
하루키의 오늘이 그런 세살적 같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릴적 참고서 사보기도 쉽지 않았던 환경이었으니 책은 사 볼 수도 없었다
책을 친구에게서 빌려 본적도 별로 없었고, 사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내게 경제력이 생기고 나서 부터 였던 것 같다.
대체로 우리 세대가 그렇듯 부모님 세대의 가치관도 천차만별이었다,
똑 같은 뱃속에서 나고서도 딸이어서 오빠나 남동생을 위해 양보해야 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느 집이든, 희생이라면 딸들이 먼저 했고, 그렇게 한걸음 물러난 인생은
한 번 뿐인 인생의 여정을 얼마나 다른 환경을 만드는 지 주변을 통해서도 많이 보게된다.
딸들이어서 당연시 했던 행복하지 만은 못했던 세대를 지나온 것이 오늘날 낀세대인 셈이다
지금은 보고 싶은 책은 맘껏 사볼수 있는 세월을 살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월을 살고 있는지.
그 옛날, 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경찰에 끌려가 진술서를 쓴 일이 있다. 그때 나를 담당했던 형사는 삼십 대 중반쯤의 사내였는데.어찌 된 셈인지 얼굴 생김 생김이 폴 뉴먼하고 꼭 닮았다. 폴 뉴면 하고 닮았다고 해서 특별히 핸섬하다든가 그런 게 아니고.그냥 세부적인 특징이 비슷 하달뿐이지만, 그래도 닮았다. 거기에 덧붙여 그 형사는 VAN 재킷풍의 하얀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
폴 뉴먼과 비스하게 생긴 형사 버튼타운 셔츠를 입기까지 했으니, 이거야 완벽한 사우스 브론쿠스의 세계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일은, 실로 유니크 한 체험이었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작품인 저 <보통사람들>에 나오는 경찰서의 풍경과는 몹시 다르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써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경찰관의 작문 능력은 일반인에 비해서 극단적으로 저급하다.
문법도 그렇고 '은, 는, 가'도 그렇고, 정경묘사도 심리 묘사도, 정말 치졸하다.
진술서라고 하는 것은 대충 경찰관이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해 진술자가 답변한 것을 경찰관이 '나는......'이란 일인칭으로 문장화하여, 그것에 진술자가 서명을 하는 절차를 밟도록 돼 있는데.
이 폴 뉴먼 씨의 경우는 기가 찰 정도로 한심한 문장이었다.
읽는 걸 듣고 있자니 첫 줄부터 죄다
뜯어고치고 싶어 진다. 그러나 그 무엇 보다도 굴욕적이었던 것은 그 폴 뉴먼 씨가 연필로 쓴 초고 위에다, 그것과 한 줄 한 문구도 틀리지 않도록 볼펜으로 덧써가며 정서를 해야만 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내가 볼펜으로 그 문장을 다 쓰고 나면 폴 뉴먼 씨는 지우개로 자기가 연필로 쓴 글 자를 쓱쓱 지워, 마치 내가 애당초부터 자필로 그런 진술서를 쓴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
말할 것 없는 일이지만, 경찰에 연루되어 별 신통한 일은 없는 것 갖다.
경찰이야기 2- 진술서에 대해 - 중에서
경찰서에 왜 가게 되었는지는 뒤로한채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에서 하루키가 풀어낸 내밀한 서사가 너무 재밌다.
글쓰기 전문가로서 그가 시키는 대로 문장을 만들고 쓰는 부분,
마치 내가 애당초부터 자필로 그런 진술서를 쓴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
ㅋㅋ 정말 재밌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좋종있다.
분명 전문적인 부분이어 상대가 알아서 척척해야 하지만
너무도 아마추어적이어서 되려 도와주고 싶은 상황... . ㅎㅎ
하루키는 아마도 그 폴뉴먼 닮은 경찰이 경찰만 아니라면
글쓰기를 좀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을까.. ㅎㅎ
신통한 일은 없는 경찰이어서 그냥 미련없이 돌아서 나왔으리라.. ㅎㅎ
대체로 살림을 똑 소리나게 잘 하는 친구와 어슬프게 하는 친구를 보면, 본인성격이기도 하지만,
전자는 남편이 절대로 가사일을 안 도와 주는 경우이고, 후자는 반대다.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이 도웁도록 만드는 것도 아내의 능력이지만,
남편이 아내 없이는 라면 말고는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 것도 아내의 능력일 수 있다.ㅎㅎ
어쨋거나 능력발휘는 각 가정의 상황에 맞추어서 하면 되는 것이다. ㅎㅎ
며칠 전 영국 신문을 읽고 있는데, 광고란에 개가 목을 매달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읽어 보았더니, 그게 애견가 협회에서 보내는 메시지로 '한국에서는 개를 죽여서 먹는 습관이 있는데, 이건 야만적 행위니까 저지합시다'란 내용이었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호놀룰루에서 신문을 읽고 있으려니, '중국인은 들개 사냥을 하는 데다 그 일부를 먹는다고 하는데, 지나친 야만 행위니 우리는 중국 제품을 보이콧 하자'는 투고가 게재돼 있었다. 투고는 북경에서 행해진 대규모 들개 사냥으로, 6주 동안에 처분된 개의 숫자가 약 이십만 마리라는 사건 (끔찍하다!)에 대한 한 호놀룰루 시민의 반응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조선과 영국 사이에는 개소동이 백 년쯤 전에도 한번 있었다.
그때는 빅토리아 여왕이 우호를 위해서 조선 황제에게 선물로 보낸 개를 조선 조정 쪽에서 완전히 잘못 받아들여, 고맙게 요리를 하여 먹어 버린 터라, 당시에는 상당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재밌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만 재밌다.
이렇게 개를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습관의 문제를 편식과 동일하게 논하는 것은 존 무리겠지만, 그래도 무엇은 먹고 무엇은 안 먹는다는 선택이 기본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점에 있었서는 비슷한 차원의 것이다.
야만이라는 것은 인간이 지닌 성향의 문제가 아니고, 개념의 문제이다.
내가 굴은 먹을 수 있지만 대합은 못 먹는다는 점에 대해 누가 '왜 그런가?'하고 집요하게 묻는다면, 나로서는 설명하기가 무척 곤란하다.
성향을 설명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얘기가 한참 비약되는데,
'왜 그런 마누라랑 함께 살게 되었나?' 하는 질문도 같은 선상에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현실을 잠정적으로 '동시 존재적 정당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어째 이번은 얘기가 좀 골치 아파졌다. 그럼.
편식에 대하여 2 - 중에서
간간히 글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에피소드도 별미다.
조선과 영국의 개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고,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역사적 사실들도 만나게 된다. 책읽기의 좋은 점은 이런 것들이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무궁무진하게 접하게 되니..
가끔 모임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난달에 한 이야기 주제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있다.
피천득 선생님이 주부들은 김장을 하기전부터
김치를 다먹는 다음해까지 줄곳 무, 배추, 김치 등 김장이야기만 한다는 글처럼,
언제나 똑같은 얘기 일색이어서 금방 싫증 나는 만남이 있다.
그런 빈궁한 소재로 만나는 사람이 재미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좋은 만남은 언제나 새롭고 청신한 향기가 난다.
배울것 들을 것이 있어서 좋고 나눌 것이 있어서 더욱 좋다.
나누면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것,,재미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 정신의 자양분을 위해서 책에서 별미를 맛 볼 줄 아는
그런 날들을 보내는 것도 이 뜨거운 여름을 정말 잘 나는 방법이 아닐까.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읽고 사고력을 확장해 간다면
자신을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날들이 될 것이며 날이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 거제도 풍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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