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라 금,토 1박 2일로 남해를 다녀왔다.
두팀 넷이서 동해, 서해, 남해안 하다가 출발 직전에서야 행선지를 남해로 택했다.
남해는 제작년 휴가지 였는데 워낙 좋아서 한 번던 더 가고 싶었던 곳이고,
함께 동행한 부부도 남해는 초행이라 선뜻 정했다.
구미에서 10시 출발, 세시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남해대교를 들어서 늦은 점심을 먹고, 보리암쪽으로 갔는데.
TV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남해 투어를 방영한 직후라 그런지
평일이고, 오후 3시쯤 인데도 아래쪽 삼거리 진입로까지 만차 행렬이었다.
다음날 일찍 오르기로 하고 첫날은 다랭이 마을로 차를 돌렸다.
다랭이 마을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지정된 길이다.
좌측으로 바다의 풍광도 아름답고,
주변에 펜션이 많아서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쭈욱 흐리더니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다랭이 마을이다.
가천이라는 원래 마을지명보다, 다랭이 마을로 더 알려진 곳.
책이나 사진, 방송으로 워낙 많이 봐 온 터라 초행길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집들도 다랭이 처럼 계단식 지형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고
지붕에는 이쁜 꽃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대체로 마당이 거의 없었고, 발아래로 바다가 펼쳐진, 어느 집에서나 바다 조망이 가능한 지형이었다.
흐린날이라 시야는 확 트이지 않았지만, 가을이면 다랭이논의 황금들녘과 바다색까지..
또 다른 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 같았다.
마을길은 여러 갈래로 나 있지만 아무 길이든 접어들어 내리막길로 걷다보면
바닷가 전망대로 연결이 된다. 우리가 간 곳은 마을 중간 통로길이었다
길을 접어들면서 작년쯤엔가 kbs 인간극장에 나왔던
'누렁이와 소년'의 이야기 무대가 여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내려가다 보니 이런 벽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설명도 없었고 언뜻봐도 소년의 집도 아니지만,
그 소년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그림 같았다.
인간극장 5 부작까지 남편과 같이 매우 인상깊게 봤었다.
작년 프로그램 끝나고 '좋은 생각'에 그 소년을 보고 쓴 시를 보면서도
그 소년을 생각한 적이 있다.
산책로는 tv속에서 소년이 소 때문에 뛰어다니던 모습이 선한 그 배경길이었다.
나무그늘 아래 바위하나, 소를 몰고 논을 갈던 다랭이 논까지.. .
오래된 집들과 새로 개축, 증축하는 집들이 어울려 있는 마을이지만
이렇게 오래된 작은 아궁이도 있었다.
사람 한 사람 들어 앉아서 군불 지필수 있는 그런 공간의 아궁이이다.
아무나 들어와 구경해도 된다는 팻말이 붙어있는곳,
할머니는 하늘로 가시고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장작을 패고 계셨다.
한 번 해 보겠다고 객기 부린 남편,
비에 젖은 생나무 결이 얼마나 단단한지.
도끼질 열번도 더 했건만 반도 패지 못하고,
다음에 와서 마저 하겠노라는 거짓부렁을 남긴채 포기했다. ㅎㅎ
다랭이 논은 오월인 지금 대체로 마늘 농사중이었다.
더러 수확하는 곳들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 생경스러웠던 것은 경남지역 뉴스를 접하는 거였다
남해 마을얘기도 많이 나왔다. 수확기라고..
마을 아래 해안 절경도 좋았다.
태종대 풍경처럼 해안이 거의 바위 절벽이었는데
풍랑이라도 들면, 잔잔하게 숨죽인 저 포말들이
우렁차게 남성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선지 막걸리를 파는 곳도 있었다.
2리터 병으로 한 가득 오천원에 팔았는데
좁은 마당이지만 테이블만 몇 개씩 놓고 손님을 맞으셨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촌로 한분이 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직접담근 것이라고 했다.,
맛이 맑기보다는 탁한, 진한 그런 맛이었다.
할머니께 tv에 나온 소년이 이동네 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뭔 말인지 뭔 뜻인지 모른다는 표정이셨다.
할머니 집에서 막걸리를 두어잔 마시고 마을을 되돌아 나오면서
작년 화면속 기억을 더듬으며 여기 어딘가에 소년의 집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집들을 차근 차근 훌터보며 올랐다.
보려고 드니 보였을까!
소년의 아버지가 집앞에 흰 트럭을 세우던 그 구조가 생각났고, .
그 tv속 풍경과 똑 같은 집과 차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반가움이라니.. 보자마자 확신이 생겼다.
들어가 보니 소년하나가 막 뒤란으로 들어갔는데 그 뒷태가 소년 같았다.
마당에는 소년의 여동생이 있었다. "오빠는? "
키는 조금 큰 것 같고 소년은 김종호 동생은 정희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안 계신 듯 했고 둘이 놀고 있었다.
이제 종호는 6학년 정희는 1학년이라고 했다.
종호녀석은 소 말고는 그렇게 앳살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내 보기에도.. V자도 마단다.
누렁이는 살아 있느냐고 물었더니,
"네." 라고 두 녀석다 반가운지 씩씩하게 대답했다.
정희는 정이 많고 발랄한 모습 그대로 였다.
종호는 무뚝뚝.. 저런 녀석이 누렁이에게는 그렇게 각별하던 모습이라니..
거기 詩가.
인간극장에서 보았다.
스무 살 늙은 암소 우렁이가 아파
열두 살 소년의 눈동자가 깊어지는 걸
절구통만 한 걱정을 담은 꼴망태를 메고
들판 풀숲을 헤치는 소년
소에게 좋다는 어른들의 말 기억하며
모시풀, 쑥, 옥수수, 고춧잎을
망태에 가득 담아 걸음을 재촉하는데
거기 한 줄 시가 너울거린다.
스무 살 암소 우렁이 우리에
늙은 수의사가 달려오고
할아버진 선풍기를 틀어 준다.
소도 더위를 먹어 지쳤나 보다고
시원하게 하고 쉬게 해 주라 한다.
보약 같은 소년의 새 골을
우물우물 씹던 소가, 음머!
소가 웃자 모두가 따라 웃는데
거기 4부 혼성 합창이 한 편의 시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 박정옥
감정이 북받쳐 가슴이 꽉 차는 듯한 느낌,
그것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뭉클한 공영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 편의 시는 그런 순간에 태어납니다.
눈물이 핑 도는 것도 뭉클한 공명의 순간이지요.
그러나 시는 슬픔 속에서도 '촉기'를 보여 주지요
어떤 슬픔의 밑바닥에서도 말라죽을 수 없이 윤기 나는 그것을 김영랑 시인은 '촉기'라고 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시를 통해 살아갈 의욕의 연료를 얻는 셈이지요.
늙은 암소와 소년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 잘 읽히는 시입니다.
모시풀과 쑥과 옥수수와 고춧잎은 소년의 마음이지요.
늙은 암소를 '살리려는' 선한 마음이지요. 그 마음을 받아 늙은 암소는 길게 울어 응답합니다.
아, 이런 마음의 교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올가을에는 뭉클한 공명을 더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문태준 시인
작년 11월호 좋은 생각에 실린 글이다.
다랭이 마을과는 상관없이
소년과 우렁이(할머니소 20살가량)를 좋아하는 종호의 이야기가
세상에 소개되고 이런 시도 생겨났다.
아름다운 것이 있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스토리가 따뜻한 감동을 주고, 그런 소소한 것들이 우리 주변을 풍성하게 만든다..
어쩌면,
세상은 늘 그대로인데
얼마나 느끼며 사는가에 따라
행, 불행이 좌우되는 건지도 모른다.
느낄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무얼해도 재미 없다면 주변을 다시보면 어떨까.
좀더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화려하고 거창해서 아름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에게 좋다는 말만 듣고도 풀 베어 주던 소년,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자기집 소도 아닌 소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소년,
선풍기 틀어주고 호스물로 목욕도 시켜줄 줄 아는,
그 소년도 있었고, 그것을 볼 줄 아는 감성이 있었기에
'소년과 누렁이'의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일 것이다.
작은 것만이 소중한 것은 아니리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볼줄 아는
그것만 있다면 되는 것이다.
둘쨋날 보리암 나들이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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