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내게는 원수가 없어 개와 닭이 큰 원수로다

구름뜰 2011. 6. 4. 21:00

 

 

 

내게는 원수(怨讐)가 없어 개와 닭이 큰 원수로다.  

나에게는 다른 원수가 없다. 다만 개와 닭이 원수일 뿐이다.

 

벽사창(碧紗窓) 깊은 밤에 품에 들어 자는 님을

깊은 밤 오랜만에 찾아온 임이 내 품에 깊이 잠들어 있는데

 

짜른 목 늘이어 홰홰 쳐 울어 일어 가게 하고

짧은 목을 길게 뽑아 가지고 꼬꼬댁 하고 울어서 우리 임을 깨워 가게 하고,

 

적막중문(寂寞重門)에 왔는 님을 물으락 나오락 캉캉 짖어 도로 가게 하니   

쓸쓸한 중문에 찾아온 임을 물러갔다 나아갔다 하며 캉캉 짖어 그냥 돌아가게 해 버리니,

 

아마도 유월 유두(六月流頭) 백종전(百種前)에 스러져 없이 하리라.

그러니 유월 보름의 유두와 칠월 보름의 백중이 되기 전에 잡아 먹어야 겠다.

-《박문욱 朴文郁》   

 

국문학수업 시간에 사대부시조의 변이와 사설시조에 관한 시조들을 배우다가,

교수님이 닭이랑 개를 잡아 먹고 싶은 작자의 심정을 너무 재밌게 설명해 주시는 바람에

귀에 꽂힌시조다.

 

더 쉽게 풀이하자면,,

오랜만에 찾아온 임과 밤 늦도록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임이 내 품에서 곱게 잠 들었는데,

닭이 짧은 목으로 꼬꼬댁 우는 바람에 임께서 깨버렸다.

남몰래 찾아온 임이라 해가 뜨면 가야 하는지

개까지 짖는 바람에 그것도 캉캉 짖으며  돌아가게 햇으니,

닭과 개는 나의 원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 괘씸한 녀석들을 복 날이 오기전에

잡아 먹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개와 닭을 원수 삼은 화자의 마음 엿보기가 재밌는 사설시조다.

양반시조는 일정한 형식에다 풍류, 도피, 도덕 절조 등 유교적 사상을 담은데 비해,

평민들의 시조에서는 해학, 외설, 색정 등 상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이 그대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표현에 있어서도 양반시조의 여운, 은유, 온휴 대신에 직서, 당돌, 대화, 사실 등 속기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시조도 이 밝은 것이 어찌 닭의 탓이며, 개의 잘못이랴..

단지 화자가 임과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 보고 싶어,

뜨는 해를 잡아두고 싶은 심정이, 우는 닭과 개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마음으로,

세상에 이 둘 말고는 원수가 없다고 하는 그 마음이 기막히다.

고녀석들,, 얼마나 미웠을까...ㅎㅎ 

 

 

님과의 꿈같은 시간!

뜨는 해를 붙잡아 두고 싶은, 이런 마음 있어 글로 뽑아내면. 

그리고 이런 시 한수 임에게서 건네 받는 다면 어떤 마음일까..ㅎㅎ

 

연유야 어찌되었던, 상황 감정 이입 해 볼 수 있으니 시의 매력이다.

누가봐도 재밌고 공감가능 글이란 이런 글 아닐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옛 어른들은 글쓰는 일을 천기天氣 (영감)라고도 했다.

천기는 어쩌면 삶의 맛이란 맛은 제대로 음미할 줄 아는 

절대미감의 미식가가 되는 일 같다.

한 편 이라도 좋으니 이런 맛  한 번 쓸수 있다면..

좋으련만,, 

애재라 통재로다!! ㅎㅎ

아무리 발버둥쳐도 요원(遙遠)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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