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원수(怨讐)가 없어 개와 닭이 큰 원수로다.
나에게는 다른 원수가 없다. 다만 개와 닭이 원수일 뿐이다.
벽사창(碧紗窓) 깊은 밤에 품에 들어 자는 님을
깊은 밤 오랜만에 찾아온 임이 내 품에 깊이 잠들어 있는데
짜른 목 늘이어 홰홰 쳐 울어 일어 가게 하고
짧은 목을 길게 뽑아 가지고 꼬꼬댁 하고 울어서 우리 임을 깨워 가게 하고,
적막중문(寂寞重門)에 왔는 님을 물으락 나오락 캉캉 짖어 도로 가게 하니
쓸쓸한 중문에 찾아온 임을 물러갔다 나아갔다 하며 캉캉 짖어 그냥 돌아가게 해 버리니,
아마도 유월 유두(六月流頭) 백종전(百種前)에 스러져 없이 하리라.
그러니 유월 보름의 유두와 칠월 보름의 백중이 되기 전에 잡아 먹어야 겠다.
-《박문욱 朴文郁》
국문학수업 시간에 사대부시조의 변이와 사설시조에 관한 시조들을 배우다가,
교수님이 닭이랑 개를 잡아 먹고 싶은 작자의 심정을 너무 재밌게 설명해 주시는 바람에
귀에 꽂힌시조다.
더 쉽게 풀이하자면,, 오랜만에 찾아온 임과 밤 늦도록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임이 내 품에서 곱게 잠 들었는데, 닭이 짧은 목으로 꼬꼬댁 우는 바람에 임께서 깨버렸다. 남몰래 찾아온 임이라 해가 뜨면 가야 하는지 개까지 짖는 바람에 그것도 캉캉 짖으며 돌아가게 햇으니, 닭과 개는 나의 원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 괘씸한 녀석들을 복 날이 오기전에 잡아 먹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개와 닭을 원수 삼은 화자의 마음 엿보기가 재밌는 사설시조다. 양반시조는 일정한 형식에다 풍류, 도피, 도덕 절조 등 유교적 사상을 담은데 비해, 평민들의 시조에서는 해학, 외설, 색정 등 상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이 그대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표현에 있어서도 양반시조의 여운, 은유, 온휴 대신에 직서, 당돌, 대화, 사실 등 속기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조도 날이 밝은 것이 어찌 닭의 탓이며, 개의 잘못이랴.. 단지 화자가 임과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 보고 싶어, 뜨는 해를 잡아두고 싶은 심정이, 우는 닭과 개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마음으로, 세상에 이 둘 말고는 원수가 없다고 하는 그 마음이 기막히다. 고녀석들,, 얼마나 미웠을까...ㅎㅎ |
|
| |
님과의 꿈같은 시간!
뜨는 해를 붙잡아 두고 싶은, 이런 마음 있어 글로 뽑아내면.그리고 이런 시 한수 임에게서 건네 받는 다면 어떤 마음일까..ㅎㅎ
연유야 어찌되었던, 상황 감정 이입 해 볼 수 있으니 시의 매력이다. 누가봐도 재밌고 공감가능 글이란 이런 글 아닐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옛 어른들은 글쓰는 일을 천기天氣 (영감)라고도 했다. 천기는 어쩌면 삶의 맛이란 맛은 제대로 음미할 줄 아는 절대미감의 미식가가 되는 일 같다. 한 편 이라도 좋으니 이런 맛 한 번 쓸수 있다면.. 좋으련만,, 애재라 통재로다!! ㅎㅎ 아무리 발버둥쳐도 요원(遙遠)한 일 같다.. |
|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은 (0) | 2011.06.09 |
---|---|
山에 가면 (0) | 2011.06.07 |
검은 말씀 18 (0) | 2011.05.25 |
낡은 방앗간의 풍경 (0) | 2011.05.24 |
시- 파블로 네루다 (0) | 2011.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