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구름뜰 2011. 7. 5. 09:09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 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을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만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 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나를 문질렀다.

-정진규

 

땅이 딱딱하게 앙다문 너의 입이라면 삽은 그걸 부드럽게 여는 내 입이다.

삽이 품은 입술소리(ㅂ)는 "얌전하게 다 물어" "거두어들이는"소리지만,

삽은 이미 시원한 바람 속을 지나왔다.

'사사삭'하고 풀밭에 뱀이 지나가듯 네게로 드는 소리가 있다.

그 다음 뒤에서 닫히는 입술이 있다.

그렇게 너를 열면 그곳이 무덤이다.

너무 좋을 때에는 '에고 나 죽네'소리가 절로 난다.

서로의 몸을 더듬는 것,

그게 염(殮)이다

오늘도 내 마음의 곳간에 빛나는 삽 하나가 있다.

네게로 외삽(外揷)하고 싶은 마음 하나가 있다.

-권혁웅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드러내면 이 사회가 용납못할 욕망은 심리기저 저 밑바탕에 억압되어 있고,

누구나 아니 대체로 모든 사람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닌이상 그것을 표상해내진 않는다.

단지 이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의 범위내에서 표현할 뿐이다.  

그것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방어기제를 가장 잘 활용하는 언어유희의 마술사는 역시 시인이 아닐까.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장르가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인좀 보시게나.

할 말 다하고도 아무렇지 않은듯 끝맺는 이런 자모음 기술자를 보라,

자신의 갈망을 '삽'이라는 발음속에다 정숙하게 모두고,

'오달지게 한 번 써볼 작정'인 삽!으로 만들었다가

그 삽의 열망을 그 염을 오롯이 자신에게로 거두는 멋이라니.

은근하도록 부드럽도록, 무디어지지 않도록 마른 볏집으로 문지르는 모습이라니..

바람둥이든, 재간둥이든, 

이처럼 하고픈말 다하고도 엉큼하게 삽하나만 바라고 선 모습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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