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큰 집에 살면서 오히려 창을 가리게 되었다.
누가 이렇게 큰 창을 냈을까
이거 너무 큰 그리움이야
어떤 사람은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창을 낸다고 했지
감방의 창을 생각해 보라
뚫어져라 내다보던 좁아터진 눈빛을 생각해 보라
없는 곳에 기를 쓰고 뚫어야 했던 것은 어둠이었을까.
제 안에 하루에도 수십 번 저를 뚫어야 하는 암흙이 있어
어느 날은 그 창으로 꽃을 보았다 말하겠지
어느 날은 그 창으로 바람을 보았다 말하겠지
빛을 모으는 누군가와
그늘을 모으는 누군가의 눈이
겹치는건 우연도 아니다
창이 왜 낮엔 바깥을 보여주고 밤엔 자신을 보게 하는지
창으로 연애를 하고 다시 적막을 뚫고
살아있어 창을 낸다면, 다시 창을 낸다면
한 그리움 정도의 크기만 내리라
그저 마지막에 남을 한 사람, 그 창으로
별 돋는 것처럼 올 수 있게, 꽃 지는 것처럼 갈 수 있게
-이규리
2011년 12월 1일 금오산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아침 풍경이 이러하니, 어젯밤 내가 잠 못자고 뒤척인 시간에 내린 눈인지
오늘 새벽 찬기운 때문에 보일러 온도를 높일 즈음에 내린 눈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8부 능선쯤까지..
땅의 높은 곳, 하늘편에서 보면 제게 가장 가까운 쪽까지만 은총을 주셨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제일먼저 창밖으로 눈이 갑니다.
외출해서 집에 들면 하는 일이 또한 밖을 보는 일,
기후와 상관없이 언제나 시선은 밖을 향합니다.
밖을 자주 보는 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몸은 못가는 동경이라고,
창밖 내다보기 좋아하던 스무살 시절에 친구가 내게 던진 말입니다.,
창이 큰 집에 살면서 창 덕분에 안에 살면서도 밖을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고 한 신석정은 삶의 방향을 얘기했고,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있다는 이유로 '북으로 창'을 낸 단재 신채호의
서슬퍼런 기상 역시 그의 의지를 창으로도 나타냈지요.
그는 굽히기 싫어 세수도 꽃꽂히 앉은 자세로 해서 옷이 다 젖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기상에 비하면 '그대 앞에만 서면'처럼
창 앞에선 언제나 동경으로 전락해 버리는
첫눈내린 이런 아침엔 찬서리같은 기상이라도 한번 품음직 하지만.
나는 저 발아래 초개같은 심정으로만 사는 건 아닌지.
밖이 그리워 창을 낸 것이라면, 먼데 산이 한눈에 드는 집에서 사는 일은 견디기 힘든 시선일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이 창은 낸건 단지 그리움 때문만은 아닐것입니다..
가지 않고도 가 본듯, 오지 않아도 온듯이
너와 나의 경계를 수시로 허물어주는 창는 매개물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날, 첫눈이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 있다면
만나야 할까요 만나지 말아야 할까요.
내게는 아니오고 내 눈에만 보이는 눈,
내게까지 오지않았다면 오지 않은 눈일까요.
궁금한 사람이야 있지만,
만나기로 한 사람은 없으니 다행인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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