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자두박스에 담긴 복숭아

구름뜰 2012. 8. 8. 09:23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구미시 농산물 공판장 천장 높은 집하장에는 매일 아침 김천이나 선산 등 인근 농민들이 과일과 채소를 싣고 모여든다. 집하장 진 풍경은 열세워둔 과일들이 입찰에 들어갈 때다.  생산자와 모여든 상인들, 그리고 입찰가를 결정 짓는 전문가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상인들의 손짓 몸짓이 어울려서 (뭔 소린지 뭔 뜻인지 알수는 없지만 언제나 뚝딱 정해진다)박스 가격이 정해지고 박스 위에는 낙찰된 가게 번호와 낙찰가 적힌 종이가 올려진다. 

 

 입찰 끝난 과일은 천오백 원이나 이천 원 정도만 붙여서 그자리에서 소비자에게 넘겨지기도 하고, 공판장 내에 있는 상인들 매장으로, 구미시내 과일가게로 처처로 옯겨 간다. 가장 싱싱한, 간밤이거나 이른 새벽에 수확했을 과일들이 그렇게 집하장에 모였다가 각각의 인연을 찾아서 빠져나간다. 

 

 그저께 공판장엘 갔다가  '기스'라고 적힌 자두박스에 담긴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복숭아

는 다 복숭아라고 적힌 박스에 담겨져있었고, 10킬로에 이만 오천 원이었지만 자두 박스에 담긴 복숭아는 15킬로를 담고도 이만원이었다.  

 

 어느 시인은 '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고, 어느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했는데.. 이었거나 열매였을 때. 우박같은 불청객의 흔적일까, 아니면 다 자라서 새가 쪼아 먹은 자국일까. 어쨌거나 천둥, 번개, 다 견딘 결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 삶도 상처의 산물 아닐까. 잘 보이진 않지만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며 외롭지 않은 이 어디 있으랴. 내  한 손에 쥐기에도 큰 복숭아에 마음이 가고 손이 갔다. '기스'라는 말은 일본말이고, 사전을 보니 '흠'이라는 우리 말이 있다. 흠결 때문에 제 박스에도 담기지 못하고 부담 없는 가격이 된 복숭아. 

 

 말해도 그만이고 말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것들을 가끔 위로받고 싶을때가 있다. 인간이니까. 아무에게나 쉬이 받을 수도 받고 싶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아프다고, 외롭다고 말하고 싶은 이가 있는 것이다.  내 흠결을 보여도 될 것 처럼 마음이 가는 사람,  상처를 위로로 보듬어 줄것 같은 사람. 

 

 어쩌면 흠이라는 생각은 복숭아쪽 만의  생각이고 내겐 정작 그와 타인을 경계짓는 가장 단독적인 모습이 되는 것이다.  아무 일 수도 아무이지도 않은 단독성, 그여서 그만이어서 가능한 단독이 되는 것이다. 내가 자두박스에 담긴 복숭아를 선택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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