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역마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도화가 있었다 말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애마부인 약사(略史)
1대
고개를 좌우로 꼬며 말을 달리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 안소영(1982)에 관해선 이미 말한 바 있다 침대에 누운 그녀가 말 탄 꿈을 꾸는 것인지, 말을 모는 그녀가 침실 꿈을 꾸는 것인지 중 3이 다 말할 수도 없었지만, 동시상영관은 돌아온 외팔이와 안소영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애마부인, 1982년 여고 때 였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던가 조조할인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른 시간이었고 친구 넷과 멀쩡하게 교복을 입고 신도극장엘 갓었다. 우리 중 한명이라도 껌 좀 씹거나 문리에 트인 친구가 있었다면, 교복을 입고갈 곳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텐데. 아무도 그 번지수 틀린 복장이 초래할 일은 생각도 못했다. 입장을 시켜 주었기에 그냥 떳떳하게 봐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고 봤다 옆반 담임인 노처녀 미술선생님께 들키기 전까지는....
2대
오수비(1983)는 바다고 갔다 그녀는 젖은 몸으로 물려오는 파도를 다리 사이로 받으며, 파도보다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의 시구를그때 배웠다 고 1때 일이다.
극장안은 사람들이 몇 안되었고,
영화 내용이라야 줄창 안소영이 속살 비치는 옷을 입고
시인의 말처럼 '고개를 좌우로 꼬며 말을 달리는 고난도 기술'만 보여 주었다.
2층 뒷자리 나란히 앉았고 하얀교복 상의는 1층에서 관람하던
선생님 눈에 반짝 하고 빛났으리라.
3대
김부선이 말죽거리 떡볶이 집에서 구너상우를 유혹할 때 (2004)나는 기절할 뻔했다. 나도 권씨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씨름선수 장승화의 들배지기에 자지러지느 그녀(1985)를 본 고 3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렇다.
'여기가 어디라고 교복 입고 왔느냐'고 '이 눈치 없는 것들'이라고 퉁박을 주셨는데 선생님 태도 때문에 왜 부끄러워야 하는지도 모른채, 우린 부끄러운 척 해야 했고, 우리가 한 짓이 남들이 보면 떳떳하지 못해서 학교명예에 먹칠 할 것이란 직감이랄까, 치욕스섭게 여기며 도망치듯 극장을 나온 기억이 있다. 관람 불가가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극장 나들이는 그 한번의 기억밖에 없다.
4대
이후의 애마부인(1990~)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더이상 연소자가 아니었으니까, 도처에서 여자들이 말 타고 출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다만 김호진(1990)처럼 ROTC 애마보이가 되고 싶기는 했다 그후로는 나도 애마도 주마간산이었다.
애마부인하면 지금도 교복때문에 혼난 기억만 선명하다.
보면 안되는 영화를 보러왔다는 것 같았는데,
문리 이전이라 왜 안되는지 영화를 다 보고서도
왜 혼나는 지 어리둥절했던.
어떤 대상에 문리가 트이고 나면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처럼
문리이전의 무식은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그것이 순수라면 순수고, 세상이치 몰랐던 숙맥이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지금 생각해도 말과 안소영 스토리는 없고 그림만 남은 영화다.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은
성장시적인 요소가 많이 배어있는 시고,
성과 속을 구별하지 않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같은 문체로 옮기려는 진정성도 지나칠수 없겠다.
잘 만들어진 곤충채집 같은 느낌이라고, 송재학 시인은 평했다.
더불어 대중음악의 노랫말이 그 시절의 상처를 반복하여
들려줌으로써 표백시키는 것은 심리치료에 가깝다고도.
마징가 계보학엔 그런 힘이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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