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마음이여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니까 돌아온 저를 데리고
나는 자전거처럼 가을에 기대섰다.
구름을 보면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가면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여
때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내가 어떡하면 좋겠냐고 하면
늘 알아서 하라던 마음이여
저는 늘 내가 아닉 싶어했으나
내가 아닌 적도 없었던 마음이여
그래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슬픔이 있고
저 산천에는 기다리는 눈비가 있는데
이까짓 지나가는 가을 하나에
저나 나나 속을 다 내보이지는 못하고
오늘 하루쯤 같이 지내면 어더냐니까
그렇게 하자며
내 어깨에 제 몸을 기대는 마음이여
'뿔을 적시며'는 좋은 시집이다.
근자에 나온 보기드문. 사람처럼 반짝하고 와 닿는 시들
좋았던 것은
변함 없이 좋다
어쩌다 봐도 좋고
갑자기 봐도 좋고
옆에 있으면 더 좋다
생각만해도 좋고
볼 수 없어도 좋고
보는 건 더 좋다
먼 데 어머니 심부름 갔다 오듯
어느해 봄 그것도 단 한번
신을 짝짝이로 신고 외출을 한 다음부터
나는 갑자기 늙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햇살 좋던 봄날 아침의
아무것도 아닌 실수였는데
그 일로 식구들은 나의 어딘가에서
나사가 하나 빠져나갔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장에 나가는 염소처럼 뻗디디며
한동안 혼자 뿔질을 해대던 나는
어느날 마당에 나뭇짐을 벗어놓듯
먼 데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 오듯
그속으로 들어갔다.
이 시를 읽다보면 재밌는 그림이 그려진다.
상상해보자.
어느날 아침 나는 아내와 다투었다.
외출이라고 표현했지만
신발을 짝짝이로 신을 만큼 황급히 뛰쳐나온 집
아내와 다투었거나 어찌어찌하여 화통같았을 집을 나선 시인이 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실수였는데 ..
장에 나가는 염소처럼 혼자서 뻗디디며 뿔질 혼자 해대던 화자가
먼 데 어머니 심부름 갔다 오듯,
마당에 나뭇짐 벗어놓듯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는 화자가 보인다.
따스한 연민이 생기는 시다...
비를 기다리며
비가 왔으면 좋겠다
우장도 없이 한 십리
비 오는 들판을 걸었으면 좋겠다
물이 없다
마음에도 없고
몸에도 물이 없ㄷ.
비가 왔으면 좋겠다
멀리 돌아서 오는 빗속에는
나무와 짐승 들의 피가 들어 있다
떠도는 것들의 집이 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문을 열어놓고
무연하게
지시랑물 소리를 듣거나
젖는 새들을 바라보며
서로 측은했으면 좋겠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아주 멀리서 오는 비는
어느 새벽에라도 당도해서
어두운 지붕을 적시며
마른 잠 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이 시를 알고부터는 비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마른 잠 속으로 들어오는 비처럼..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그전에, 많이 아픈 사람이 꼭 새벽에 전화했다
너무 아파서 시인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한두해 지나자 전화가 끊겼다
늘 죽고 싶다던 그 사람
세상을 버렸을까
털고 일어났을까
몇년째 감옥에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시를 써 보내왔다
양면 괘지에 희미하게
새 발자국 같은 시를 찍어 보내며
벌러벗은 것처럼
마음을 들킨 것처럼
부끄럽다고 했는데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
좀 들여다봐주었으면 하는
혹은 아무 욕심도 없는 마음
그런 게 시라면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혜화역 4번 출구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현하다
그럴 대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던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헤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렇다
우리는 모두 내가 널 어떻게 낳아 준 부모님의 역사인 것이다
아름다운 분신들이다
뿔을 적시며
비 오는 날
안경쟁이 아들과 함께
아내가 부쳐주는 장떡을 먹으며 집을 지킨다
아버지는 나를 멀리 보냈는데
갈 데 못 갈 데 더듬고 다니다가
비 오는 날
나무 이라피만한 세상에서
달팽이처럼 뿔을 적신다
"엄마, 먹고 싶은 것 있으니 이만 원 만 붙여주세요."
근 한 달 만에 군에 있는 아들에게 온 전화다.
2만 원! 2만 원만 필요한 아들이 여운으로 남는다.
저녁마다 치킨 한마리 씩 먹던 녀석에게
2만 원은 어떤 맛일까.
나는 이만원만 필요한 아들 때문에 이만큼 기분이 좋다.
산그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를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 이상국
1946년 강원동 양양출신
1976년 '심상'에 시 '겨울 추상화'등을 발효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등이 있다
심상신인상,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유심작푸상, 불교문예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 어제 오후 한창 무덥던 시간,
계곡으로 놀러간 중 3 조카가 '카스(카카오 스토리)에 "춥다" 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계곡 사진과 함께. 그 글을 보면서 나도 잠깐 동안 추웠었다. 그 계곡물이 얼음물이라는 것
몇 년 전 조카와 함께 가서 놀았던 기억까지 떠올랐다.
그때 찍은 사진은 모두들 입술이 파래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었던 기억까지..
춥다!
덥다!
추워도 좋고 더워도 좋은 '날마다 좋은 날들' 입니다.
추워서 싫고 더워서 싫은 날들 날마다 짜증나는 날로 사는 사람들도 있지요.
어디서 봤더라, "날마다 좋은 날" 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발로라고 합니다.
내 긍정이 남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니까요. .
날마다 좋은 날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얘기지요.
날마다 좋은 날, 참 좋은 말이지요 만듭시다,
오늘도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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