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본색(本色)/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
*<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
한꺼풀 벗기면 거기서 거기가 또 사람아닌가
이 시를 남편에게 읽어줬더니.
찌릿 던지는 눈빛과 표정이 '너도 만만찮아'다.
듣기 좋은 말은 남끼리만 하지 말고
부부끼리도 좀 하고 살면 좋으련만
어쩌자고 곁에있는 것 들은
모두 당연하다.
당연한 것들은 모두 곁에 있다.
어찌 네 탓이고
내 탓일까
합작인걸.
속 시인본색 / 정희성
며칠 전 김준태 시인이 밤늦게 이시영한테 전화를 걸어와 하는 말이 아니 웅혼 웅대한 시를 써야할 작가회의 회장이 오골계가 다 뭐당가 나 총회 안 갈라네 이는 요즘 창비에 발표한 내 시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실은 작가회의 명칭변경이 마뜩찮아 하는 말인 것을 내가 안다 민족을 버리느니 문학을 버리겠다는 그의 웅혼한 기상이나 몸집으로 보아 응당 할 법한 말인데 나는 본색이 드러난 마당에 달리 어쩌지는 못하고 준태 마음에 학이 날아와 놀 자리가 좀 생겨야 할 텐데 하고 혼자 속으로 그렇게만 생각할 뿐이었다
*<시와 정신, 2008년 봄호>
* <참고> 시인 본색(本色) / 정희성
그래도 시인은 꿈꾼다.
그래서 오골계로 보이고
오골계로 살더라도 꿈꾼다.
그래도 남들이 학으로 보는 것은
가끔 학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 비스무래한 친구들이 놀러올 자리라도
만들기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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