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생 독일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의의 인생론이다.
주옥같은 글 역시 고전이다.
200년 전에 쓴 글이 그 시절 이야기가.
절절하게 현시점에도 거의 걸림없이 와 닿는다.
고전은 그 시절보다 역사가 흐르고 후대인 지금
우리 현실과 조우 되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사는 것은 만족과 불만이 정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간에게 해롭고 악한 것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기쁘고 만족스러운 것보다는 해롭고 악한 것이 더 절실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삶이 적극성을 띄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소극적으로 산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산다는 것은 만족과 불만이 결정해줄 뿐이다. 넌 좀더 적극적으로 살아라. 그런 말은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의 즐거움이란 늘 기대에 못 미치며 고통은 실제보다 훤씬 더 괴롭게 느껴지는 법이다.
슬픔의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기쁨의 눈물도 흘릴 수 있다.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없다는 것은 느끼지 못한다. 또 걱정을 하지만 걱정이 없다는 것은 못 느낀다. 두려움은 느끼지만 안전은 못 느끼며, 갈증이나 욕망이나 희망은 느끼지만 그것을 손에 쥐게 되면 금세 흥미를 잃는다.
심한 갈증으로 허겁지겁 물을 마신 후에 남은 물은 버리는 것처럼 욕망도 충족되면 손에서 놓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세 가지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과 젊음과 자유조차도 그것을 누리고 있는 동안에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아프지 않은데 병원에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젊음은 너무 당연한 얘기고, 자유로울 때는 자우 그 자체가 없다. 그러나 경범죄로 파출소 철창에 들어가는 순간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즉시 느끼게 된다.
인간은 행복할 때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불행해져야 그때가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내게 현재의 행복이란 없고, 행복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한다는 얘기다.
향락과 쾌락에 대한 실감도 그것이 강할수록 감퇴되며 습관되면 없는 것과 똑같아진다. 그러다가 쾌락의 습관조차 끝나면 괴로움만 남게 된다. 권태는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쾌락은 시간관념조차 없애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다
물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극단의 갈증이 필요한 것처럼 고통스러운 병고가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늙었다는 것은 젊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극단의 구속은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그토록 싫어하고 피해왔던 불행들이란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죽음 직전에 살아나야만 삶의 기쁨을 가장 크게 맛볼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불행과 고통을 어찌 마다할 수가 있겠는가.
향락은 욕망을 달래는 도구에 불과한 것
사람들은 청년기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여기고 노년기는 비애의 시기로 보는 경향이 많다. 만일 인생에서 행복을 격동과 감동으로만 본다면 그 많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기에는 바로 그 격동과 감동에 의해 기쁨보다는 고통에 더 많이 시달린다.
그러나 노년기에는 격렬한 감동은 가라앉아있고, 청년기에 그토록 감격적인 일들도 명상적인 색채를 띄며 다가온다. 그 이유는 노년기에는 인식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인식 그 자체에는 고통이 없다. 물론 감동이나 감격 그 자체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노년기가 되어 향락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적거나 없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향락이나 고통은 같은 성질의 형태인데 향락은 소극적이고 고통은 적극적이라는 차이밖에 없다. 그것을 이해하면 소극적인 향락에 대해 집착할 이유가 없게 된다.
모든 향락은 욕망을 달래는 데 불과한 것이어서 욕망의 소멸과 함게 향락도 사라진다 그것은 마치 식사 후에는 식욕이 없어지는 것이나,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더 이상 졸음이 오지 않는 이치와 같아서 향락의 기회가 없다고 해서 탄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늙으면 지금까지 우리를 끝없이 괴롭게 하던 성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가 있다"고 쓴것은 당연한 말이다.
젊은 시절 한 때 성욕으로 인한 참을 수 없는 충동과 격정, 무서운 광기 등 저 악마적 사념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물론 청년기에는 그런 폭풍 같는 긴장의 시간들이며 우울함이나 비애가 깃들어 있어야 하고, 노년기에는 평온하고 쾌활한 기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청년기에는 악마의 지배빝에서 강제 노동을 감수해야 하므로 자유로운 시간이 쉽게 허락되지 않지만, 성욕이 소멸된 후에는 생명의 핵이 소진되고 인간은 껍질만 남은 인형처럼 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조롭고 단순함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아주 작고 사소한 일을 잘하는 데 있다. 사소하고 작은 일이란 무엇이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즐기고 혹은 마당을 쓸고 꽃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일상이 평범한 일 그 자체를 말한다.
우리는 넓은 곳을 바라보기보다 좁은 시야에 바라볼수록 또 행동 범위가 넓은 것보다 좁을수록 더욱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을 넓게 보면 욕망이 커진다. 시야와 행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욕구가 더욱 발생하고 욕구가 생기면 그것을 이루려는 격정과 불안이 증가된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소망과 욕구의 접촉 범위가 커지면서 불행을 자초할 수 있느 기회와 환경이 커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의지와 마음의 동요를 적게 해야 한다.
괴로움은 적극적인 마음에서 비롯되고 행복은 소극적인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의 안정과 고요와 평온함은 야망과 부산스럽고 시끄럽고 바쁜 것으로부터 오는 불행보다 훤씬 낫다. 우리는 성취 뒤에 오는 절망과 허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제가 가능한 것이다
작가나 화가나 음악가들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면서 행복을 묘사할 때 전원적, 목가적 자연 풍경과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을 보아도 인간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행복을 묘사할 때 늘 한적한 시골과 자연풍경과 외로움과 고요함을 찬미하고 있지 않은가. 예술가들은 단조로움과 단순함이 행복의 기본적이 조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 그것만이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결국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단순하고 단조로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지적인 생활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권태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독한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나 부모 형제라도 자기 자신과 마음의 일치를 이룰 수는 없다. 이웃과는 개성과 기질이 달라서 완전한 일치는 더욱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와 정신의 안정이다. 그런 중요한 것을 다른 사람과의 일치를 통해서 얻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직 고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은 보물이다. 우리는 고독해지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아야 하고 자기 자신과의 만남과 대화를 즐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을 감당해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고독에 단련된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키케로는 '자기 자신 속에 모든 것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자기 자신속에 많은 것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남의 것에 기웃거리고 기대는 것이다.
내면적 자아가 공허한 사람일수록 외부에서 끝없는 자극을 구한다. 그는 외부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파멸한다. 우리는 그것을 악기에 비유할 수 있다. 단음을 가진 악기는 교향악단에서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되어야만 그 역할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피아노는 심포니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독주를 통해서 나름대로 작은 음악적 세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교향악단의 주인공이 되어 다른 악기들의 반주를 거느릴 수가 있다.
이것을 보면 다른 목적이 없는 한 사교가 뛰어나 인물은 대체로 지능젹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일단 가해도 된다. 그러나 비사교적인 사람들, 특히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봐도 좋을 것이다
프랑스의 저술가 벤나단 디 상피엘은 "음식을 적게 먹으면 건강에 좋고, 사람을 적게 만나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 깊은 말을 나겼다. 따라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즐겁다면 당신은 정신의 노다지를 캔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독은 뛰어난 인물들에게 찾아오는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전명작을 읽어야 하는 이유
독일의 낭만파 문예비평가인 A W.쉴레겔이 쓴 아름다운 격언적인 단시는 나로 하여금 어떤 책을 어떻게 일거야 하는 지 평생의 좋은 좌우명이자 지침서가 되었다.
'참된 고전의 원작을 그대로 애써 꾸준히 읽어라. 이 말에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쓴 책들은 하나 같이 똑같다. 그들은 마치 같은 판박이에서 찍어낸 것 같다. 저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만 하고있을 뿐, 결코 비범한 착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런 책들을 단지 방금 인쇄되어 출판되었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독자들이 홀려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들을 책상위에 방치시키는 것이 문제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평범한 졸작들은 파리 떼처럼 마구 부화하여 지금도 시중에 나와 있고, 그것이 새책이고 단지 신선하다는 이유로 가치의 검증도 받지 않은 채 날것으로 팔려 읽히고 있다. 그런 일들을 사람들이 왜 따라하는 지 그 어리석음과 편파성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머지 않아 영원히 버려질 책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꾸준히 살아남은 고전 명작들을 밀어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난 주 수요일
구미도립도서관 정원에 핀
목련입니다.
저것들을 올려다 보느라
햇살을 등지고
한참을 있었는데..
사진속에 눈부신 자태가
새 신부의 드레스마냥
수줍으면서도 환합니다.
눈부시다는 말 이럴때 쓰야 할 것 같습니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줌
그리고 그 아래를 거니는
행인의 마음까지
눈부신 봄
찬란한 봄 입니다
구미는 벚꽃이
이번주가 절정일 듯 합니다.
몽우리진 나무밑을
거니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터질 듯한
지난 주 였으니까요!
역시 고전, 살아남은 책들의 힘이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혼자보기 아까운 문장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들!
그보다 먼저 내가 되새김하고 싶어서
워드 작업마저도 즐거운 문장들 올렸습니다.
즐감하셨나요..
못하셨다면 한 번 더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책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 에세이 (0) | 2013.04.26 |
---|---|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0) | 2013.04.08 |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0) | 2013.03.10 |
단한번의 연애 /성석제 (0) | 2013.03.04 |
래여애반다라 /이성복 (0) | 201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