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구름뜰 2013. 4. 8. 09:50

 

 

 

 

 

무엇보다도 천상적인 것,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결국은 지상에 두발을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시종일관 작품의 중심에 차지한다.

 

"나는....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찌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주먹질하며 싸웠다.

세상 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하늘과 땅은 삶의 무상함이나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슬픔과

그런 삶이나 인간에 대한애틋한 사랑, 절망과 희망이 현악 이중주처럼 어우러지는

마라이만의 독특한 세계를 그려낸다.

-김인순 옮긴이 글 중에서

 

 

 

 

1부 하늘과 땅

 

용감한 사람들

 

나는 무익한 것도 느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 과감하게 무익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을 존중한다. 우리는 모두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이다..... 아주 유능하다. 나는 용기있게 '나' 또는 '아름답고 무정한 권태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같은 말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가능성과 관련하여......'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절대로 높이 사지 않는다.

 

 

 

 

바흐

 

바흐는 스무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바이마르와 쾨텐, 라이프치히의 궁정 지휘자였고 오르간 연주자였다.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일요 신문에 실릴 기사를 졸속으로 내갈기고 쓸데없는 요설을 끄적 거리듯 스무 명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오라토리오 협주곡, 조곡을 작곡했다. 나무들이 숨쉬듯이, 숲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침묵하듯이 작곡했고,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하느님이 불가사의한 멜로디. 화음을 가볍게 만들어냈듯이 작곡했다. 바흐는 스무 명의 아이들 가운세 작곡을 했고 찢어지게 빈한했고 궁정 지휘자였고 변변한 외출복 한 벌 없었다........ 묵념. 묵념. 자 바흐가 말을 한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라.

 

 

 

 

 

당장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십 년 전부터 구상해온 소설을 드디어 쓰자. 그동안 나는 이 과제를 미루려고 수십 권의 다른 책을 썼다. 또 중국과 그린랜드로 여행을 하고, 가족을 일구어 적어도 아이를 셋은 낳고, 이따금 로빈슨과 카사노바처럼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인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확실한 것을 알려주는 삼, 사천 권의 책을 읽고, 독립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더 독립적이 되기 위해서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포기하고, 죽음과 친근해지고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이제 이런 일들을 더 미루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런 것들을 성취하기 못하거나 소유하지 못한 삶은 덧없고 의미없다. 이 모든 것은 의무이고, 또 당장 나한데 필요한 일이다 인간은 죽음이 가까이 오면, 출발 오 분 전에야 짐을 꾸리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여행자처럼 허둥지둥 서두르기 시작한다 .그러니 자, 지금 시작하자, 당장 우리 삶을 꾸리자. 

 

 

 

 

 

2부 시론

 

내게는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시대와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다른 무기나 힘이 없다. 여기저기서 나라들이 강제로 찢기고 합병된다. 시대정신의 급자탑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몇 세대에 걸쳐 전쟁을 강요하고, 협정을 욕보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를 폭파한다. .....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나는 참고 있는가? 무엇이 내 목숨을 부지해 주는가? 무엇을 믿는가? 냉정하고 순수한 정신, 화해를 모르는 무자비하고 진실한 정신, 이 정신을 누구도 훼손할 수 없고, 부인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속이는 사람은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이 정신은 그런 모든 일에 의연하다. 이러한 정신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믿음은 이세상 무엇보다도 강하다. 나는 오로지 그것만을 믿고, 그것만이 내 목숨을 부지시켜준다. 그래서 나는 삶을 끝장내지 않는 것이다 맹세코.

-시론 서두에서

 

 

 

 

위험

 

이시대에는 그을 쓰는 것이 생명을 거는 위험한 일이 되어간다. 정치적인 글은 예로부터 언제나 위험을 수반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가을에 대한 글을 쓰거나 앵초를 보고 느낀 심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풍댕이만 묘사해도 위험하다.

 

글은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위험하다. 법에 대한 반란이고 군중의 욕망을 의미하며, 씌어진 말 뒤에는 꼭 인물이 있고 글 배후에 저항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씌어진 것은 일종의 암호나 신호처럼 의심스럽다. 그리고 사실 그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옳다. 그것은 암호, 부호, 신호다.

 

 

 

 

기쁨

 

네가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고 그 비밀스러운 원소, 형식과 사상의 원소들 속에서 날개를 단 듯 가볍게 앞을 향해 움직이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날들, 그 짧은 시간은 얼마나 드문가! 또 확실히 일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도 아니다! 일이 기쁨을 뜻하는 날들은 아주 적다. 그런 날에 너는 영웅적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런 때가 오면 작가는 동이 틀 무렵 원고지에 몸을 숙인 채.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지어는 남몰래 은근히 경멸하는 불가사의한 호의와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일한다.

 

 

 

 

 

어려움

 

글을 쓰는 본래이 임무와 어려움은, 작가가 문장이 아니라 사상을 다듬고 고치고 완벽하게 하려고 할 때 시작된다.

 

지드

 

글로 남긴 것보다 의도로, 내면의 본질과 삶이 발하는 보이지 않는 빛으로 더 깊은 감명을 주는 보기 드문 작가. 극히 보기 드문 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지드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결코 지드를 나쁘게 생각할 수 없다. 읽는 사람을 불만스럽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의 글이 지닌 차가운 완벽함이다. 지드는 창조한 것이 아니라 존재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힘을 발휘하는 작가다. 글로 쓰여진게 아니라 내면의 본질을 통해 표현되는 그런 업적이 과연 덧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따금 그런 종류의 인생과 영혼은 그것이 낳은 것. 씌어진 책들보다 영원하다는 믿음이 든다.

 

 

 

 

 

대단한 작업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깜짝깜짝 놀란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규칙이 없고 놀람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가르치는데 더 뭐하 말할 수있을 것인가? 왜 나는 글을 쓰는가? 언어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어쩌면 규칙은 없고 놀람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일까.

 

겸손

 

위를 보는 인간은 겸손하지 않다. 아래를 볼 때만 겸손할 수 있다. 나는 미숙한 사람 앞에서는 모자를 벗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 숙여 절을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눈은 일평생 똑바로 마주본다. 물론 손전등을 들고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이따금 눈을 깜박이며 시선을 내리뜰 때도 있다.

 

 

 

3부 소금과 후추사이

 

소금과 후추사이

 

프랑스 사람들은 마흔과 쉰 살 사이의 십 년을 '후추와 소금 사이'라고 일컫는다. 검은 후추 색이 밝은 소금 빛의 예지와 드문드문 섞이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에 빗댄 것이다. 또 이 말은 이 나이가 되어 온유해지며, 성급하고 무자비하기보다는 간직하고 보호하려드는 사람을 빗대고, 차츰 빛 바랜 듯 무미건조해지는 삶을 빗댄다

 

마흔과 쉰, 후추와 소금 사이에서 삶은 정말로 무미건조해지는 것일까?....... 인생의 이 시절만큼 삶이 진실하고 풍요로운 기억 없었던 듯이 보일 때가 간혹 있다. 그렇다. 마흔과 쉰 사이에서 인간은 먼 훗날이나 순간을 위해 살지 않고, 또 젊은이나 노인처럼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현재 속에서 낮을 위하고 밤을 위하여,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현재하는 오로지 그날 하루를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식적으로 살고 또 살고 또 목표를 가지고 인내함 거의 행복에 넘쳐 사는 시기이다. 현실을 인식하고 참아내며 이해하는 것말고 다른 행복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처음으로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시월 초 어느 날의 안개 낀 오후 같다. 어딘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고 깊은 사색 끝에 깨달음에 이르고 산 속 깊숙이 햇빛이 비친다. 우리에게 이 세상 어딘가에 아직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아, 이 축복! 하던 일을 멈추고 말없이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어보게나, 마흔과 쉰, 후추와 소금 사이에서...

 

 

 

 

완성

 

젊은 시절이 더 나았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사실 그 시절이 더 불안했다. 나는 뭔가를 놓치지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매일, 매 순간 많은 것을 놓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이런 인식도 이제는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일종의 슬픔으로가득차 있었다. 나한데 그 슬픔은 깊은 바다 밑에 사는 물고기에게 꼭 필요한 수압과 어둠 같은 생활 원소였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서 다른 대기권, 표면에 이를까봐 두려움에 시달렸다.

 

이제는 긴 병마와 부당한 굴욕, 오욕 말고는 무서운 게 없다. 죽음, 빈곤, 인간의 끝없는 무지. 지상의 모든 나쁜점은 두려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아니, 젊은 시절이 더 낫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에서 제 맛이 난다. 단 것은 달고 떫은 것은 떫고 향기로운 것은 향기롭고 악취를 풍기는 것은 악취가 난다. 마흔과 쉰사이에 나이는 아마 완성의 시간이 아닐까. 시간이여 나는 너의 소리 없는 숭고함에 깊숙이 고개 숙여 절한다. 그리고 말없이 진심으로 찬미한다.

 

 

 

 

오욕

 

나는 부끄러울 만큼 수상한 모험, 졸렬한 착각, 무절제한 거친 언행, 야만적이고 방탕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이 일에 관여하시고,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사창가에서도 우리를 굽어보신다.

 

나는 기꺼이 해보고 싶었지만 비겁한 탓에 하지 못한 일만을 부끄러워한다. 오성으로 비겁했다면 당연하지만, 나는가슴으로 비겁했다. 이것이 '그' 오욕이다. 그런 경우에 하느님은 외면을 하시며,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나에게 침을 뱉으셨다.

 

 

 

 

복음

 

그렇다 나는 세상을 떠난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오늘 아니면 독자여. 그대가 이 글을 읽는 그날 세상을 하직할지도 모른다. 독자여. 내가 그대보다 오래 살 수도 있지만, 그대가 나보다 하루 아니 천년만년 오래 살 수도 있다. 나는 세상을 떠난다. 어느 손이 시간의 장막을 들춘 듯 無가 보인다. 이 얼마나 아늑한가!......

 

나는 無에서 그대들에게 복음을 알린다. 그렇듯 무상하고 암울하며 수수께끼같아 보이지만 삶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인간의 오성이라는 우일무이한 의미, 살아오는 동안 나는 두 무한함 사이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이것이 내가 전하는 복음이다.' 

 

 

거미

 

낱말은 낱말, 육신은 육신일 뿐이다. 자욱한 안개.

꿈들, 헐벗은 땅에 앉아라

포효하는 바람이 너의 노래를 서투르게 연주한다.

그러나 너는 침묵을 지키며 가느다란 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거미처럼 살아가라

 

 

 

 

1부 '하늘과 땅' 에선 이원적 세계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2부 '시론' 서는 글에 대한 창작이나 예술가들에 대한 얘기며 글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생활에 대한 얘기다 3부 '소금과 후추사이'는 그 시절 작가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헝가리 태생이지만 모국이 공산주의 체제가 되면서 해외로 망명하고, 입국이 금지되고 40여 년간의 해외생활, 미국에서 자신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열정' '유언' '반항아' '사랑' '이혼 전야' '성깔 있는 개' '결혼의 변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