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 에세이

구름뜰 2013. 4. 26. 09:02

 

 

지남철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영규 글

 

당신이 읽어준 이 간결한 글만큼

지식인의 단호한 자세를 피력한 글을

나는 이제껏 알지 못합니다.

-신영복 

 

 

 

요건 아무리 봐도 한가지 둑꺽어서

결혼식에 입장 하는 신부손에 들려줘도 손색 없을 부케다

 

 금오산 등산로 입구 아름다운 길로 지정된 메타세콰이어 길에는

메타세콰이어 아래로 왕벚곷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금오산 호텔 부근 왕벚꽃 풍경역시 

봄처녀라면 정말 시집가고 싶을 만큼 마음까지 연분홍이 되는 풍경입니다.

 

어제 오전 비가 살짝 내린 날이라 더 청명했는데요

풍경도  좋고 신영복님의 '처음처럼' 에 좋은 글이 있어 함께 올립니다.

블로그를 찾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구름뜰의 선물입니다.

 

 

 

 


 목수의 집 그림

 

노인 목수가 그리는 집 그림은 충격이었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반대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탁과 족

 

차치리하는 사람이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하여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그 본을 탁이라 합니다. 그러나 막상 시장에 갈 때는 깜박 잊고 탁을 집에 두고 갔습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탁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탁을 가지고 다시 시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였습니다. 그 사연을 들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탁을 가지러 집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발로 신어보면 될 일이 아니요."

차치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던 그 노인이 발로 신어보고 신발을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탁과 족,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의상과 사람, 화폐와 물건, 임금과 노동력, 이론과 실천..... 

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삶의 준말입니다. '사람'의 분자와 분모를 약분하면 '삶'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며,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더불어 숲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함께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빗속에 서고 싶은 충동

 

우리는 무릎 칠 공감을 구하여

깊은 밤 살아 있는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작은 아픔 한 조각을 공유하기 위하여

좁은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산의 돌 한개라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심한 일상을 질타해줄

한 줄기 소나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함게 맞는 비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겁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과 권부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 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합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주역사상의 핵심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양적 축적은 결국 질적 변화를 가져오며,

질적 변화가 막힌 상황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열려 있을 때만이 그 생명이 지속됩니다.

부단한 혁신이 교훈입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무항산 무항심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물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항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항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심을 갖기가 어려운 오늘의 현실입니다.

 

얼마만큼의 소유가 항산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항산이 항심을 지켜주지 못하는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항심의 원인이 더 이상 무항산에 있지 않다면 항산을 먼저 마련하고자 하는 순서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항심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항심의 문화'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을 항상 낮은 곳에 둡니다

그리고 결코 다투는 법이 없기 때문에

'상선약수' 최고의 선이 물과 같다고 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