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애가? 우리 한 번 만나자?
며칠 전 러브콜을 보낸이는 내 친정아버지시다. 만나자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신것은 처음이다.
- 내가 다니는 노인대학에서 '편지쓰기 대회'가 열리는데 니가 좀 봐줘야 쓰겄다.
- 11명 인가를 뽑는다는데 시상식도 있대, 되기야 할까만은 한 번 내보고 싶다.
- 근데 혹시 되면 남들 앞에서 발표해야 될일이 생길지도 모르겄다.
- 누구 한데 쓰실 거예요?
- 그야 현종이(내 동생이고 장남이다)한데지.
- 그러면 아버지 그 동안 지나온 날들 중에 기억나는 대로 번호를 매겨서 써보세요.
- 그려 알았다. 안그래도 좀 써 봤는데... 써놓고 보니 내 얘기가 맞나 싶다. 그라고 니가 준 책이랑 글들 여러번 읽어봐서 나도 좀 쓸 수 있을 것 같다.
칠순을 넘긴지도 오년이나 된 아버지와 어제는 점심나절부터 저녁때까지 꼬박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농부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는 공부하러 가시고, 눈만뜨면 할아버지와 농사일을 해야 했던 성장기 얘기부터 결혼, 그리고 살림을 일군 이야기, 논 농사나 밭 농사 보다 특작에 관한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 메모해 놓은 꼭지가 화려했다.
돼지, 소, 포도농사, 양잠까지 고향을 떠나오기 전 했던 일들과, 대구로 나왔던 78년 이후의 이야기까지 써놓고 보니,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으셨는지, 고심한 흔적이 가득한 메모지를 두고 그중 추려쓴 3장 편지글을 보여주셨다.
내가 아는 얘기도 있지만 세세하게는 몰랐던 애기들, 예를 들어서 돼지가 살림을 일구는데 일등 공신이었다 하시길래 그 돼지가 우리집에 오게된 사연부터 묻게 되고.....
- 그러니까 말이지 ....하면서 풀어놓은 얘기들 중에 가장 재밌었던 '그 돼지' 이야기 올려봅니다.
'그 돼지'는 외할머니가 주신 것이라고 한다. 외가엔 외할머니와 외삼촌 두 분만 살았다. 근대 오대독자 였던 외삼촌이 무슨 사고를 쳐서 급전이 필요했고, 아버지가 선뜻 돈을 마련해 드렸다고 한다. 그것이 고마워서 외할머니는 집에서 키우던 돼지 중 큰 것은 장에 내다 팔고 작아서 팔기도 뭐한 놈을 외삼촌 손에 들려서 우리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 돼지를 처음 본 것은 보자기에 싸여서 고개만 내민채 외삼촌 손에 들려진 모습이었다고 한다. .
그 당시 우리고향에는 돼지를 키우는 집이 없었고, 외갓집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다고 한다. 그 돼지가 오고 아버지는 아랫채에 돼지우리를 만들고 사료도 신경써서 먹였다고 한다. 이름도 없어서 지금도 '그돼지'라고만 지칭하는 그 돼지는 덩치는 작았어도 일찍 발정기가 왔고, 교배시키면 바로바로 임신되고 새끼를 낳았는데. 항상 12마리 이상을 낳았다고 한다. 많게는 열다섯마리까지 낳은적도 있다고....
돼지의 젖꼭지 수는 12개이고 태어나서 처음 문 젖꼭지를 자기것으로 알고 반드시 그것만 빤다고 한다. 잘나오는 젖쪽으로 덜 자란 놈을 가져다 놓아 좀 먹게하려면 슬금슬금 빠져나와 자기 젖꼭지를 빤다고 한다. 하여 열두마리 이상을 낳아도 밀리는 녀석이 있고, 두끼만 굶으면 몸이 부실해져 표가 났고, 때문에 대체로 열두 마리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돼지는 1년에 두번 새끼를 낳고 새끼는 두달 키우면 파는데.. 팔때마다 가격이 좋아서 논을 한마지기 씩 샀으니 돼지 농사는 일년에 논을 두 마지기씩 늘려 주는 재산목록 1호였던 것이다. 지금은 돼지나 소를 농장에서 키우지만, 내 기억속 우리집 마당은 수시로 돼지새끼들이 점령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성장기 2개월까지 마당에서 맘껏 놀게 했다. 밖으로 나갈까봐 대문에는 30-40센티는 되는 칸막이 울타리를 세워두어 우리들은 그것을 넘어 다녔다. 돼지가 마당에서 놀기 시작하면 친구들이 우리집엘 놀러 올 수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년에 한 3개월은 그러고 지낸 것 같다. 까만새끼들이 온 마당을 헤집고 놀다가도, 엄마 아버지가 들에 다녀와 먹이를 줄때 "똘똘똘똘" 하고 부르면 모두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똘똘똘똘"은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먹이를 주기전의 종소리 신호와 같은 것이었다.
돼지가 해산하는 때는 주로 밤이었고, 우리속에선 아버지가 불을 켜놓고 곁에서 밤새 지켰다. 그럴때 엄마는 우리더러 조용히 하라고 했고, 아버지의 모습도 진지했고 조용했으며 신중한 모습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던 건 어린마음에도 느꼈던것 같다. 돼지는 신경이 예민해서 금방낳은 새끼를 물려고 할 때도 있다고, 그때는 어미를 혼내기도 하면서 그렇게 산고의 시간을 함께 했다고 한다.
한번은 시장에 팔러 갔는데 새끼줄로 연결한 목줄이 풀어져 녀석들이 흩어지는 사태가 발생했고 사람들이 어쩌냐고 했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가만들 있어보라고 하고는 예의 그 "똘똘똘똘"을 외쳤고 모두들 엄마가 있는 곳으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돼지'는 우리집에서 7년 정도 살았고 새끼는 15번 낳았다고 한다. 그렇게 살림을 불려준 일등공신
이었지만 대구로 이사나오면서 팔아야 했다고 한다. 면에까지도 소문난 돼지여서 서로들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타동네 면사람이 그 돼지를 사기위해 사려고 계약금을 주고 갔는데. 이웃에 다른 이가 내가 사기로 미리 구두 약속을 해 놓은 터라며 받은 계약금을 돌려 보내고 그이가 사갔다고 한다.
우리는 가을에 이사를 나왔고, 이듬해 아버지가 '그돼지' 소식을 들었는데 그 집으로 가서 새끼 3마리를 낳고 새끼와 함께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돼지는 영물이라고, 착한 끝은 좋은 것 같다고, '그돼지'만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다고 하셨다.
휴우~~돼지 이야기만 해도 들을 것이 이렇게 많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돼지'에게 편지를 쓰면 어떨까요 했더니, 좋긴 한데 행사 취지가 자식이나 배우자 아니면 자기 자신 등 사람한데 써야 하는데 돼지한데는 좀 그렇지 않냐고 해서 포기했다.
결국 돼지 이야기는 한 줄도 편지글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그 외에도 소이야기 누애이야기, 포도 이야기, 감자, 고구마 이야기, 뽕나무 이야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저녁때 쯤에는 녹아 내리는 역가락처럼 녹진녹진해져 기운이 다 빠져 버렸다.
편지는 저녁 늦게 완성되었다. 쬐끔!! 흡족해 하시는 아버지와 두고 나오는데 엄마가 그랬다.
- 이렇게 오래 놀다가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시간보다 이야기 보따리를 제대로 푼 날이어서 그런 맘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참으로 오랫만에 두분이 살아온 날을 되새김한 시간 아니었을까. 글쓰기의 좋은 점이 어디 이뿐일까만... 내년에도 응모하시라고 강권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