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까치 낙관/ 장하빈

구름뜰 2013. 6. 22. 09:17

 

 

낙관/ 장하빈

 

오늘 까치가 날아와 유리창에 입맞춤하고 갔다 우리 집 거실창 안에 환히 들이비친 감나무 앉으려다 날개 부딛친, 저 하얀 비명!

 

얼마나 콩닥 거렸을까? 엉겹결에 까치는 대문간 드리운 소나무 올라 앉아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동구나무 쪽으로 날아갔다

 

내 어찌 모를까? 저 눈먼 새가 제집 잘못 찾아온 게 아니라, 이 몸쓸 것이 솦속 옛 둥지 차지해 남쪽으로 창하나 걸어 두고 사는 것을. 한데 또 어쩌랴! 저 가여운 새가 유리창에 쿡! 몸도장 찍어, 공산에 깃들인 내 생의 진경산수화 완성하는 것을.

 

 

'다락헌'에 둘러 앉은 우리들에게 선생님께서 사진을 내미셨다. 시집 제호 '까치 낙관' 의 실물사진이었다. 새의 날개까지 찍힌 마치 x-ray  사진 같기도 한, 투명한 거실창에 비친 감나무를 쫒아서 달려든 까치의 몸도장이었다. 그 낙관과 지금은 베어지고 없는 감나무 사진. 거실 한가운데로 우뚝 들어선 그 감나무는 앞집 감나무였는데 정작 사시사철 즐겼던 이는 선생님이셨던거다. 감나무의 사계에서 다락헌의 사계까지. 사물에 주인이 없진 않지만 보고 즐길줄 안다면, 잘 논다는 건, 좀 놀 줄 안다는 건 이런것 아닐까.

 

 

 

 

중악, 공산에 깃들인 지 어언 다섯 해째를 맞는다

오전엔 주로 다락방에 틀어박히다가, 오후 한 차례 동네 산책 나가는 게 나의 주된 일과다. 그날그날 화두하나 잡고 삽짝을 나서 아랫각단 윗각단 둘러보고 마을 입구 솔밭 구릉에 잠시 머무르다 돌아오는 것으로 길들여져 왔다.

 

여기 묶인 다락헌 시편들은 바로 이러한 소요와 묵상이 낳은 것으로, 집과 마을 안팎에서 마주치는 일상이요,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생의 낙관이다.

2012.8월 팔공산 다락헌에서

- 시집 '까치 낙관' 시인의 말

 

 

 

** '다락헌'가는 길  

한달에 한 번 있는 시인과의 수업, 선생님이 우리들을 찾아오시기만 했는데, 그제는 '다락헌'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능성동 가는 길은 네비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아는 집 찾아가듯이 단박에 잘도 찾아갔다.

 

대구가 친정인데도 고속도로가 무서워 국도로만 달린다는 회원은 사오십분이나 늦게 도착하고, 한 회원은 오다가 못 찾아서 돌아가고, 또 다른 회원은 삼십분 남짓 늦게 도착했다. 선생님은 마을 초입 솔 숲에 텐트 두 동을 쳐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다락헌을 구경하고 숲으로 가서 야외수업을 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월차 낸 회원들은 텐트 앞에서 1박 2일을 기약하는 서스럼없는 너스레를 보탰다.

 

 

 

 

 

 

 

 

천장 높은 집

 

허구한 날, 높다란 천장만 쳐다보다가

목 부러질 뻔했던 날도 있었다

 

다락방 창문으로 심심한 햇살 쏟아지고

컴컴한 벽난로 곁에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낡은 태엽처럼 감겨 있다

 

-천장이 높으면 상상의 거미줄 치는가?

 

혼자 집 지키는 날은

목조 벽 내지르는 외마디 덜컹 내려앉다가

지붕 위 쫑쫑때는 까치 발소리에 귀 쑥숙 자란다

 

 

 

 

 

 

 

능성동

 

소나무 성으로 에워싸인 고개티마을

예비군 훈련장 울리는 저 잇단 총성

북장구 소리 세마치장단으로 들리네

 

햇살과 구름은 몸이 머무는 집과 울타리

천둥과 바람은 혼을 울리는 징과 꽹과리

까막까치 떼 날아올라 잿마루 활공하네

 

오늘 또 저 흥겨운 장단에 솟는 상현달

그 누가 활시위 당기어 고개턱 넘어오나

한데 아궁이 불 지피느라 아내 손 분주하네

 

 

 

 

 

개 짖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들으면

누가 고갯마을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동네 사람인지 외지 사람인지

굵은 빗줄기 후두두 재 넘어오고 있는지

개 짖는 소리의 골짜기로

금방 가늠할 수 있다

 

꼬리 흔드는 개를 보면

마을 손님 어디쯤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다

청도원인지 먹감나무집인지

동구나무 그늘 우수수 빠져나가고 있는지

먼 발소리 듣고, 개는

꼬리로 신호를 보낸다

 

개 짖는 소리에 귀 쫑그리는 고개티 사람들

땅을 하늘처럼 섬기고 산다

 

 

* 찾아오는 이라곤 택배아저씨, 고물장수 아저씨 그리고 집배원 아저씨가 전부라는 마을

우리가 가 있는 동안에도 시집에도 나오는 고물 장수 아저씨가 재현하듯 오셨다.

 

 

 

 

 

 

 

똥까네야, 똥까네야

 

햇살 속에 퍼질러 앉은 누부신 아내가 멸치 똥 깐다

'아침마당'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신문지 깔아

멸치 대가리 떼고 몸통 갈라 까만 똥 꺼낸다

뻐꾸기가 열두 점을 치고 제 둥지 속으로 들어가고

수북이 쌓여 가는 멸치 똥과 햇살 부스러기

오늘 점심상엔 멸치국물 우려낸 햇살국수 오르겠다

 

아내는 기지개를 켜거나 허리 젖혀 창밖을 본다

감나무 가지마다 점점이 붉은 홍시 헤아리다 말고

괜스레 눈시울 적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락방에 진을 치고 있던 나는

가파른 계단 오르락내리며

멸치 똥무덤 속에 한나절 파묻힌 아내더러

똥까네야! 똥까네야!

정다이 불러보는 것이다

 

 

 

 

고물장수 오던 날

 

감나무에 까치와 참새 왁자하더니

확성기 매단 트럭 한 대 아랫각단 찾아왔다

 

고물 삽니다 고물!

TV 냉장고 세탁기 전축 컴퓨터 에어컨 삽니다

가정에 사용하지 않은 각종 고철이나 고물 삽니다

자전거 리어카 오토바이 보일러 탈곡기 경운기 삽니다

 

옳거니!

오늘은 창고 대방출이다

 

뒤안 보일서실로 급히 돌아가

해묵은 책 담긴 상자 끌어안고 나와

대문간으로 향하며 반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놈의 고물딱지 인간도 이참에 싣고 가구려!

 

 

 

집배원 오는 시간

 

선잠 든 골목 안으로 그는 부르릉거리며 달려온다

 

햇살 공무니 빼는 오후 늦은 시각에서

군불 지피는 연기 달래달래 마실 가는 저녁답 사이

내 귀는 문간 우편함에 걸려 있다

 

새집에 들앉은 새 새끼마냥, 먹이 물어 오는 어미 새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날은 가랑잎처럼 둥글게 몸을 말아

또르르, 동구까지 오토바이 마중이라도 나가는 것이다.

 

그저께 내린 폭설로 고갯길 막혀 고물장수도 얼씬없더니

오늘에야 한 소식 담아 능성마을길 찾아온 그는

집집마다 새해 복은 전해 주는 전도사다

 

옛 제자의 편지며 새로 나온 시집이며 온갖 고지서를 건네주고

가로등 막 켜지는 골목 모퉁이로 오토바이 꼬리 감출 때까지

나는 눈 바래기하거나 멍 때리고 서 있을 뿐

 

 

 

 

 

 

 

백안산장 이야기

 

배 안쪽 닮아서 배안이라 불리다가 몸속에 부처 지니어 백안(白安)이 되었다는 마을, 그 어귀에 백안산장 이라는 흰 돛배 한 척 정박해 있었다.

 

돛대 허리쯤에 매달린 외제 자동차 장식이 굳이 아니더라도 십 리 안에서는 제법 근사한 현대신 숙박업소로 뭇시선을 끌었다. 안개비나 눈보라 속, 동화사와 갓바위 갈림길에서 길손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기도 해다. 나도 한번은, 간봉석조여래불 만나러 갓바위 느지막이 올랐다가 날 저물어 저곳에 돛을 높이 달고 하룻밤 묵어갔다

 

어느 날 주차장 입구에 '백안모텔' 보조 간판 내걸리고 만장 펄럭이자, 모텔 천장 구경하러 뜨내기 손님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제 밥그릇에 물을 따라 마시면 본처 그늘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눈치 챘는지, 저 산장에는 물컵 따로 챙겨 들고 밤낮없이 갈증 풀러 찾아오는 단골들로 이어졌다.

 

동화사나 갓바위 부처 품고 사는 마을 '백안'은 흰 돛배 거느리던 '배안'에서 눈과 배꼽 맞추러 오는 '배안'으로 그 유래가 곰븨님븨 바뀌어 갔다.

 

 

 

 

소나무 명상

 

해넘이에 긴 그림자 끌고 바람 산책 나왔다

솔밭 구릉에서 내려다보는 동네 풍경은 경이롭다

 

저기 오랜 당산 느티나무가 가느린 길과 집들

나도 높은 가지에 둥지 틒고 밤낮 움츠렸던가

지난 겨울 모진 삭풍에 마을길이 좀 더 휘었다

 

숲에 안기면 세상 모든 그림자 사라진다

솔방울 귀에 달고 고요히 명상하는 소나무들

집과 부덤의 거리는 까치걸음 몇 발자욱이다

 

오늘도 동네 한 바퀴 돌아와 여기 퍼질러 앉으니

바깥소식이 손바닥 안에 환히 들이비친다.

 

 

 

 

 

 

"기름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을 것 같은 담백한 선생님 같아!" 첫 수업에 불참한 친구의 물음에 대한 내 소회였다.  능성동 솔숲, 텐트 두동에 모기장까지. 마을 초입 우리가 논 이곳 바위에 앉아서 '소나무 명상'이라는 시를 지었다는 얘기와 다락헌 주변 이야기도 듣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준 시인을 스승으로 두었으니 복이다. 

 

여럿이 있어도 두 어명 있는 것 같고, 두 어명 있어도 모자람 없는 사람들,  이렇게 늙어가며 살고 싶다던 17년이나 된 창립멤버의 말이 생각난다.

 

팔공산 능성동에는 시인이 살고 있고, 여름동안엔 거둘 생각이 없는 둥지가 생겼다, 누구든 오면 쉬어가라고 시인이 만들어둔 쉼터. 다녀가는 손들마다 시인의 마음 조금이라도 머금고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