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이순원 장편

구름뜰 2013. 10. 28. 09:05

 

 

 

" 아빠는 글을 쓸 때 무얼 생각해요?"

 

" 과연 내가 쓰는 이 글이 저 푸른 나무들을 베어낸 책으로 만들어도

부끄럽지 않은가를 생각한단다. 

내가 쓴 책을 읽는 사람들이나 너희들보다 먼저 내가 쓴 글을 위하여

몸을 바칠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 아빠의 마음이란다."

 

"아빠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거다.

정말 글을 쓰는 사람 모두 글을 쓰기 전 나무를 생각한다면

아마 이 세상엔 푸른 나무처럼 좋은 글들만 가득할 거니까?"

-'아빠가 글을 쓸 때의 마음' 중에서  

 

 

 

아들과 함게 걷는 길'은 대관령 고개를 6학년 아들과 걸어가면서 나눈

이순원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본가엘 가다가

작은 아들과 아내는 먼저 보내고 둘은 내려서 걸어가는.

대여섯 시간을 걸리는 구비구비 길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는 길이다.

 

 아빠들이 잃어버리고 놓치고 사는 것들

마음만 내면 언제든 가능한 일들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런 매들이 아빠를 바르게 키워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하면 매에 대한 그런 생각들이야말로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는 거거든,

작년에 아빠가 널 몹시 때린 다음 그런 생각을 했단다. 

어른들이 꼭 매를 대야만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다면,

또 아빠가 매를 대는 것만이 너희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라면,

맞을 일을 하지 않아도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매를 대야 한다는 소리와 무엇이 다를까 하고. 그래서 아빠는 다시 너희들에게 매를 대지 않기로 했던 거야."

-'물푸레 나무 회초리와 물푸레 나무 책상' 중에서

 

 

 

 

 

 

"길을 걸어가며 바라보는 풍경도 그렇고요.  

굽이마다  비슷해도 똑같은 건 아니잖아요.

나무도 다르고,

풀도 다르고,

불어오는 바람도 다르다고 아빠가 그랬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이 다 다르듯이요."

 

"아빠가 지금 하는 얘기는 네가 그런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잃어버리더라도

무얼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늘 생각하라는 얘기야.

우리가 그걸 잃어버린다고 해도 아주 못 찾을 만큼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었을 때나 어른이 되기 전이나

우리가 다시 찾고자 하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는 몰라도

다시 금방 우리 마음 안으로 우리를 찾아 들어오는 것이거든."

 

"그럼, 그리워하는 건 우리가 그것들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에 대한 마음이겠네요."

 

"네가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게 아빠는 사랑스럽다."

 

"그렇잖아요. 우리는 그것들을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몰라도

그것들이 우리 마음 안으로 찾아온다고."

 

"아빠는 이 고개를 넘으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잃어버리면서 어른이 되었고,

이제 다시 이 고개를 넘으며 하나하나 그것을 되찾고 있는 거란다."

-'아이의 길 어른의 길' 중에서

 

 

 

 

"때론 어른들이 자기 아이들이 바르게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자기 아이들이 바르게 크는 걸 방해할 때가 있는 거란다.

그게 바로 어른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이라는 병이거든, 알지" 이기심이 뭔지."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너희들의 생각' 중에서

 

"저 사람은 평생 남한데 해를 끼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반대로 남한데 한 번도 이익 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을 것 같다고 말이지.

평생 어느 한순간에도 손해를 보지 않고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살아온 날 전부를 손해 보며 살아온 사람 말이야.

너 지금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는 알지?"

 

"알아요, 이기심요."

 

"이기심이라는건 바로 그런 거야.

자기 이익을 위해 남한테 손해를 주는 것만 이기심인 게 아니라

그때그때 계산하면서 자기에게 손해가 없지만 그것들이 뒤로 쌓여

살아온 날 전부가 손해인 것. 그러면서도 그게 손해인지 모르고 사는 게 바로 이기심 때문인 거야."

 

"그런 어른들은 불쌍해요."

 

"그런데도 스스로 그걸 모르니까 마음의 병 같은 것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어른' 중에서

 

 

 

 

 

" 옛말에 보면 친구는 위로 사귀고, 혼인은 아래를 보고 하라고 했는데.

아빠는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이왕 친구를 사귀더라도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한 말이지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닐 거야.

친구를 사귈 때 다 위를 보고 사귀면,

아래에 있는 친구는 자기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평생 그런 친구를 사귈 수 없는 거지.

자기가 사귀고 싶어하는 그 친구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친구를 하지 않으려 하면 말이지."

 

"그럼 어떻게 해요."

 

" 자기보다 나은 친구, 못한 친구 얘기를 하는 건

친구에게 배울 점을 찾으라는 이야기인 거여,

또 나쁜 친구를 사귀게 되면 함께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더구나 너희처럼 자라날 때는 말이지.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친구란 내가 외롭거나 어려울 때 서로 믿고 도울 수 있고,

또 당장 어렵거나 외롭지 않더라도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될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란다.

서로 붙어 다니며 놀기만 좋아하는 친구보다는

이 다음 서로 믿고,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야.

 

너 친구에 대한 옛날 얘기 알지? 아버지의 친구와 아들의 친구 얘기 말이다."

 

 

 

 

 

"알아요, 돼지를 잡아서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찾아가니까

아들 친구는 자기가 잘못될까 봐 다 내쫒는데 아버지 친구는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얼른 집 안에 숨겨주고요."

 

"바로 그런 친구를 사귀라는 거야."

 

"아빠는 그런 친구가 있어요?"

 

"그런 건 자신 있게 말하는 게 아니야."

 

"왜요?"

 

"그런 그 말을 들은 친구를 부담스럽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대신 아빠가 자신 있게 그렇게 해줄 친구는 있단다."

 

---

 

"친구를 가려 사귀기는 하되 절대 차별해서 사귀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저도 이 다음 아빠 같은 친구를 많이 사귈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의 친구인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친구들을요."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네가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우정에 대하여' 중에서

 

 

 

'우정에 대하여'전문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 실려 있는 글이라고 한다.

아들과 아버지

부정이야 끈끈하지만 대화의 부재속에서 살고 있지 않나 싶게

아버지들은 대체로 말도 서툴고 표현도 서툴다

우리집만 봐도 표현은 젬병이다.

 

책 속에 '몸으로 해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

아빠처럼 아이들도 역시나 몸으로 하는 일을 힘들고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답습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 읽은 글이 생각난다.

 

 "아빠 우리 함께 놀아요?"

"아들아 미안하구나 정말 너랑 놀고 싶지만 아빠는 회사일이 바쁘구나 ."

 

 

 세월이 흘러 아들은 성인이 되고 손자까지 보았다.

 

"아들아 이번 주말에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놀러와 줄 수 있겠니?"

"죄송해요 아버지, 정말  아버지를 뵈러 가고 싶지만 회사일이 바빠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