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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주인에 점령당한 시유지山

구름뜰 2015. 5. 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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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아침 창틀에 빗방울이 오종종 횡대로 줄지어 있다.

창문을 열어 본다. 닫고 싶지 않을 만큼 기온도 알맞다. 고층이지만 흙 냄새, 나무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다. 저 멀리 보리밭은 한 뼘 더 가까워졌다. 새 소리도 맑다. 아파트를 감아 도는 포장도로는 금방 세수한 것처럼 촉촉하다. 멈춰 있거나 잠자는 줄 알았던 것들이 깨어나고 있다.

아파트가 오목한 지형의 산울타리에 들면서 시유지 산과 아파트 사이에 도로가 만들어졌다. 외지인들은 오지 않고 입주민들의 산책로나 주차 용도로 쓰이는데 언제부턴가 도로와 인접한 산 아래 쪽이 야금야금 텃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땅에 대한 애착, 땅을 놀리지 못하는 농심 같은 아금받은 정서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평지에 텃밭이 생기는 것을 볼 때는 묵정밭을 유익하게 쓰는 바지런함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산 아래쪽 나무가 알아서 물러나 주는 것은 아닐 터인데, 텃밭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산을 가짜 주인이 점령해 가는 것을 보는 일이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성철스님의 생전 누더기 같다면 심한 비약일까. 저층에 사는 친구는 빈틈 없이 땅따먹기 한 흔적이 보기 싫다며 화단 정비 사업 제안을 내면 어떨까라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볕 좋은 날 가짜 주인이 밭을 일구고 있으면 한 뼘이라도 양보해 달라고 해보자며 텃밭에 대한 로망을 드러냈다. 화단 얘기를 들을 때는 화단이 좋을 것 같더니, 조금이라도 차지할 수 있다면 텃밭농사가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얼마나 고약한 이기심인가. 이러니 어떤 의견은 대체로 당사자의 이해와 맞닿아 있겠다, 주장이 강할수록 강한 내 이기심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살필 것은 스스로 경계해야 할 내 마음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밖에 눈만 뜨면 보이는 곳에 조붓한 텃밭 하나 있다면, 가로세로 올망졸망 소꿉놀이하듯 어깨동무한 텃밭이 있다면 화단은 반대할 것 같은 요 심사를 어쩔까.

저 텃밭들이 언제 화단으로 바뀔지 모르지만 에멜무지로라도 농사짓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애착의 대상일 것이다. 소출도 소출이려니와 땅을 어루만지고 가꾸는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도 필 수 있을 것 같은 아침이다.  
이미애 시민기자 m0576@hanmail.net

영남일보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