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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고 입학을 앞둔 조카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학부모가 된 뒤로 중·고교 졸업식에 참석하면서 드는 생각은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과 졸업이 축제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 오래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졸업’하면 밀가루나 계란 세례, 교복 찢기 등을 봐온 세대라서일까 제법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만든 식전 무대는 매끄럽진 않아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댄스, 밴드공연까지 10대들의 노래와 춤은 참으로 풋풋했다. 무대 공연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은 덜 영근 듯해도 멋졌고, 활기도 넘쳤으며, 그동안 준비해온 시간도 보였다.
깜짝 출연한 선생님 노래 덕분에 학생들의 환호는 어느 가수의 콘서트 공연장 못잖았다. 역시 학교의 스타는 선생님이었다. 졸업하는 날이 선생님과 아이들의 추억 만들기 시간이 되고 있었다. 물론 공연이 끝나고 지난 3년간의 학교생활을 담은 추억의 동영상까지 감상했다.
졸업식 하이라이트는 졸업장 수여식이었다. 단상 위로 올라가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학년 담임들이 학사모를 쓰고 단상에 올랐으며, 좌우로 교장·교감선생님이 함께 했다. 반별로 한명씩 호명되면 12분의 담임 앞에 섰고, 짧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됐다. 선생님을 힘껏 안아주는 학생도 있었다. 단상 오르는 곳에선 교장선생님이 맞아줬고, 내려오는 쪽에선 교감선생님이 쓰다듬고 안아줬다. 자리로 돌아온 아이들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이맘때 고교 정문을 지나다 보면 대개 현수막이 걸려있다. 어느 어느 대학에 누가 몇 명이나 들어갔다는 둥 학교나 학부모도 관심의 촉이 그 쪽으로 뻗어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국가 인권위의 자제 당부에도 불구하고 한두 달간은 거뜬히 걸려있다. 우수한 학생이 상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소외되는 경우를 봐온 적이 없지 않았다.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능성 때문이다. 이미 그 과정을 지나온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희망이고 기대다. 미완이라서일까.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제도나 형식으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본의 아니게 배제시킬 수도 있다는 인식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턴 정말 빡세다"며 졸업하는 날 자신을 꼭 안아준 선생님을 조카는 쉬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힘든 과정이 꿈을 키우고 꽃을 피우는 시간이기에 그 출발점에 선 모두는 꽃봉오리다. 386명 모두가 주인공인 졸업식 풍경은 퍽 감동이었다. 3년 후 조카는 어떤 꽃이 되어 있을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이미애 시민기자 m0576@hanmail.net
영남일보 2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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