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이맘때 쯤이었을 것이다. 친구네 삼촌이 설쇠러 오면서 사온 귤을 친구가 골목에 들고 나와 자랑을 한적이 있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이 모두 몰려들어서 구경을 했는데 색도 색이려니와, 손으로 껍질을 벗기는 과일은 처음이었다, 껍질을 벗겨내고 하얀 심줄같은 것들을 가려내고 속살이 한 조각씩 분리되는 것까지 구경할 쯤에는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맛을 보고는 놀랐다. 이런건 부자들이나 귀한 사람들만 먹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바다 건너 온 것이란 것도 그때 들은 것 같았다. 귤은 산골에 살면서 대처에나 가야 구경 가능한 그런 과일이었다. 사십년도 넘은 얘기이기도 하다.
명절이 되면 선물이 들어오는데. 보내주는 면면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이십년 넘도록 같은 선물을 보내온다. 멸치와 김 미역같은 우체국 건해산물인데 아마도 우체국 택배가 생기고 나서는 줄곳 그리 하는것 같다. 종목이 바뀐적 없으니 그 분은 선물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선물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아주 가까운 이가 추석에 배를 선물한 적 있는데 이틀만에 물이 질펀하게 생긴적이 있었다. 이웃사촌이어서 몇 군데 선물했느냐 물었더니 열상자 정도 했다고 해서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웃은 일일히 전화해서 물었고 일곱집인가 상태가 좋지 않은걸 확인하고 업체에서 바꿔준 적이 있다. 업체는 선물용이라 포장상태로 와서 검사에 소홀했고, 산지에서 나중에 전화까지 왔었다.
며칠 전 제주도에서 보내온 귤을 선물 받았다. 싱싱한걸 보내고 싶어서 산지에 직접 주문한 것일터인데, 15kg이나 되는 귤이 신선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거나 달지도 않고 밍밍하니 이렇게 맛없는 굴은 처음이니 어쩌면 좋을까.
그런데 이모양이라고 전화하기엔 조심스럽다. 분명 여러군데 했을 터인데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속상할지, 선물용은 더 좋은 것으로 보내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돈주는 사람 따로 받는 사람 따로이고 보니. 이렇게 악용하는 사례를 접하면 정말 씁쓸해진다. 상도랄까 주문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이런경우엔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도 가만있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귤이 많아서 나눠먹으면 좋겠지만 맛이 없어 먹는 사람도 기분 나빠질까봐 줄수도 없다. 버젓이 '달고 향긋한! 맛좋은 감귤'이라는 상표를 붙인채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제 얼굴에 먹칠 아닌가 말이다. 어찌할까 하다가 그래도 농산물인지라 썩혀버리는 건 죄다 싶어서 오늘 작정하고 쨈을 만들었다.
박스 내부도 곰팡이가 구석구석 번지고 있다. 보내준 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짜증이 나려고 한다. 왜 이런걸 주나 싶기도 하니 원 그 분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화나는 일이겠는가.
갈아서 설탕을 동량으로 넣어 오래도록 끓였다. 끓여가면서 식혀서 주스처럼 먹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라도 가공할 수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두고 먹을 쨈이 생겼다. 처음으로 만든거였는데 부드럽고 향긋한 것이 비타민이 듬뿍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다. 조금만 더 맛있었어도 이웃들과 나눠먹었을 터인데,,, 쨈이라도 나눠 먹어야 겠다.
어릴적 그렇게 귀해보이던 과일이 홀대 받는 시절이다. 물질적으로는 얼마나 풍요로워 졌는지 한없이 한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마음은 어째 한없이 한없지만은 않다. 그 옛날 맛과 향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단지 익숙하다는 것만으로 그 맛과 향을 못 느끼는 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