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삶의 의미를 다 알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나 도덕적 가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생의 무의미와 고독,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대감에 대한 절박한 추구를 이야기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 》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엘리엇의 은유가 내 말투에도 스며들게 되었다.
다른 작가들에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우리 자신이 고통받을 때 다른 사람의 명백한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해지는가에 주목했다.
조지프 콘래드는 잘못된 의사소통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특유의 명쾌한 감각을 통해 보여주었다.
나는 문학이 다른 사람의 경험에 비추어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반성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믿었다. P 53
'숨결이 바람될 때'
이 책은 독서회에서 이번 달에 읽고 토론한 책이다
36살의 유능한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이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그것을 맞이하는 자세
그리고 그의 아내와 친척들, 주변인들의 모습까지
폴은 떠났지만 그가 남기고간 책을 통해서
지금 살아 있으므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죽음, 언젠가는 올 것, 다만 그것이 언제인지 몰라서
아무 생각없이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고사든 시한부든 죽음을 면전에 둔 자의 마음상태가 어떨지 어찌 알겠는가
경험해보지 못하고는 할말이 없고 경험한 자는 말이 없다.
폴이 암에 걸리고 나서 비로서 환자의 아픔을 알게 되었노라고..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에서 그나마
문학이 사람의 경험을 가장 풍부하게 비추어 주고
도덕적 반성에도 도움을 준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폴은 남은 시간이
삼개월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보내고
일년이면 글을 쓰고
십년이라면 환자를 볼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글쓰기.
인상적인 문장을 남겨본다.
풀벌레 소리가 부쩍 늘어난 아침
연꽃이 한창인 집 근처 생태공원엘 다녀왔다.
아래 사진들은 들성생태공원의 연꽃풍경이다.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이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가차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신경외과의 소명의식에 이끌렸다. 고대 그리스의 아레테(Arete, 덕성스러운 탁월함)라는 개념처럼 덕은 도덕적, 감정적, 정신적, 육체적 탁월함을 요구한다.
-감정적 과학적 정신적 문제가 가득한 숲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활로를 개척하는 저 박식가들의 대열에 나도 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나를 도취시켰다.
P96
여덟 시가 되자 전화가 또 울렸다. 하비 부인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을 자려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본노와 슬픔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하비 부인은 수많은 서류 작업 끝에 내가 맡게 된 환자였다. 다음날 나는 그녀의 검시에 참여하여, 병리학 전문의들이 그녀를 절개하고 장기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 장기들을 직접 만지고 섬세히 살피며 내가 그녀의 창자에 묶었던 매듭들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그 첫해 동안 나는 여러 죽음과 마주쳤다. 스쳐지나가듯 본 적도 있고, 환자와 같은 공간에서 당혹스러워하며 직접 지켜본 적도 있다. 다음은 내가 목격한 몇 가지 죽음의 사례이다.
1 알코올 중독자였던 이 환자는 피가 응고되지 않고 관절 속과 피부 아래까지 흘러들어가 사망했다. 매일 멍이 몸에 번져갔다.
의식이 혼미해지기 전에 그는 내 얼굴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요, 난 여태껏 술을 물에 타서 마셨는데."
2 폐렴으로 죽어가던 한 병리학 전문의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씨근거리다 결국 병리검사실로 옮겨갔다. 생전에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셈이었다.
3 한 환자는 얼굴에 번개처럼 찌릿하고 지나가는 통증 때문에 가벼운 신경외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정맥이 신경을 누르지 못하도록 해당 신경에 액상 접착제 한 방울을 투입했다. 일주일 뒤 그는 엄청난 두통을 호소했다. 거의 모든 종류의 검사를 실시했지만 어떤 진단도 내리지 못했다.
4 자살, 총상, 술집에서의 격투, 오토바이 사고, 차량 충돌 사고, 사슴의 공격 등으로 인한 두부외상 사례들.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은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P102
.
기량이 발전할수록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점점 더 커졌다. 어떤 환자를 구할 수 있고 구할 수 없는지, 또 구해서는 안 되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손에 넣기 어려운 예지력이 필요하다. 나는 실수도 했다. 한 환자를 수술실로 급히 데려갔지만 그의 뇌를 완전히 구해내지는 못했다. 그 결과 환자의 심장은 뛰었지만, 그는 이제 말을 하지 못하고 튜브를 통해 음식을 먹었다.
그가 결코 원하지 않았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환자의 사망보다 더 지독한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 상태로 신진대사를 하는 이런 불완전한 생존 상태는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 되어 대개는 시설로 보내진다. 감정적인 정리를 아직 하지 못한 가족이 환자를 찾아오는 발길은 점점 뜸해지고 환자는 결국 치명적인 욕창이나 폐렴에 걸리고 만다. 환자가 언젠가 눈을 뜨지 않겠냐며 연명치료를 고집하는 가족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기에, 아니 그렇게 될 수 없기에 신경외과는 선고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쫒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도 존재를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다른 무언가가 서서히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두부외상 환자들을 끊임없이 접하다보니. 생사의 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순간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태양을 직접 응시하며 천문학을 배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결정적 순간에 환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순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많은 고통을 목격했고, 더 나쁘게도 그런 고통에 익숙해졌다. 핏속에서 익사할 듯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런 생활에 적응하고, 그 와중에 떠다니는 법, 수영하는 법을 배우며, 심지어는 같은 파도에 휘말히고 같은 뗏목에 매달린 간호사들이나 의사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삶을 즐기기까지 했다.
P106
가족이 숨을 거둔 환자를 보러 들어올 때 나는 외상외과 집중치료실을 빠져나와다. 그때 문득 기억이 났다. 내 다이어트 콜라, 내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그리고 외상외과 집중치료실의 찌는 듯한 열기, 응급실에는 나를 대신해줄 레지던트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수할 수 없었던 환자 대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구하러 외상외과 집중치료실로 유령처럼 슬그머니 다시 들어갔다.
매우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글쓰기가 아니라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말로해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을
진솔하게 표현해낼수 있고 공감이 말보다 쉬운 것이 글쓰기다.
환경도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어떤 습관을 애기하고 있다.
초심을 지키기가 그래서 어려운 것일게다.
냉동실에 30분 정도 넣어두니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족이 사망한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때 나는 이에 낀 초콜릿 칩을 떼어내며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햇했. 의사로 지낸 짧은 시간 동안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 커녕 퇴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09
먹어야 살고
상가집 음식이 맛있을 때도 있다
몇년 전 큰 시누이가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고 그녀가 화장터에서 태워지는 한시간 남짓동안
나는 막내 시누이와 밥을 먹으며 내년에 맞는 환갑기념한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었다
죽음을 직면한 정도에서 가끔 아니긴 하지만
대체로 인간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이타심이 이기심보다 앞서긴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걸 잃어버리지 않는한 인간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촬영 결과를 보면 아교모세포종이 틀림없었다. 공격적인 최악의 뇌암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리 부인과 그 남편의 태도를 살펴가며 부드럽게 대화를 진행했다. 뇌암 가능성을 들은 두 사람에게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까 싶었다. 커다른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리 부부는 예후를 묻지 않았다.
그렇다 커다른 그릇에 담긴 불행은 한 숫가락이어도 절망적일 것이다.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에게 섣불리 그것을 그대로 건네주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관계에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도 이별도
어떤 순간 어떤 감정은 어느날 갑자기 울컥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한 숟가락을 맛 보았을 때 우리는 다음 숟가락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너와 같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한 숟가락씩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음식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별이 사랑이 그렇게 음식을 같이 먹는 일같다면....
말이 필요없을까.
설명과 중대한 결정을 10분만에 해치워야 하는 외상과 달리, 이경우에는 일을 천천히 진행할 수 있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그들과 상세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수술에 수반되는 상황들을 알려주었다. 머리카락을 자르더라도 미용을 감안하여 조금만 자를 것이고, 수술 직후 팔에 힘이 빠질 수 있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며, 모든 게 잘 풀리면 사흘 내로 퇴원할 수 있다. 이건 마라톤의 첫걸음이나 마찬가지이고, 푹 쉬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방금 내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 한 번 모든 사항을 짚고 넘어갈 거라고 말했다.
수술이 끝난 뒤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번엔 화학 요법, 방사선 치교, 예후에 관해 의논했다. 이 즈음 내가 체득한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있었다.
첫째, 상세한 통계 자료는 학술회의에나 어울리지 병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권위 있는 통계인 카플란 마이어 생존분석 곡선은 시간 경과에 따른 생존 환자의 수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 분석을 척도로 삼아 병의 진행을 판단하고 병의 경중을 이해한다. 아교모세포종의경우 생존 곡선이 급격히 떨어져 환자가 2년 후까지 생존하는 경우는 약 5프센트에 불과하다
둘째, 정확한 것도 중요하지만, 희망의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 평균 생존 기간은 11개월 입니다. "2년 안에 사망할 가능성이 95퍼센트 입니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대다수 환자가 수개월부터 2~3년까지 생존합니다" 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필요 이상으로 정확성을 기하려고 하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한데 6개월 남았다고 했어요."), 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이며 누가 그런 수치를 가르쳐 주는 건지 나는 너무나 의아했다.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침묵을 지킨다. (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건 충격 때문이건 보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솔직함이 중요하지만 교회의 제단 뒤에서 거대한 진실을 모두 폭로할 필요는 없다 교회 본당 앞의 널따란 홀이든 신도석이든 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 최대한 멀리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 p124
나는 환자들이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 또 얼마아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P125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p129
수술실에서의 시간이 재미있는 저은 정신없이 전속력으로 움지이든 차근차근 나아가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지루함이 시간이 흐름을 의식하는 것이라면, 수술은 그와 정반대이다. 고도로 집중하다 보니 바늘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두 시간이 마치 일 분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바늘 땀을 뜨고 상처를 치료하고 나면 갑자기 일상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마지막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실감나지 않는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계속 회전하고 있었다. P132
아침 바람이 좋았다
매일 저녁 산책을 가도 어둠속에서 피는 꽃은 없다..
백연과 홍연이 나뉘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즈음이 최고다.
연곷은.... .
2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p161
서
른여섯 살에 폐암에 걸릴 확률은 0.0012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p162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한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p165
이 책을 통틀어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상황이 짐작이 잘되는 부분이다.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지 않으며, 신체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
양팔벌려 꼭 안아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 상태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신과 육체
그 균형감각이 무너지면 어떻게 까지 치닫을 지 모를 상황만 남는 것일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에 빠지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p170
몸 역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고통스러운 요통이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피로와 메스꺼움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자의 뜻을 품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거의 그렇다.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되 거기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혹은 가능하다 해도 확실히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각자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한 조각, 환자가 다른 조각, 기술자가 세 번째. 경제학자가 네 번째. 진주를 캐는 잠수부가 다섯 번째, 알코올 중독자가 여섯 번째. 유선방송 기사가 일곱 번째. 목양업자가 여덟 번째. 인도의 거지가 아홉 번째. 목사가 열번 째 조각을 보는 것이다.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그 일요일 아침에 목사가 마지막으로 읽은 성경 굴귀는 다음과 같았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란 결국 혼자서 완성할수도 될수도 없는것
성자들의 삶도 어쩌면 그들의 삶에 주목하는 후세대에 의해 위대해졌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사람도 혼자만으로는 의미없음을 얘기하 고 있는것 같다
씨 뿌리는 이가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p205
문득 엘리엇의 《황무지 》가 생각났다. "하지만 등 뒤에서 찬바람이 몰아치는 중에도 나는 듣는다/ 뼈들이 덜거덕거리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는 소리를."
p207
파킨슨 병으로 떨림을 치료하기 위한 환자의 뇌 속으로 9센티미터 깊이에 전극을 심었다. 이 치료의 표적은 시상밑핵으로 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조직이었다. 시상밑핵의 각 부분들은 서로다른 기능들 (움직임, 인지, 감정)을 보조한다.
수술실에서 우리는 떨림을 측정하기 위해 전류를 흘러보냈고, 환자의 왼손을 보면서 떨림이 다소 나아졌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의 긍정적인 중얼거림 속에서 환자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 갑자기 너무 슬퍼요."
"전류를 멈춰요!" 내가 말했다
"아, 이제 슬픔이 사라졌어요." 환자가 말했다
"전류와 전기 저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해봅시다. 알겠죠? 자, 그럼 전기를 켜요."
"아..... 모든 게 갑자기, 너무 슬러요, 우울하고 그리고......슬퍼요."
"전극을 빼요!"
우리는 전극을 뇌에서 뺐다가 기존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2밀리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삽입했다. 떨림은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
P134
언어를 관장하는 영역 주위에 종양이나 기형이 생기면, 외과의는 수많은 정밀검사와 상세한 신경심리학적 검토를 통해 예방책을 강구한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깨어서 말을하는 상태로 수술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뇌가 노출되고 종양이 적출되기 전, 환자가 다양한 언어 과제 (물건 이름 말하기 알파벳 외우기 등등)를 수행하는 동안 외과의는 끝부분이 공모양인 전극을 쥐고 피질의 작은 영역에 전류를 흘린다. 전극이 피질의 중요 부위에 전류를 보내면, 환자의 말하기 능력에 지장이 생긴다. "A, B, C, D,E, 으어어어, F,G, H, I,......."이렇게 뇌와 종양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전하게 절제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는 내내 호나자는 언어 과제와 잡담에 전념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p138
"이거 왜 멈추고 이래? 당신들 원래 이렇게 멈청해? 내 머리에서 그 망할 것 좀 꺼내라고 했잖아!"
"끝났습니다. 적출됐어요," 내가 말했다.
대체 어떻게 그는 여전히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종양의 크기와 위치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욕설은 다른 회로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종양이 그이 뇌를 바꿔버린 것일지도......p139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 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살고, 숨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접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p143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데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p234
8개월된 딸아이에게 남긴 편지다.
사망을 앞두고 2세를 남기기로 계획하는 일
그것을 부부를 넘어 양가 부모와 의논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 문화권에서라면 쉬울까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언제나 남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편에서 죽음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이책속 가족들은 떠나는 자의 입장에서 그를 먼저 배려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렇게 나이가 먹고도 막연하다.
결국 죽음은 올것이고, 죽음만이 승리자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실감안되는 것이 죽음이다.
잘 사는 건 가치있는 삶은 무엇일까.
법정은 생전에 쓴 유서에서 선의지로 한 일이 가치있다고 했다
저자 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는 가야하는 그 문전에서 그가 남긴 고귀한 성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성품과 인격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문학을 사랑했던 한 인간의 따뜻한 인간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낸 그의 지성에도 감사를 드린다.
201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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