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일출 (지난 7월 12일 작은아이가 보내온 사진)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아버지 어머니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군대 병장 때 편지 쓴 이후로 거의 4년 만에 쓰네요.
항상 어리고 귀여운 막내인 거 같지만 그래도 제 몫은 다하려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27년 짧은 인생이지만 정말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 입학하고, 학교 생활하고, 군대 가고, 전역했다가 취업 준비하고
이렇게 취업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고 있는 지금,
그 많은 성공과 실패가 이제는 다 지나간 추억이 되었네요.
앞으로 다가올 많은 어려움과 고난도
다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에 집중하고 죄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저라는 사람의 책무, 의무,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며 살아 가겠습니다
전역할 때 쓴 편지에 이렇게 쓴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만큼 더 크고 멋진 아들이 되겠다고
부모님은 아무걱정 마시고 몸 건강하시라고, 행복하시라고,
아들로서 그 약속을 조금은 지킨 것 같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다시한번 꼭 드리고 싶은 말이네요
이제 자식 걱정 그만하시고 좋아하시는 골프 재미나게 치시고,
몸 건강하고 꼭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2017 7. 12
지리산에서
* 작은 아이가 취업이 되어 한달 보름간 연수에 들어갔다. 첫걸음 내 딛는 과정이 교육받고 시험치고 극기훈련 하고, 계열사 견학도 하고 빡빡한 일정의 연속 같아 보인다. 대학의 그룹활동이나 스타디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이런 일하는 지금이 돈을 벌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난다고 했다.
지난 주는 지리산 일출(사진)일정이 있었다. 장터목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에 올라가는 코스였는데, 위 편지는 잠들기 전에 쓴 편지라고 한다. 교육과정에 있는 있어서 쓰게한 편지 같다.
녀석에 의하면 1,500미터 등정으로 녹초가 된 상황이었고, 새벽 3시 일출을 앞둔 일정이라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 '부모님께 편지쓰는 시간' 이라며 편지지를 받았고 그때 생각나는 대로 몇자 적어서 제출했다고 한다.
잠시 후 팀장이 "조별(7명씩 5개조)로 한명씩 나와서 발표하겠습니다" 할 때도 '설마 나는 안걸리겠지' 했는데 제일 먼저 호명되어 읽기도 했다는 편지다.
35명의 신입들, 이천 구백 여명의 응시자들을 뚫고 올라온 녀석들 동병상련이라 그랬던지 박수를 받았다는 얘기도 이 편지를 받기 전에 들었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기다려졌는데 편지가 본사까지 다녀온 건지 오늘에서야 우편함에 와 있었다.
진중한 편이라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는지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보니 준비하고 도전하고 기다리다 실망하고 낙담한 시간들이 보인다. 그 동안의 불안, 막연하기도 했을 미래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며 준비해 왔는지. 내색은 않았지만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자양분이 된것도 보인다.
합격 발표가 나고서야 6장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엔 한 젊은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또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어떤 대처능력이 있는지
지원한 분야에 적합한 사람인지 최적화되 인물인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질문지들이었다.
악필이라 대학 입학 때부터 걱정했는데, 이렇게 아직도 깨소금 뿌려놓은 것 같은 글씨, 해독!이 필요한 편지를 읽어준 팀장님의 혜안!도 돋보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걱정 말고 엄마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언젠가부터 그런 말을 했었는데, 그게 전역하면서 쓴 편지 였다는 기억은 나는 잊고 있었다.
돌아보면, 대학교 2학년 때 인데 나는 그때 아이를 백프로 믿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그 즈음부터 아이와의 대화에서 한번씩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이, 반짝이는 인식들이 보일 때 '아!이젠 내가 도와 줄게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여러번이었다. 그렇게 나를 추월한 것 같은 인식을 보면서 흐뭇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나는 아이에게 해 줄 것은 응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맘으로 자식을 보고, 그러다 보면 눈 앞에 보이는 행동만으로 자식의 보지 못한 시간까지 짐작하며 저래서 어찌 될꼬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때 가지게 되는 부모의 불안은 은연중 잔소리로 이어지고, 그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시키게 된다.
주변인을 못마땅해 하는 마음이 부모에게 있으면, 은연중 자식에게 전가되고, 그래서 자식은 자주 만난 적도 없는 친척이나 주변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도 아이도 서로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듣는 야단의 구십 프로는 부모의 노파심일지도 모른다. 그 불안은 부모가 스스로 극복하여 아이에게 내색하지 말아야 하는 감정 아닐까.
그러니 잔소리는 개선보다 마음 상하게 하는 소모전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부모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자식들이 극히 드문걸 보면 그 만큼 편하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아닐까. 불안하지만, 내색 않는 일, 자식 걱정은 속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불안을 내가 끊지 않으면 자식에게 되물림 되는 것이다. 커 갈수록 믿고 응원하는 일 말고는 해줄 일이 없다. 그렇게 되어야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 편지도 십년 쯤 지나면 사회초년생의 초심까지 엿볼수 있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
지나간 것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름다와 지는 것을 믿으며...
2017,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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