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셔츠를 다림질하며....

구름뜰 2017. 8. 13. 21:06

 


* 내가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처음 선물한 것은 셔츠였다. 

아버지는 집안에 대소사라도 있어야 양복을 입으셨는데, 어쩌다 여서 그랬는지 수트차림이 편안해 보이진 않았다. 새것을 입으면 카라가 목을 불편하게 하는것 같이 답답해 보였고, 헌 셔츠는 엄마가 손질해 두었어도 목부분에 색이 바래있거나 옷장 냄새가 배어서 그닥 깔끔하게 보이지 않았다. 수트의 완성은 셔츠라는 생각이 들어 그랬는지 아버지가 좀 더 멋있어 보이라고 그런건지 셔츠 선물을 무슨 날마다 했다.


큰아이은 대학생 때부터 몸매 라인이 잘 드러나는 핏이 좋은 셔츠를 즐겨 잆었다. 그 복장 때문인지 어쩌다 집에 다니러 오면 훌쩍 커서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세탁이 불편할텐데도 즐겨 입던 아이를 보면서 옷차림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형아 옷차림을 앞선 유행처럼 받아들이던 작은 아이도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셔츠 차림을 즐겼다.

 

남자의 셔츠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깨가 떡 벌어졌거나 조금 왜소하더라도 밋밋한 가슴을 지나 셔츠결이 잘록해지는 허리춤에서 가지런히 바지속으로 정리되고, 굳이 날씬하지 않아도 허리에 밸트를 맨 모습은 정갈하고 멋스럽다. 나이를 막론하고 남자의 옷차림에서 쉽게 멋을 내고 변화를 줄 수 아이템은 셔츠라는 생각이 든다.



 


* 남편은 날마다 셔츠를 입는다. 옷장에 수십 개의 셔츠가 있다. 하지만 별스럽게도 블루만 고집한다. 블루를 편애한지는 몇 년이 되었다. 옷장에 있는 다른 유색 셔츠들은 블루가 아니라는 이유로 간택되지 못한 것들, 입어 볼까 하고 사 놓고선 결국 입지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는 셔츠들이다.    


블루셔츠의 장점은 깔끔함이고 단점은 땀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땀에 젖은 부분이 원색보다 짙은 블루로 변해서 그 경계가 분명해 한 번 입은 셔츠는 두 번 입을 수가 없다. 덕분에 나는 날마다 셔츠 손빨래를 해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요령이 생겼다. 식물성 글리세린과 주방용 세제를 일대일로 섞어서 칫솔로 발라둔 뒤 뜨거운 물에서 애벌세탁을 하고 세탁기에 40도 온수로 돌리면 웬만하면 깔끔해진다. 다림질도 셔츠 하나에 삼사분이면 뚝딱해낸다. 언젠가 동생이 리드미컬하게 다림질하는 나를 보고 세탁소집 딸같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일상의 반복, 달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생전의 스티브잡스는 차이나 카라에 블랙셔츠만 입었다. 수십 벌을 맞춰두고 그 스타일만 고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옷차림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애플로고(한입 베어문 사과)와 스티브 잡스의 블랙셔츠는 기호처럼 시선을 끌었다. 이소룡 하면 노란색 츄리닝이 생각나듯 옷차림은 그 사람의 기호가 되기도 한다. 남편이 어쩌다 아주 어쩌다 다른 색 셔츠를 입으면 (물론 그런 날은 한 계절에 한 번 있을까 말까지만) 그 생경스런 모습이란, 다른 남자 같아 보인다.  




 


* 작은 아이가 취업이 되고 6주간의 연수가 끝났다.

대학 진학으로 출가 했던 녀석이 구미시로 발령나서 군대 다녀오고 이래저래 7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살던 짐을 들이고 보니 어마한 분량의 옷과 책, PC, 노트북이 전부다. 저도 우리도 혼자가 편하고 둘이 편했는데. 갑자기 셋이 된 상황, 배려하며 서로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작은 아이 셔츠는 색이 다양하다. 아빠처럼 블루를 입지 않아도 셔츠만 입으면 복장 끝이다. 옷이 사람을 입는 경우도 있겠지만 역시 사람이 옷을 입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참 좋은 때다, 젊음이구나 그런 생각까지 든다. 세탁만 하면 새 것이 되는 셔츠, 앞으로는 날마다 두장씩이 되었다. 무애 어려운 일이랴만 또 다른 출가전에 어미의 손길로 편해질 녀석을 생각해보니 기분 좋은 일이다.  


 


 


실루엣만 보아도 그림자만 보아도 알아봐지는 이가 있다. 

어떤 사람눈에는 절대로 안 보이는 것이 어떤 눈에는 저절로다.

그것이 사랑이고 마음 아닐까

   

연수중에 있었던 팀별 사진, 카톡에 올려놓은 것을 몰래 두장 스크랩했다.

사진을 찍는 분이 있어서 여러 사진들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역시나 멋스런 셔츠차림의 젊음들이다. 첫걸음을 앞두고 연수를 마치며 연수관 마당에서 찍은 것이라는 데. 사진의 구도가 환상이다. 하늘과 땅이 아래위를 받치고 희망처럼 풍선이 날아오르는 풍경이 색색이라서 더 멋지다. 자유를 상징하는 것 같고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름다운 젊음을 상징하는 이 튼튼한 녀석들의 뒤태, 시선은 모두 희망에 차 있다. 한컷에 말로는 다 못한 많은 이미지가 담겨 있다. 

이 청춘들은 각자 발령받은 자신의 고향 근처 근무지로 갔고 내일 아침이면 첫출근을 한다. 제주에서 한명을 비롯, 서울, 경기, 강원, 전라, 충청도까지 지금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작은 아이는 연수 후기에서 "훌륭한 분들과 입사동기가 된 것이 기쁘고, 이 자리에 내가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보람있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노라고 발표했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으며 자신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초심을 잘 지키고 진심을 잃지 않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면서, 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셔츠 세탁을 해줄 수 있어 좋다. 내 아버지에겐 불편해 보였던 셔츠가 남편과 아들들에겐 가장 편안하고 즐겨입는 복장이 되어 버린건 세월 탓일까. 복식문화의 변화 탓일까. 셔츠를 다림질하며 나를 가장 번거롭게 했던 셔츠가 가장 멋스런 옷이라는 재발견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일상도 때묻고 구겨진 것들을 빼기하고 펴기할 수 있다면.

빨래처럼.......  

내일은 8월 14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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