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생인 '알랭 드 보통'은 프랑스인 같지만 스위스 태생이다.
이 책은 그가 스물다섯에 쓴 처녀작이다.
최근에 나온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도 삼십년 전(95년)에 쓴
이 작품과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문장들,
아니 반복해서 읽어도 좋을 만한 문장들을 올려본다.
01 낭만주의 운명론
8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18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3 이면의 의미
6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은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14 두사람은 또 같은 기대를 안고 사귀어야 해요. 서로 똑같이 줄 준비가 된 상태에서 말이에요. 한쪽은 그저 한번 즐기고 싶어하고 다른 쪽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면 안 된다는 거죠. 거기서 모든 괴로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스물 다섯에 이런 생각,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지천명이 다 되어가는 알랭 드 보통이
그동안 지나왔을 사랑들
책을 통해 보게 되는 그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연계하여 본다면
더 성숙된 맛이 느껴지는 담백하고 담담해진 문장 또한 매력적이다.
초기작이라서 그런지 이책의 문장들은 힘이 들어간 곳이 많다.
사랑 그 후의 일상'에선 힘을 다 빠진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04 진정성
1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06 마르크스주의
12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콤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21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같은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태의 핵심에 그 요구가 놓여 있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 보이고 -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감정적으로 "통합되어" 보이고 -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답을 찾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자신의 문제의 복사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22 서양 사상의 오래되고 우울한 전통은 사랑은 본질적으로 보답받을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상호간의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은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면, [침대에서건 어떤 식으로건]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면 소진되어 버린다. 12세기 프로방스의 음유시인들의 시는 모두 성교를 미루는 것에 초접을 맞춘다. 시인은 되풀이하여 남자의 간절한 제안을 거절하는 여자에게 탄식을 늘어놓는다.
400년 뒤의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 "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불태우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따르면 연인들은 누군가를 향한 갈망과 그런 갈망을 없애고자 하는 바람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다.
07 틀린 음정
6 서로에게 매혹적인 유사성을 아주 많이 확인했음에도 , 어쩌면 클로이는 제우스가 잔인한 일격으로 나한테서 떼어낸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구두는 풀오버 스웨터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엄지손가락은 팔꿈치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속옷은 외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발목은 어깨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9 곧 클로이를 알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이 훤씬 쉽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들레르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자와 하루 동안 파리를 걸어다닌 남자에 관한 산문시를 쓴적이 있다. 그들은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의견이 같았기 때문에. 저녁이 되었을 무렵 남자는 자신의 영혼과 결합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완벽한 동반자를 만났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목이 말라서 대로 한구석에 있는 화려한 새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남자는 가난한 노동계급 가족이 카페의 유리 너머로 우아한 손님들, 눈부신 흰 벽, 실내의 황금장식을 물끄러니 바라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엇다. 이 가난한 구경꾼들의 눈은 실내의 부와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남자는 동정심과 더불어 자신이 그런 특권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에 수치를 느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눈에도 자신의 당혹스러움과 수치감이 반영되어 있기를 바라며 여자를 보았다. 그러나 남자가 영혼의 결합을 준비하고 있던 여자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불쌍한 사람들이 눈에 거슬린다고 야멸차게 말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주인한데 이야기해서 그들을 쫓아버리라고 남자에게 말했다.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기를 기대하면서 상대의 눈을 찾지만, 결국은 [희비극적인]불일치로 끝나버리는 순간 -그것이 계급투쟁의 문제인건, 구두 한 컬레의 문제이건.
사랑의 가변성
말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홀딱 반했던 때가 있었다면
그 눈빛 말한마디에도 뜨악해지는 어떤 때도 있다
사랑이 변하니? 라는 유행어처럼 사랑은 변한다
끊임없이 진화한다.
자신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 그나 그녀가
나와는 완전 다른 가치관이나 생각을 드러낼 때
실망하지만 ..... 그럼에도 희망하고
기대하며
사랑의 수명은 길어지기도 한다.
12 우리가 첫눈에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구두나 문학에 관한 취향의 충돌로부터 자유롭다. 연주되지 않은 심포니가 음정이 틀린 바이올린이나 늦게 들어오는 플루트로부터 자유로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공상이 실제 연주되는 순간, 의식 속을 떠다니던 천사 같은 존재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자기 나름의 정신적이고 육체적 역사를 가진 물질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14 인류학자들은 늘 집단이 개인보다 앞서며,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을 먼저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집단은 민족일 수도 있고, 부족일 수도 있고, 씨족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20 클로이의 초기 세계와 나의 초기 세계 사이의 모든 차이가 피곤했다.
08 사랑이냐 자유주의냐
2 왜 공동체나 국민에 애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나라는 보통 그 구성원들이 고립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별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놓아두는 것일까? 왜 사랑, 친족관계, 형제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나라들은 보통 그들의 주민의 상당 부분을 학살하게 되는 것일까?
13 자유주의 정치학의 가장 위대한 옹호자는 존 스투어트 밀이다. 그가 1859년에 출간한 '자유론'은 사랑 없는 자유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옹호이다. 밀은 국가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하며, 개인적인 생활을 이렇게 저렇게 영위하라거나, 무슨 신을 섬기고 어떤 책을 읽으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력있게 주장했다. 밀은 왕국이나 압제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의 신체 및 정신적 규율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가질"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근대 국가는 가능한 한 뒤로 물러서서 국민이 스스로 통치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거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추구하는 자유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어떤 구성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패해를 주는 경우에는 신체적이든 정식적이든 그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 존슈트어트 밀 '자유론' 중에서
위 문장을 이해가 쉽지 않았다. 다시 읽으며 번역 장이 주는 사족 같은 것이 보여서
내 나름으로 이해를 돕고자 정리해 보았다.
괄호 안은 위 문장의 이해를 돕고자 내가 바꿔쓴 문장이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뺏거나 타인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을 때만 추구할 수 있다. 문명사회에서 개인의 의지에 반하는 어떤 구성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때 뿐이다. 즉 피해를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준다면 좋은 일을 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
17 혁명가들이 무시무시한 진지함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연인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 웃을 수 없다는 것은 인간적인 것들의 상대성, 사회나 관계에 내재된 모순, 욕망의 다양성과 충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일수도 있다.
10 사랑을 말하기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11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9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겹다. 방관자들은 묻는다. 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한 인간 외에 무엇을 보는 걸까? 나는 클로이를 향한 내 뜨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해보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 해보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10 사람이란 절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바탕에는 주관적이고, 또 어쩌면 환상적인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5 마흔이 되면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가지게 된다.- 조지 오웰.
우리는 사실 우리가 받아 마땅한 얼굴을 얻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리가 받아 마땅한 돈이나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8 오아시스 콤플렉스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 야자나무, 그늘을 본다고 상상한다. 그런 믿음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런 믿음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갈증은 물의 환각을 낳고, 사랑에 대한 요구는 왕자나 공주라는 환각을 만들어낸다. 사막에 있는 사람은 실제로 지평선에서 무엇인가를 본다. 다만 야자나무는 시들었고, 우물은 말랐고, 오아시스는 메뚜기로 뒤뎦였을 뿐이다.
12 회의주의와 신앙
2 철학자들은 인식론적 의심을 탁자, 의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뜰의 존재. 그리고 이따금씩 원치 않는 아내의 존재에 한정시킨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중요한 것, 예를 들면 사랑에까지 확대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객관적 실재와 관련이 없는 내적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나타난다.
13 친밀성
10 공유된 경험이라는 기초 위에서 친밀성은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저 이따금씩 식사를 함께 하면서 생긴 우정은 결코 여행이나 대학에서 형성된 우정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다. 정글에서 사자에 놀란 사람들은, 사자에게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본 것에 의해 단단히 결속될 것이다.
14 "나'의 확인
3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혼자서는 절대로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10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린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고 아메바에게 크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없을 뿐이다. 부조리한 사람은 나의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규정이 없는 삶
아메바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이런사람이라고 생각해주면
그런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부모 자녀와의 관계나 연인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리라.
'나는 너를 좋게 생각해'와
그 반대의 마음인 경우,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상대가 느낄것이고,
그리 행동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을 것이다.
우리가 관계에서 선의지로 사람을 대하면
내게도 선의지로 올 확률이 높다.
모든 표상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17 나는 그녀의 내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 절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일 뿐이었으며, 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불가피한 거리는 우리가 결국 혼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19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낙인이 찍히고, 성격 부여가 되고, 규정될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도 우리를 바베큐 꼬치에 꿰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15 마음의 동요
5 우리가 우리 짝과 얼마나 행복하든,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쫓는 일은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도 왜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것을 아쉬워할까?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제대로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텔지어에 젖는다. 다른 사랑의 이야기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시간, 모든 선택[아무리 멋진 선택이라고 해도]에 따르는 불가피한 상실로 인한 아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8 앨리스의 얼굴을 보니 내 속의 공허, 분명한 범위나 의미가 없는 공허가 떠올랐다. 어쩐 일인지 클로이에 대한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못한 공허였다. 미지의 존재에는 거울이 달려 있어, 거기에 우리가 가장 깊은, 가장 표현할 수 없는 소망들이 모두 비친다. 미지의 존재란 방 건너편의 처음보는 얼굴이 항상 이미 알고 있는 얼굴보다 신비하기 마련이라는 숙명적 명제와 다름없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는 않는다. 갈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할 때에는 무한정 뻗어나갈 수가 없다. 그들의 특질은 이미 도표로 정리도어 있고 따라서 갈망에 필요한 신비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몇 분 동안, 또는 몇 시간 동안 보았다가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얼굴은 정리할 수 없는 꿈, 규정할 수도 없고 꺼버릴 수도 없는 욕망에 필수적인 촉매가 된다.
9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 X에게 빠져서 나를 배반할 수가 있어?" 그러나 시간을 고려한다면 배반과 사랑의 고백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늘 "지금"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클로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은 시간의 구속을 받는 약속이었다.
17 성숙이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것을 받을 만한 때에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또 자신에게 속하고 또 거기서 끝내야 할 감정과 나중에 나타난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촉발시킨 사람에게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하게 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 내가 어떤 사람에게 홀딱 반해버린 이유로 그녀의 두 앞니 사이에 틈을 들 수는 없듯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증거로 자연보호 구역에 대한 견해를 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23 내가 전 애인들에 대해서 클로이와 이야기하기를 싫어한 것도 변심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내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었다.
24 오늘은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달 후에는 그 사람을 피하려고 일부러 길 또는 서점을 지나쳐버린다는 것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16 행복에 대한 두려움
1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12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14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
"내가 너한데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 한데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 소리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생존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서로 파괴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16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파스칼의 말이다.
맥없이 사회적 영역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이것을 성취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푸루스트는 무하마드 2세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하렘의 한 아내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즉시 그녀를 죽이게 했다. 다른 사람에게 영적으로 종속되어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무하마드 2세를 흉내내기는커녕, 오래 전제 자족성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다. 나는 내 방에서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른 인간에게 기초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7 수축
5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위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6 내가 너를 사랑라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연인이 외적 자산을 벗어버린 나를 좋아하고, 무엇을 이루었느냐에 관계없이 우리 존재의 본질을 평가해주고, 흔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되풀이해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겟다면, [정신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경과 근육이 통제하는]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간,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데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20 일은 희비극의 시나리오로 풀려나갔다.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18 낭만적 테러리즘
9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상대를 협상으로 나오게할 만큼 무시무시할 것이라는 가정에 도박을 건다. 어떤 부유한 이탈리아 사업가가 늦은 오후에 사무실에서 한 테러리스트 집단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들은 사업가의 막내 딸을 납치했다면서 몸값으로 엄청난 돈을 요구했고, 만일 그돈을 내놓지 않으면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이 사업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일 그들이 딸을 죽여주면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대꾸했다. 사업가는 자신에게 자식이 열 있는데, 하나같이 실망스럽고 성가시기만 할 뿐이라고, 자신은 침실에서 마누라와 잠시 즐겼을 뿐인데 그 불행한 결과를 감당하느라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가는 냉정한 태도로 돈을 줄 수 없으며, 딸을 죽이건 말건 그것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들은 그의 말을 믿고 몇 시간이 안 되어 딸을 풀어 주었다.
15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18 낭만적 테러리스트들은 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데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 내 강요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낭만적 테러리즘은 자신의 요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19 선악을 넘어서
12 사람이란 그 기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선과 악의 일반적 구별에서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13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동기와 관계없이 오로지 그 유용하거나 해로운 결과 때문에 개별적 행동들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게 된 계기를 잊어버리고, 선과 악이 결과에 관계없이 행동 자체에 내재된 특질이라고 믿게 된다. - 니체
나는 나에게 쾌락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에 따라서 클로이에게 어떤 도덕적 딱지를 붙일 것이냐를 결정했다. 나는 세계와 그녀가 이 세계 속에서 가지는 의무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학자였다.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뿐이었다.'
17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 무방비 상태에, 아무런 권리도 없이, 도덕률도 초월해서 충격적일 정도로 어슬픈 요구만 손에 든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찌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20 심리적 운명론
9 애초에 내가 클로이를 선택한 것은 그녀의 웃음이라든가 그녀의 정신의 활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 삶의 심술궂은 캐스팅 감독인 무의식이 그녀에게서 필요한 양의 고통을 준 뒤에 무대를 떠나는 데 적합한 인물을 발견했다.
21 자살
5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성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로 너를 탓하고 싶지 않다.
22 예수 콤플렉스
6 내가 고통을 겪는 것은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는 확신, 눈이 먼 것은 내가 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는 확신에 물든 눈물의 맛은 달콤쌉쌀했다.
23 생략
8 이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녀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부재에 무관심해 진다는 것이었다. 망각은 내가 한때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죽음, 상실, 그것에 대한 배신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9 나는 점진적으로 자아를 다시 정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습관들이 만들어졌고, 클로이 없는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나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로 돌아가려면 나 자신을 다시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거의 모든 물리적 장소를 다시 찾아가, 모든 노래와 모든 활동을 되풀이 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현재를 위해서 그것들을 재정복 할 수 있었고, 그 연상들이 조성하는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차차 잊어가싿.
24 사랑의 교훈
1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들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아니면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실수를 무한히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유리가 맑아 보이기는 하지만 뚫고 날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파리들이 계속 미친 듯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지나친 의욕, 고통 씁쓸한 실망감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어떤 기본적인 진실들. 지혜의 조각들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일까?
2 사는 것도 자전거 타기나 피아노 연주하기처럼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지혜로워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혜가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지혜는 우리에게 평정과 내적 평화를 목표로 삼으라고 말한다.
5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으로 나눌 수도 있다. 성숙한 사랑의 철학은 거의 모든 면에서 미성숙한 사랑보다 바람직하며, 그 특징은 각 개인의 선과 악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이다. 성숙한 사랑은 절제로 가득하며, 이상화에 저항하며, 질투, 마조히즘,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성적 차원을 갖춘 우정의 한 형태이며, 유쾌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이다. [어쩌면 이래서 욕망이 무엇인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 없는 상태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0 '괴로운 마음'은 무엇에 대한 책일까?
-사랑하게 된 어울리지 않는 유형의 짝이 변화를 일으켜서 그들을 제대로 사랑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그들의 감정적 요구에 응답할 수 없는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는 미망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게 된다.
16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18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분석에는 절대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19 그 교훈이 더욱더 타당해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레이첼이 다음 주에 저녁 식사를하자는 내 초대를 받아들였고, 그 후로 그녀를 생각만 해도 시인들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영역이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떨림은 한가지를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 내가 다시 한 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제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은
사랑하고 아파하고 이별하고,
그럼에도 또 다른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사랑을 통해서
사람은 성숙하고 그 성숙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전제가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견뎌야 하고,
견뎌내는 어떤 문제들은 그 만큼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내가 다시 한 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럼에도 다시 사랑이 찾아와서 달려나가는 저자가 보인다
사랑이 아픔이고 기쁨이고 슬픔이고 행복이라면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이든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지나가는 중이라는 걸 알면 되리라.
그리고 매 순간 지금만 살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