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자리 만들어 보겠다던 작은아들이 정해준 장소는 삿뽀로 대구반월점이었다. 반월당은 70년 대 후반 부모님이 논 팔고 집 팔아서 고향을 등지고 이사 온 대구의 첫 집 근처이기도 하다.
열네 살 사춘기로 넘어 갈듯 말듯한 시절이었다. 시골서만 살다가 전학 와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하늘도 안 보이는 마당 없는 집에는 정이 안 갔고, 논과 들판과 산만 보이던 고향에서 집 앞으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걸 보는것도 신기했다. 고향 동무들 생각만 났고 방학만 기다렸다. 추억도 더듬을 겸 두어 시간 전에 출발했다.
옛 건물들은 남은 게 거의 없었다. 휘어가고 굽어가기도 하는 길을 기준으로 집터를 찾아야 했다. 이 골목인가 저 골목인가 싶은데, 엄마는 반대편 집을 기준으로 옛집터를 찾아냈다.
그 터에는 멋지고 예쁜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옆집 뒷집까지 세 필지가 더해져서 위용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터에서 부모님은 살림을 일구셨고, 몇 년 후 성모당 가는 쪽에 집을 한채 더 마련했었다. 여기서 십 년을 살았고 두 집을 팔아 큰집으로 이사를 했다.
카페 무명유실(無名有實)
'유명무실' 사자성어에서 유무의 자리를 바꾸니 이렇게 겸손하고 실속 있는 카페 상호가 되었다.
(검색해 보니 계대사거리에서 남산역 사이 제법 유명한 카페로 등극되어 있다)
이사 간 첫 해 지금 카페자리는 마을금고였었다. 금고가 성모당 쪽으로 간 뒤에는 방을 넣었고 시골서 유학 온 계명대학교 학생들에게 세를 놓았다. 수도가 있었고. 마루였고 아랫방이었던 공간, 그 자리에서 차를 마시는 기분은 어떨지......
그 감회는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뒷집이 높아서 경사가 있었는데 골목은 그대로였다. 뒷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무화과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무화과가 익어가는 계절이면 잘 익은 무화과가 뚝뚝 골목길에 떨어졌었다. 달다며 무화과를 따주던 자야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부모님은 대문이 있던 골목길만 오르락내리락하셨다
두류공원에서 대명시장 계대사거리 남문시장 반월당까지 수 없이 다녔던 내 유년의 길들. 길은 그대로지만 건물들은 '대구대교구 성모당'과 건너편 '수녀원' 붉은 벽돌길 외에는 남아있는 게 없었다.
건축물도 잘 지은 건 역시 작품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는 고전처럼
작품 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부모 세대의 주거환경, 책가방 배 채우기도 바빴던 지난했던 삶, 윗세대 덕분에 우리 세대가 누리는 풍요는 뭐라 해도 감사할 일이다.
그때 몇 안되던 친구들 집터에는 천마루 같은 아파트만 치솟아 있었다
"그새 이렇게 컸다"며 격세지감을 토하는 부모님. 작은아이는 몰랐을 텐데 어찌 추억 가득한 옛 동네를 식사 장소로 정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같은 녀석 덕분에 옛집도 찾고 옛길을 돌아보았다
대구에서 친구를 만난다면, 고향 친구라도 만난다면 카페 무명유실로 오라고 해야겠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옛날 남산동 우리 집으로 오라고.
옛집이 사랑받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보시니 좋았다!'
한 때 뿌리내렸던 터에 대한 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