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049

할미꽃 추억

할미꽃색 한복 치마가 고왔던 친구는 스물세 살에 서울로 시집을 갔다 저를 낮추고 제 속 같은 건 없는 양 태생이 숙일 줄 밖에 모르는 족속인가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꽃 내 눈이 어려서 더 고왔는지도 모르지만 결혼한다고 한복감을 사러 갔던 날 서문시장 그 많은 포목점에서 친구를 찾듯 할미꽃색 옷감만 찾고 있는 내가 보였다 봄은 언제나 돌아오는 데 서울 간 친구는 지천명이 지나도록 소식도 없네

사람향기 2022.04.03

봄의 꽃들에게

기억은 있는데 기억에 없는 이도 있다 시간을 소환해 주는 게 추억이라면 더듬어 봐도 그 사람이 없는 건 그때 내가 거기에 머물지 못한 마음이었기 때문일까 함께이긴 했으나 사랑이 사랑이 아니기도 하는 것 같이 춥고 메말랐던 나목의 날들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눈부신 봄날이어라 문득문득 추억이 정겨운 때가 있다 내 일상에 꽃이 피는 순간이다 봄꽃들이여 만개하기를 이 계절의 주인은 당신이므로

사람향기 2022.03.24

자기를 함부로 주지마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아무 것에게나 함부로 맡기지 말아라 술한테 주고 잡담한테 주고 놀이한테 너무 많은 자기를 주지 않았나 돌아 보아라 가장 나쁜 것은, 슬픔한테 절망한테 자기를 맡기는 일이고 더욱 좋지 않는 것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일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끝장이다 그런 마음들을 거두어 들여 기쁨에게 주고 아름다움에게 주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에 주라 대번에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질 것이고 싱싱해 질 것이고 반짝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를 함부로 아무것에나 주지 말아라 부디 무가치 하고 무익한 것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아라 그것은 눈 감은 일이고 악덕이며 인생한테 죄 짓는 일이다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 ..

시와 수필 202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