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 그림 이응노 무제 어미와 새끼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 왔습니다. 따로따로 팔려갈지도 모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에서 놉니다. 2월,상사화 잎싹만한 뿔울 맞대며 툭, 탁, 골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이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에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 문인수 시집 『쉬!』(문학동네, 2006년)에서 시와 수필 2021.12.17
이성복 시인을 만나다 느낌/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서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강/이성복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서해 /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 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책향기 2021.10.16
테크네’, 삶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기술을 통해 앞서기’(Vorsprung durch Technik). 15초 안팎의 TV 광고에 스치듯 지나가는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한번쯤 그 차의 핸들을 잡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뱃속에서 스멀거린다. 근거 없는 오만함으로 읽히는 ‘자동차 그 자체’(Das Auto)라는 문구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굳이 문명 변천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한 사회적·문화적·물리적 환경의 변화는 기술적 진보와 그 궤를 같이한다. 마을 이장님 댁에 기계식 전화기라도 놓여 있으면 그나마 다행, 우체국까지 수십 리 산길을 달려가 전보를 치던 것이 그리 오래전 풍경이 아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라는 히포크라테스의 탄식(?)을 ‘예술의 영.. 좋은 기사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