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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썩어가는

목욕탕 거울을 보니 허리가 없어졌다 똥배를 밀어 넣으려고 애쓰다 그만 둔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똥으로 가득찬 창자가 심장을 눌러 숨이 턱 막힌다 사람은 보통 1~3kg의 똥을 뱃속에 넣고 다닌다 변비 할 경우는 10kg까지도 간다 하느님도 너무하시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뱃속에 구린내를 넣고 다니게 하시다니 늘어진 헌 푸대자루 삼겹살 자랑스럽게 사용했다고 할 수 없는 실수 투성이의 덜렁거리는 성기구 엉덩이에 가려진 지독한 폐수구 아첨과 불만으로 가득 찬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가는 69kg 공광규. ㅡ공광규

시와 수필 2020.11.19

애월

하귀에서 애월 가는 해안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이었다 밤이 짧았다는 애긴 아니다 우린 애월 포구 콘크리트 방파제 위를 맨발로 천천히 걷기도 했으니까 달의 안색이 마냥 샐쭉했지만 사랑스러웠다 그래선지, 내가 널 업기까지 했으니까 먼 갈치잡이 뱃불가지 내게 업혔던가 샐쭉하던 초생달까지 내게 업혔던가 업혀 기우뚱했던가, 묶여 있던 배들마저 컴컴하게 기우뚱거렸던가, 머리칼처럼 검고 긴, 밤바람 속살을 내가 문득 스쳤던가 손톱반달처럼 짧아, 가뭇없는 것들만 뇌수에 인화되듯 새겨졌던 거다 이젠 백지처럼 흰 그늘만 남았다 사람들 애월, 애월, 하고 말한다면 흰 그늘 백지 한장, 말없이 내밀겠다 ㅡ엄원때 ―시집『물방울 무덤』(창비시선 272. 2007)

시와 수필 202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