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40

콩깍지 & 콩꼬투리

콩깍지는 콩이 들어 있는 콩꼬투리에서 콩을 빼낸 빈 껍질을 말한다. 콩깍지가 씐 것은 껍데기뿐인 상태를 일컫는 말이겠다. 콩꼬투리가 씌었다면 내실이라도 있겠는데 콩깍지라고 표현한 것만 봐도 구전으로 내려오는 속담들의 깊은 뜻이란 새길만하다. 명절 지나고 지인과 공감한 얘기도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라는 말과 "고부간의 갈등"에 대한 얘기였다. 며느리가 예쁜 건 맞지만 대놓고 표현하는 남편을 보는 일이란 아내 쪽에선 썩 유쾌하지 않다고. 가부장제가 심하던 고릿적엔 갓 시집온 며느리를 평생 뿌리내리고 살아온 아내보다 어여삐 여긴다면 시어미 심사가 편치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고부갈등 주범이 시아버지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윗사람이 현명해야 그 어떤 단위 조직도 편하다. 집안이라고 식구라고 다를 ..

my 수필 2020.10.11

비는 그치고

어릴 때 비가 흠씬 내리고 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도랑가로 달려갔었다. 황톳물이 거세게 몰아쳐 내리는 걸 보는 일이란 멀리서 봐도 긴장감을 더했다. 도랑은 빨래터이기도 했지만. 들일 끝내고 귀가하던 어른들이 손 발 고무신까지 설거지해 가는 참새 방앗간이었다. 어쩌다 먹거리를 씻으러 오면 윗물에서 씻는 , 도랑물 사용에도 어른들을 보면서 따라 배운 예 같은 게 있었다. 그렇게 큰 물이 지고 나면 도랑가 잡풀들은 결이라도 있는 양 순하게 누웠다. 다음날이면 물은 맑아졌고 도랑은 비가 올 때마다 그렇게 대청소를 당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은 일거양득이란 얘기지만 아마도 비 온 지가 오래되어 가물 때라야 도랑 청소가 용이했을 듯싶다. 지난밤 빗소리에 몇 번이나 깼다 오후쯤 그쳤는데 도랑물이 ..

my 수필 2020.07.10

삶은 감자

80년대 대구역 맞은편 교동시장에는 삶은 감자와 옥수수를 파는 리어카 좌판이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었는데 종례시간 선생님 당부 뒤로하고 목적도 없이 시내를 배회했던 토요일 오후 분을 어찌냈는지 모락모락 뱃속 사정 때문인지 비쥬얼 갑이었던 삶은 감자 주머니엔 토큰뿐이고 한 번도 사 먹은적 없지만 한 번도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안한적 없었던 어쩌다 감자꽃 볼 때마다 땅속 사정이 궁금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진데 자주 꽃 자주 감자 하얀 꽃 하얀 감자 보나 마나 최고인 삶은 감자! 내 젊은 날 일탈 때마다 결핍!이었던 삶은 감자 부대낄수록 분이 나는 사람과 삶은 감자를 먹고 싶다

my 수필 2020.07.05

우두령 고개

3번 국도 김천에서 거창으로 가다 보면 경북 끝 마을과 경남 첫 마을 사이에는 우두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경상남북도를 가로지르는데 고개가 높아 그 능선에 서면 산을 등정한 것처럼 시야가 확 트인다. 특히 대덕면 쪽으로 보이는 뷰가 장관이다. 고갯길은 국도가 생긴 이래로 아직도 비포장이다. 엄마는 스물두 살에 이 고개를 넘어 경북 끝마을에서 경남 첫 면소재지 웅양면으로 시집을 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방학이면 동생과 완행버스 타고 우두령 고개를 넘어 외갓집에 갔다. 아랫마을 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가 보이면 그때부터 두근대던 길. 아니 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설레던 길. 하얀 꼬리를 달고 버스가 우리 앞에 서면 동생을 책임지고 외가 마을 앞에 무사히 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차보다 더 흔..

my 수필 2020.05.19

보리밥

쌀 한 톨도 귀했던 60년대 보릿고개에 첫 딸을 낳은 엄마 젖 뗀 어린것에게 보리밥을 먹이면 보리가 삭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스무 살 적 부모님 열심히 일하면 보리밥은 면할 줄 알았기에 선 새벽부터 일하고 싶어 첫 닭 울기만을 기다렸다는데 일에도 허기가 졌을 리야 없을 터인데 내 일 끝나고 나면 얼른 큰집 농사일 도와 드리러 갔다 저녁이 해결되어 그게 좋았다고 이런 세상 올 줄 몰랐다고 이보다 좋은 세상없다면서도 아직도 나만 보면 보리 똥 얘기다 쌀 한 됫박만 있었어도... 지천명 지난 딸을 두고도 부모님 가슴속에는 아직도 소화시키지 못한 보리밥이 있다

my 수필 202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