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줄이 끊어졌네요. 묶어야 됩니다. 수술실로 갑시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수술이라니, 그 동안의 응급실 치료와 외래치료는 에멜무지로 한 일이란 말인가. 아이는 푸줏간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순식간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밖에 덜렁 혼자 남겨진 나는 우두 망찰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휴대폰만 열었다 닫았다 마른침만 삼키며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수술이 끝난 뒤 전문의는 그냥 두면 손가락이 더 굽어질 수도 있다며, 벌써 영점 오 미리 정도 갭이 생겨 꽉 묶었으니 이삼주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엄마가 일찍 발견해 다행입니다."
그는 칭찬하는 듯한 어조로 '다행'이라고 했다. 다행이라니? 자신이 발견 했어야 할 일을 내가 한 일이, 다 아문 상처를 다시 절개한 재수술이, 무엇이 다행이란 말인가. 눈도장 진찰로만 일관하며 환자나 보호자에겐 말 한마디도 아끼던 그가, 자신의 과실을 번지수 틀린 칭찬과 친절로 얼버무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함구한 채 이삼주면 괜찮아 질 거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내게도 이 상황이 누구의 과실이든 전문의의 말처럼 다행이란 생각에 미쳐서는 그가 내게 해줄 말이 그 것 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십 여일 전, 아이 손이 문에 치어 중지와 약지 두 손가락이 보기만 해도 아플 만큼 깊게 찢어졌었다. 출혈이 심했지만 아이는 잘 참았다. 병원 응급실에는 젊은 수련의 뿐이었다. 소독수로 상처를 씻자 아이는 자지러지며 지푸라기 잡듯 매달렸다.
"엄마! 손. 손."
고함소리가 응급실을 가득 메우고 아이 이마엔 열기가 오르고 손에선 진땀이 바짝바짝 배어났다. 애처로워 못 볼 지경이었다. 그저 수련의가 알아서 잘 처치해 주기만을 꽉 잡은 손처럼 간절히 바랬다. 수련의는 상처를 봉합만 하면 된다며 스포트라이트도 없이 약지엔 네 땀 중지엔 다섯 땀으로 응급실 치료를 끝냈다.
이튿날 외래에선 간호사가 붕대를 풀고 전문의에게 손을 보였다.
"됐다, 저리 가거라."
5초도 되지 않았다. 처치도 처방도 간호사가 했다. 원무과 영수증엔 처치료의 세배나 되는 진찰료가 부과되었다. 그 눈도장이 진찰료라는 명목의 의료비란 말인가. 하기야 보통사람들은 아무리 들여다 봐도 모르는 걸 전문가는 한눈에 금방 알아보는 것이니까. 씁쓰레한 유감이 내 안에 착 달라붙었지만 별도리는 없었다. 우리는 환자였고, 전문의의 의료행위가 불성실해 보여도 환자들이 흔히 당하는 특혜? 였으니까.
간호사가 실밥을 뽑아 주며 오지 않아도 된다던 날까지 그렇게 이틀에 한번씩 외래치료를 받았다. 흉터야 남았지만 잘 아문 손가락을 보는 순간엔 그 동안의 진찰유감도 가셨었다. 하지만 중지 끝 마디가 미세하게 굽어져 펴지질 않는 다는걸 뒤늦게 서야 알았다. 전화로 물었고 당직의는 자기 소견으론 괜찮아 질 거라며 기다려 보라던 터였다. 부기도 빠지지 않고 장마철 먹구름처럼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고 혹시나 해서 찾아간 것이 곧장 수술실행이 될 줄이야.
수술 이튿날,
"자 손가락을 쫙 펴 봐라."
잔뜩 찡그린 얼굴로 손끝에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중지 끝 마디가 쫙 펴졌다. 그 날 전문의는 드레싱에 붕대까지 손수 감아 주었다. 응급실에서 외래로 넘어 온 첫날 그렇게 손가락 움직임을 체크 했어야 했던 것이다. 수련의가 전문의의 버금치 였다손 치더라도, 그는 프로니까 무성의함 철저하지 못함은 없어야 했다. 그가 자기 직분에 조금만 충실했더라도 애먼 손가락을 처음보다 배나 크게 절개하여 열 바늘이나 봉합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그 날 뿐, 그 후론 여전히 눈도장 진료다.
의사의 진료시간은 기다린 시간이 무색해서 허탈하다 할 만큼 짧다. 그렇지만 그 시간에라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신뢰와 정이 느껴지는 의사는 없는 것일까. 의료진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그런 기대를 서서히 포기해갔다. 그것이 기대치로 인한 실망도 덜하단 걸 터득해가는 과정이었다.
용돈 달라고 호박잎처럼 쑥쑥 손 내밀던 아이의 손가락엔 아직도 붕대가 감겨 있다. 실밥은 뽑았지만 당분간은 부목을 대고 지내야 한다. 이젠 집에서 붕대를 교환한다.
"엄마, 미래의사가 한번해 볼게요."
많이 봐온 덕분이다. 압박붕대의 탄력까지 감지한 정확한 솜씨로 아이는 턱과 뺨을 이용해서 한 손으로도 잘 감는다. 간호사보다 낫다고 정말 의사되어도 되겠다고 칭찬하면 신이나서 붕대감은 손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양 아빠한데도 달려가 으쓱댄다. 아이는 아이다! 나는 붕대만 봐도 가슴이 아리어 오고 크게 남은 상처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고 병원전문의를 생각하면 맘부터 언짢아지는데, 아이는 나보다 한결 긍정적이다.
의술은 익히면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술이어야 한다지 않는가. 의료행위가 병을 고치는 의술이전에 어진 인간애적 덕성을 갖추어야 된다는 뜻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의사라는 직업은 단지 기술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아이가 덤으로 받은 불안과 고통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병원을 잘 못 데려간 내 탓 인 듯 가슴이 아프다. 응급실보다 수술실이 더 무서웠다는 아이, 수술대위에 누웠던 상황은 고통보다는 공포였으리라. 의사도 간호사도 말 한마디 없이 수술소리만 났고 힘줄을 꽉 잡아당길 때는 정말로 아팠지만 무서워서 고함을 지를 수도 없었단다.
아이와 내가 느낀 유감을 병원 잘 못 찾아간 탓으로 돌리고 말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그것은 돌 던진 사람이 돌 맞은 사람에게 왜 맞았느냐고 하는 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재수술로 지그재그로 남은 흉터가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커서도 의사가 되겠다고 하면 나는 간절히, 간절히 당부할 것이다. 의술 이전에 인간애를 갖춘 사람이 먼저 라고.
2004년 구미수필 2집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