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그림 이야기

구름뜰 2009. 7. 20. 09:30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54명이나 되는 반 아이들 중에 유독 내 눈에 띈 그 애는

고맙게도 내 뒷자리에 앉은 것이 인연이 되어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애는 문학,미술, 그리고 감각에서도,  어딜가도, 무얼 먹어도, 말씨나 행동, 취향까지

그애가 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게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렇지만 한번도 '네가 참 좋은 친구'라고 '닮고 싶은 친구'라고 내색할 줄은 몰랐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표현  했을 터인데, 그 만큼 부끄럼도 많이 탔던 것 같고

지금처럼 속 마음을 드러내서 말하는 것에도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다고 할까.

하옇튼 그랬었다. 

마음속으로 그 친구를 동경하면서 그렇게 동성친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애보다 공부를 조금 잘 했다는 것 말고 특출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 반이 나뉘어지고 그애와 나랑은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하교를 같이 하긴 했지만, 내가 5반 교실앞에서 기다리거나, 

그 애가 우리 교실앞에서 기다려 주는 시간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에

한 반  일 때 보다는 하교를 같이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쩌다 쉬는 시간 복도를 오가면서 만나거나, 5반 교실에 놀러가면 

다른 친구랑 함께 있는걸 보면 왠지 시샘이 나고 그 옆에 있는 친구가 괜히 미운,,

질투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도 했던 그런 친구였다. 

동성친구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유일하게 그 애 뿐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질풍노도의  시기였기에 그런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우리는 한참을 친하게 지냈다. 

그 애 집에 놀러가면 그애가  그린  그림이 두 어 평 남짓 되는 좁은 방 벽에

스케치북에서 찢어낸 스프링 철 흔적이 너덜너덜한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 그림들이 좋아서 나는 그 애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애의 그림이 어렵고 추상적이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은 감히 못하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애가 부러웠었다.

 

언제부턴가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내게 생겼다.

하지만 용기를 못내고 졸업을 하고도 한 해가 지난 어느 겨울날 나는 용기를 냈다.

  "숙아,  그림 한장 그려 주라??"

그애는 흔쾌히 승낙은 하지 않았고,,  나는 기다렸다.

그렇게 석달도 넘게 기다린 어느 봄 날, 친구는 내게 그림을 내밀었다.

 "너 생각하며 그리느라 늦었어."

 

도화지에 포스터칼라 물감으로 그린 2호 정도 크기의 이 그림이 그 때 받은 그림이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이 황홀했었다.

나 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상적인 여인의 모습, 

신비한 빛을 발하는 여인의 얼굴빛. 그리고 감은 눈, 눈을 뜬 것 보다도 더 눈부셔 보이는 감은 눈, 

여인의 모습은 친구의 외모와도 내 외모와도  전혀 닮지 않았지만

내겐 그 그림속 여인이 친구같이 느껴졌다.

내가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로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이 그림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이 그림을 보면서 더욱 좋아 했었다.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하늘 빛 블루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도.

 

지금 보아도 이 블루의 신비한 여인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20년도 넘게 곁에두고 보지만 싫증은 커녕 여전히 신비로운,

친구처럼 묘한 매력을 풍기는 그림이다.

그 때 여고때 친구를 처음 보았을 때의 끌림처럼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그려 달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그림이었지만, 

친구가 내게 준 그림과, 그리고 그 친구와 나눈 우정

그리고 나를 가득 채울만큼 매력적이었던 그 애와의 학창시절까지... 

지금은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여전히 친구를 좋아하는 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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