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하러 가지 않을래?"
오늘 내게 이런 제안을 한 이는 놀랍게도 남편이다.
어쩌다 관광지에서 절에 들르게 되면 "어머님이 교회다니는데.. "라며
삼배도 않기를 바라는 듯 해서 굳이 대웅전 부처님께 반가운 내색도 하지 않고 지내온 터였다.
지난 여름 보리암 갔을 때도 그 절경에 반해서
"보리암 부처님에게 삼배한번 하면 어떨까?"했더니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데 절하는 건 그렇지 않느냐며 대웅전 앞에서 신발 벗으려는 나를 말렸었다.
나도 굳이 권하지 않는 걸 할 이유도 없고 고집 부릴일도 아닌지라 그냥 넘기고 지나왔었다.
한데 오늘 108배를 하러 가잔다.
팔공산 갓바위에 수능 앞둔 학부모 행렬이 줄을 잇는다는 뉴스를 접하고
부모로서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동한것 같았다.
자식이 뭔지, 수능 앞둔 마지막 주말이라 뭔가 좋은 기운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빌어보고 싶은 부모마음 이었던 것 같다.
108배를 목적으로 절엘 가게 될 날이 올줄이야! 오래 오래 살고 볼일이다.
108배 해 본지가 20년도 넘었다..
스무살 시절엔 어느 도량이든 들어서면 아는 집 같이 느껴졌고,또 그런 사찰풍경에 대한 반색도
결혼과 함께 한동안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
어차피 본성의 문제인지라 절에 연연할 필요도 없는 것이란 걸 알기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냥 물흐르듯이 편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종교에 관해서는....
108배!
예전 경험만 생각하고 시작했다.
신기했다.
힘들다는 생각조차도 안들었다..
왜일까.?
스무살적 느꼈던 그 버거움은 하나도 없었다.
하다보니 일념의 상태가 되었다.
명분이 있어서 일까...
마지막 108번째 절을 하면서 나는 두손을 모으고
내가 간절히 염하고 싶은 것을 눈을 감고 마음으로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생각해내기도 전에
뜨거운 감정이 먼저 북받쳤고 그것은 눈물로 솟구쳤다. 부끄러운 눈물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기회주의적이며 이기적이고 간사한지...
그동안 나 편한대로만 살아와 놓고 이 시간 이 불상앞에 독대하듯 엎드려 있는 내 모습이라니,
내 맘대로 살았다는 회환과 참회가 밀려왔다.
불상앞에 엎드린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졌고 낮아져 있음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좌선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서야 극락전을 나올 수 있었다.
극락전 계단을 내려오면서 무릎이 휘청꺽일뻔 했지만,
후련해진건지 맑아진건지 무언가가 해소된 마음은 한없이 편안했다..
더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지는 느낌,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스스로 낮아지는 느낌이 108배 안에 들어있었다.
이런 시간을 자주 갖자고 했더니 남편왈 '마음먹기 달린것'이란다.
'마음먹기'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일이면 도울수 있다면
정성으로라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부모마음 인 것 같다.
갓바위 부처님은 오늘 같은 날 나같이 20년도 넘어 찾아오는 불자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실지..
도리사 아미타부처님 앞에서 내가 느낀 부끄러움은 잊지말고 명심하면서
살아야할 부끄러움이었다.
오늘 108배는 아이와는 상관없는 시간이 되고 만것 같다.
나는 부모노릇 한답시고 가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내 부끄럼만 떠안고 돌아왔다.
권아, 미안하고 고맙다.
당연 너가 모르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네 덕분에
오늘 자신을 돌아볼수 있는 시간을 가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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