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or 여행 에세이

마산 나들이

구름뜰 2009. 12. 8. 16:44

 

 

어제는 초행길인 마산엘 다녀왔다.

10여년 전부터 봉사단에서 젓갈거래를 해오고 있던 지인의 사업장이 마산에 있다.

만남이라야 1년에 딱 한번 추석전 행사시에만 만나는게 다지만 그동안의 쌓인 정이 많은 셈이다.

이번가을 추석전 만남에서는도 꼭 한 번 마산에 놀러 오라는 당부가 있었고

겨울바다 여행겸 마산행을 택하게 되엇다. 

 

일행이 20명은 되는데 이래 저래 사정이 생겨서 13명이 참석했다. 

45인승 관광버스에 13명이 타고 간 셈이다. ㅎㅎ

기사가 뒷자석 몇개를 열차칸 좌석처럼 세팅을 해주어 오붓하게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며 

얘기 꽃을 피웠다. 일상탈출이랄것 까진 없지만 벗어나는 느낌,  여행의 묘미다.

 

 

마산은 인구가 많을때는 50만까지 됐었다고 한다.

지금은 구미시보다는 조금더 큰 도시 정도라고 한다.

시가지가 바다를 배경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아래쪽에 형성되다 보니 길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지형이 아니라서 한번만 다녀와도 길찾기는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돝섬으로 먼저 배를 타고 들어갔다.

미리 마중나와준 지인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가이드 역할 제대로 해 주셨다.

돝섬까지는 5-10분정도 소요되었는데  배삯은 7,000원 조금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착장에서 눈 앞에 보이는 저곳이 돝섬이다.

 

 

 

배가 막 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다 색이 장관이다.. 높은 하늘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다 담은 듯한 색이다..

 

우뚝 솟은 아파트들이 그 위용을 맘껏 과시하고 있다.

마산에는 아파트 조망이 참 좋을 것 같았다.

어느쪽에서는 돝섬은 다 보일것 같았고 길게 늘어선 도시가 조망하기에는 최고조건 인듯 했다.

~ 늘상 휴양지에 사는 그런 기분이 들것 같다.

 

 

저 연육교는 마산과 창원을 잇는 마창대교라고 했던 것 같다. .

돝섬 선착장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이다.

 

 

돝섬은 옛 가락국왕의  총애를 받던 한 미희가 어느날 갑자기 궁중을 떠나 마산앞바다 섬에서 배회하고

있기에 신하들이 환궁을 재촉했으나 사양하고 금도야지로 변하여 앞바다 이 섬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후 금 도야지가 맹수로 변하였고 군병들이 포위하자 한줄기 빛이 되어 섬으로 사라졌고,

섬은 돼지 누운 모습으로 변했다고 그때부터 돝(돼지의 순 우리말)섬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전설같은 설화같은,,

 

그후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와 괴이한 광채가 일어나서  신라의 최치원선생이

제를 올려 위로한 다음에야 잠잠해졌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을때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

 

임금의 총애를 받던 미희가 무슨 연유로 이런 곳에까지 내려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연이 있었음은 분명한 것이다..

사람이 싫어서 짐승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그러고도 그 미희는 사람의위로가 필요했던 것일게다..

 

이 금 돼지상이 그 미희 상인 셈이다.

 

 

돝섬 좌측으로 조선소가 있었다. 한국조선이라고 했던 것 같다. (정확한지 모르겠다)

물이 깨끗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나 동해안 만큼은 아닌것 같았다.

 

 

돝섬은 면적이나 규모가 작은 섬이었다.

외도나 해금강쪽 풍광에 비하면 비경은 아니었지만 시내와 인접해 있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공원내에도 아직 다듬어야 할 게 많은 것 같았다.

놀이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산책을 하듯 한바퀴 천천히 돌아도 한시간 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정상도 야트막 했다. 전혀 부담가지 않는  하늘공원(정상)에 이은상의 가고파가 비가 세워져 있었다.

고향바다를 그리는 마음과 고향 친구를 그리는 마음이 가고파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가지않고도 그 파란물이  눈에 선히 보인다는 노랫말

꿈엔들 못잊는다는 그 고향

고향은 누구에게나 역시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가서 모든것 잊고 옛날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 대목이 그리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변하는 듯 한 시구다.

 

일몰이나 일출이 참 아름다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 도시에 산다면 시시때때로 하늘과 바다와 파도 바람까지 그때그때 장관인 자연의 풍광들을

사진에 담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공원이라 스산하다는 느낌이다. 이곳이 정상인 셈이다. 섬을 찾은  여행객들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남쪽이라 그런지 시내 가로수 중에선 아직도 은행나무 잎이 남은 곳도 몇몇군데  보였다.

 

 

이 길을 보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길'이 생각났다. .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국어선생님의 닦달로 교과서 시는 웬만한 건 다외웠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운동주의 별헤는 밤의 뒷부분에 나오는 패, 경 옥 이런 산문처럼

느껴지는 부분들까지 외웠으니까..

 

단풍든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길을 다가 볼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이 없고
두 길은 그 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 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라고.

 

영시에선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때 교과서에는

노란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길을 차마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나의 길이 굽어내려간 곳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대충 이랬던 것 같다.

찾아보니 단풍든 숲으로 나온다. 그시절을 생각하며 ..

 

가지않은길은 살아가면서 영원한 미련으로 남는것 같다.

가지 않아서 미련이 남는 길..

 

 

 

 

하늘공원을 내려오다 보니 갤러리가 있었다.

섬안에 있는 갤러리라.. 독특했다..

이곳에서 사생대회, 행사, 전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해상 출렁다리...

어른들끼리 보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좋은 섬 같았다.

 

  

마산시가지 풍경은 바다를 배경으로 길쭉하게 늘어서 있었다.

 

 

 

회보다도 아구찜을 먹어야 할 것은 골목,,

들어가니 줄줄이 아구찜 식당 뿐이었다.

 

 

아구찜이다.

말린 아구로 만든 찜인데 워낙의 명성이 알려진 음식이라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맛은 그냥 딱 그 맛이었다. 내륙지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

 

사실 아구찜은 젊은 새댁시절  손님온다 치면

시장가서 아구부터 샀던 기억이 있다. 빠지지 않은 메뉴였다. 

그만큼 내가 제일 자신있게 만들던 요리다. 

생일, 대소사 등 남편친구나 친척들 모임있으면 빠지지 않고 만들었던 요리인데

만들어 본지가 까마득할 정도로 요즘은 술자리를 가지긴 해도 간소화되었고 또 밖에서 많이 가지는 탓에

귀찮고 손 많이 가는건 안해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 

 

아구찜의 매력은 매콤함인데 한번 먹고나면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여파!가 오래간다.

그래서 역시 다음에도 아구찜을 주문하는,, 매운맛이 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음식이다.

언제 한번 그 옛날 생각하면서 만들어 먹어야 겠다.

 

 

식사후 마산 어시장으로 장보러 갔었다. 죽방멸치등,, 해산물과  젓갈류 등

도매를 함께 겸한 시장이라 가격이 확실히 저렴했다

 

 

삼미식품 이곳이 어시장에 있는 우리를 초대해준 사장님의 가게이다.

좌측에 큰 모형으로 세원진  <어간장>이라는 입간판!인 셈인 저것이 사장님이 개발한 제품이라고 한다.

공장은 어시장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장님의 안내로 공장 견학을 갔었다.

 

 

 

견학가는 길  경남대학교 앞 도로 풍경이다.

신호대기중에 한 컷,,

 

 

공장도착.. 야트막한 동산앞 부지로 양지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뒷동산이 야트막해서 뒷 마당 정원같은 느낌이 드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젓갈 만드는 공장이다.

장독대 뚜껑처럼 덮여진 쇠로만든 뚜껑속에서는

개당 25톤 가량의 젓갈이 숙성되고 있었는데 40여개나 되는 지하 저장발효고가 있었다.

경상북도와 시 , 군 여성단체에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매년 가을마다 젓갈판매 행사를 해 왔지만

직접 현장견학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 규모에 모두들 놀랐다.

 

 

정갈하고 정결해 보이는 우리 전통 장독대.

이곳에서 장이 익어가고 있다. 어간장을 숙성시키는 항아리 들이다.

 

 

 

보통 기존 간장이 1년 안에 만들어 지고 조선간장이라고 한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발효  소금과 섞어서 간장을 만든다.

이 항아리속에선  <어간장>이 숙성되어져 가고 있었다. 

이것은 등푸른 생선과 콩을 띄워서  발효 일종의 젓갈 맛과 간장맛을 혼합한 기술 같았다. 

생선과 콩의 만남으로 24개월동안 숙성 발효, 이곳 항아리에서 다시 1개월을 더 발효시켜서

완성 된다고 한다.

오랜 연구과정을 거쳐서 나온 상품이라고 한다.

 

제작년부터 이것을 먹어오던 회원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어제 직접 맛본 건 처음이었다.

젓갈과 간장의 중간용도로 맛을 내는데는 그만인 간장맛이었다. .

해산물 국물요리의 간으로 도 좋을것 같고 보통 무침에 젓갈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으로 대용해도 좋을듯,

소스용으로 좋을 듯 했다.

 

사장님은 젓갈에 대한 잘 못 알려진 상식때문에 안타깝다고 하셨다. 

보통 멸치젓이든 다른 어떤 종류의 젓갈이든,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맛이 나기 시작하면

위에는 벌레가 자동으로 슨다고 한다.

벌레가 슨다는 것은 맛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셨다.

그런 부분들이 비위생적인 부분들로 오인되어  잘 못 알려진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어간장은 특허품으로 미국 캐나다에도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창원전문대 정순경박사와 연계 개발하여 산학 협력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맛을 아는 분들만이 꾸준히 찾아서 먹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우리를 초대한 삼미식품 사장님이시다. 사무실 안쪽에 준비된 연구실에서 한컷,

무엇이든지 한 우물을 파면  그 분야에서 분명 성과를 얻는 것 같다.

물론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숨은 노력 덕분일 것이다.

 

 

이사진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앞쪽 산 형상이 하트 모양으로 여성을 상징하는 형상이라고,

사장님이 여기에다 터를 잡고 이리 저리 수소문 끝에 남근을 세우라는 처방을 얻고

남근상(사철나무 아래쪽) 을 세웠다고 한다. 

산의 정기를 위로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는..

 

제대로 끝까지 설명을 못 들었다. 남근상때문에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만사형통, 음양이 조화를 잘 이루듯이 두루두루 잘 되라는 뭐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산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ㅎㅎ

 

초행길이어도 편안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잘 다녀온 여행길이었다.

좋은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었고 동행한 사람들과의 따듯한 정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겨울바다는 여름바다처럼 아름다웠다. 사람고 사람사이에도 따뜻한 마음들이 오간다.

여름바다나 겨울바다나 한결같은 바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