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구름뜰 2009. 12. 25. 15:01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을 읽으면 마음에 군불을 지피듯 온기가 번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된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작은 아이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맞던 이 맘때 쯤이었다.

독후감상문 과제가 있었고 서점에서 아이가 고른 것인데,

읽고나서 제가 고른 책중에 최고라며 뿌듯해 했던 책이기도 하다.

 

 '무소유'도 그렇고 '인연' 같은 책도 그렇고 좋은사람 만나면 권하게 되는 책중의 하나다.

 읽어보라며 빌려주거나 또 사면 되지 하고 주다보니

정작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면 책꽃이에는 없는 그런 부류의 책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생각이 나서 뒤졌지만 역시나 없다.

 

또 어디 갔을까? 작은 아이는 이모한데 물어보라고 하고 

나는 제 친구 누구 생각나는애 없냐고 하다가 기억도 가물가물  다시 주문했다.

 책 빌려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까보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읽다보면  권하고 싶은 책,

 어른에게도 좋지만 초등고학년 정도면 딱  좋은 책이다. 

 

 책 도입부는 저자인 주인공 '작은 나무'가 5살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고 

 친척들이 모여 자신을 두고 의논하는 중에 무엇에 끌렸던지 할아버지 다리에 매달리게 되고

친척들이 떼어놓으려 해도 손의 힘을 풀지 않은 어린손자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인디언 체로키족의 혈통이셨고

산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작은나무도 그들과 함께 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서 산속으로 들어가는 부분부터 10살무렵까지 

 저자의 어린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문장이 어찌나 생생한지 수필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인디안의 생활방식과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욕심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그런 지혜로운 가르침,

이 시대 문명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책속 어딘가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에게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맥은 하나도 변함없으며 변하지 않았음도 엿볼수 있다.

 물질문명만에만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 볼수 있게 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자전적 소설이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깨워주겠다'고는 하시지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힘으로 일어나야 하는거야."

할아버지는 조금도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내 방 벽에 쿵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소리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덕분에 한발 먼저 밖으로 나간 나는 개들과 함께 어둠속에 서서 할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아니, 벌써 나와 있었구나!"

"예, 할아버지."

내 목소리에는 뿌듯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자연의 이치 부분

 

 

 할아버지의 사랑법은 언제나 이랬다.

그래서 작은 나무는 뿌듯하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말한마디 한마디가 진중했고 손자에게 삶 그 자체가 산 교육이 된

 할아버지의 지혜를 아이는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부모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시종일관 배울 수 있다.

 

  5살 작은나무가 애처로웠을 터지만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답이 보이는 일에도 절대로 아는체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게 했고 조력자 역할만 했다.

 기다려 주었고,질문에는 이해가 쉽도록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아이는 신중하게 선택할 줄 알았고 책임 지는 심성이 형성되었고

그 누구를 향한 원망같은 감정은 없었고 잘못된 선택에서는 좋은 교훈을 스스로 얻었고

잘 한 선택(좋은 결과)에서는 뿌듯한 자존감으로 성장해갔다.

 그런 것이 문장속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감동적이다.

 

그런 자양분을 손자에게 마련해주는 지혜로운 어른의 모습,

손자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니 주변인들까지 합세!한 지혜로움이 영혼을 따듯하게 만드는 것들인 것이다.

할아버지의 사랑법이기도 하고 삶의 방식이기도 한,

육은 모름지기 이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드는 부분들이 많다.

 

재밌는 것은 어릴적에 그렇다고 인식되어진 교육은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리집 두 아들녀석은 유치원시절에 둘다 부곡하와이 인디안 캠프엘 다녀 왔었다.

한데 큰아이가 중학생 때 쯤이었고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을 것이다.

둘이서 우연히 인디언 캠프 이야기를 하다가 큰 아이가 그랬다.

 

"야, 너들 갔을때도 인디언 추장 왔었지?"

"응 왔었어."

"너들 갔을 때 온 인디언 추장은 가짜야. 우리가 캠프 갔을 때는 진짜 인디언 추장이 왔었어."

".......,"

 

나는 포복 절도 할 뻔 했다.

어린시절의 경험은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자신은 커서 추장이란건 실제로 올 수 없으며 대역이어서 분명 가짜인줄 알지만

어린눈으로 확인했던 그 추장은 진짜라고 믿는..

작은 아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런가 하고 형아만 쳐다보고 있었다.

저도 진짜라고 믿었는데 가짜라는 형아말에 기막히기도 했을것이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혼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 말도 해 줄수가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역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어린시절의 교육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너구리 잭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할아버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해. 보니비" 부분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 술 주정뱅이든 비관론자이든,

흥분을 잘해서 시비 걸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등

 그건 그 사람이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주면 그를 사랑하기 쉽다는 내용이다.

'너구리 잭'은 일생을 전쟁통에만 다녀서 흥분을 엄청 잘하고 잘 싸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그를 비웃더라도 그러면 안된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너구리 잭으로서는 싸우는 일말고는 해온 것이 없으므로

'너구리 잭'이 지금 하는 일이 비록 하찮은일이라도 그일을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의  삶을 존중해주면 그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너구리 잭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그를 이해하기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해가 안되는 그부분을 이해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사랑도 이해가 먼저라는 이야기이다.

이해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할 때도 이 마음을 써야 한다.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도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평생 욕심 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한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밤톨만한 영혼만을 갖고 태어나게 되어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알만하게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모든 사람을 잘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밤톨만한 영혼을 갖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비밀장소 부분

 

영혼의 마음,,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이해와 사랑..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것이다.

 

죽은 영혼을 가지고 살거나 마음의 영혼이 밤톨만해져서 아주 없거나

이런 모습은 우리 현대인에게 더 많은 모습이 아닐까.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하며 산다는 건, 영혼의 마음보다는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꾸려가기에 급급한 세상살이이기도 하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물질문명의 풍요는 사람들의 정서와 정신까지 풍요롭게 만들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살면서 느끼기도 하고 경험하게도 된다.

 

어떤 일에 닥쳤을때 나와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과 연관짓게 되는 이런 현상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큰 병폐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된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체면같은, 공동체 정서라는 것도 있었지만

핵가족화 되어 가면서 그런 것들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편리해지고 좋아진 것들이 많은 만큼 마음은 조금씩 삭막해져 갔는지 모른다.

 

말로는 쉽지만 살아가면서 느끼고 나누고 이해해야하는 것이 내 몫일 때는 쉽지 않은 일들

두개의 마음, 영혼의 마음이 있다는 것, 그래서 정작 중요한건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영혼의 마음을 길들이는 것도  습관일지도 모른다.  

습관을 들인다는건 그것을 의식할줄 안다는 것이고 

그것이 참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걸 제대로 맛볼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네 기분이 어떤지 잘 안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다.

사랑해던 것을 잃었을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피할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링거가 그다지 충실한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마 기분이 더 안 좋았을 것이다."

맞는 말씀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면 링거 생각이 날 것이고,

또 나도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링거'가 죽어서 슬퍼하는 것을 할아버지가 달래는 부분이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의 기분과

뗘났더라도 그와 내가 끈이 되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헤어져도 이별도 이별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정신의 소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혼의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꼈던 것,

그것을 추억할 수 있도록 희망의 메세지까지 주는 할아버지의 지혜..

그리고 항상 텅빈것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 보다 피할 수 없지만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했던 것, 떠올릴 추억을 간직한 것으로도 좋은 일이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앞으로 너는 누가 다른 사람 헐뜯는 말을 하면 그 말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런 건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거니까. 그것보다 말투를 잘 들어봐.

그러면 그 놈이 비열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 

 

"자 봐라, 작은 나무야. 나는 네가 하는대로 내벼려둘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 맛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그래요, 할아버지."

"자, 그런데 너는 뭘 깨달았니?"

할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물으셨다.

"음, 제 생각에는 요, 기독교도와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작은 나무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제 입으로 자기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떠벌리는 사람한데는 조심하겠다는 뜻이지?"
"예, 할머니, 그래요."

하지만 확실히 이해되는건 아무것도 없었다......50센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 말고는.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저녁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얼굴을 접시에 박았다.

할머니가 내 얼굴에 묻은 완두콩을 닦아주셨다.

그날밤 나는 비타협파 침례교도들과 가톨릭교도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비타협파는 우리 증류기를 두들겨 부수고, 가톨릭교도들은 송아지를 통째로 잡아먹었다.

기독교인과 거래하다 부분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를 도우거나 해서 그 동안 모아온  50센트를

할아버지와 함께 사거리가게 위스키제조한 것을 팔러 갈 때는 가지고 갔었다.

집에서는 항아리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가게로 가면

그 돈들이 모두 내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에 뿌듯하다고 했다.

 

 어느날, 기독교도인이라는 사람이 송아지를 몰고 와서 돈이 얼마있느냐고 물으며

 이 송아지는 50센트의 100배 정도는 받아야 하지만

송아지도 너를 마음에 들어하고 너도 송아지를 좋아하는것 같아 특별히

네게 판다며 그 50센트를 낚아 채간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볼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송아지는 죽는다.

 

 병든 송아지인줄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셨기에 그냥 지켜만 보았을 뿐이다.

 할아버지의 지혜로운 모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 사람이 가진 건 자부심밖에 없을 거야.......

좀 잘못 발휘되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그 여자애나 자기

자식 중의 누군가각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좋아하도록 내벼려둘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받아들고 좋아할 때는 매를 드는 거란다.......

애들이 깨달을 때까지 매를 때리지......

그렇게 매를 맞고 나면 아이들도 그런것들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단다."

사거리 가게에서 부분

 

사거리에 갈 때마다 자주 보게 되는 맨발의 인디언 소녀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모카신을 소녀에게 선물했다.

소녀는 좋아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 신발을 신고 좋아하는 소녀를 흠씬 두들겨 팬다.

기들이 가질수 없는 것을 자식들이 가져서 좋아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대목,

그것을 매를 들어서 다시는 그런 생각조차도 못하도록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교육이다.

 

오늘날의 우리모습과는 다른 이른 처절하리만치 냉철한 교육방식은

아닌건 절대로 아닌것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커서도

그 경험으로 감히 엄두도 내지 않는 산 교육이  되는 것은 분명할 것 같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가장 올바른  가르침이 될까 하는 생각은 늘 하지만 어렵다.

 좋은 방법이라면, 부모가 현명하고 뛰어나서 자식이 그 모습을 그대로 보고 커준다면 

더 이상 뭘 바랄까. 하지만  내모습(부모 모습)을 그대로 본 받기를 바라는 부모보다는

 나 보다는 더 나아지길 바라는 것이 부모마음이다.

그러다보니 자식과 부모사이에는  갭이 생기고

그런 부분들을 잘 메꿔가는 바람직한 가정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것 같다.

 

쉽지 않다. 기대에 못미치는 부모와, 기대에 못미치는 자녀

서로를 향한 기대치만 높아있다면 영원히 메울수 없는 갭이 분명하다.

 

 

 

야생으로 자란 것들은 사람이 기르는 것들에 비해 100배나 강한 맛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끔 야생 양파를 찾아내곤 했는데,

한 줌 정도만 있으면 재배한 양파 3,40킬로그램과 맞먹을 정도로 강한 맛을 낼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비가 내리면 산허리를 빙 돌아가며 페인트통을 엎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온 산이 온갖 색깔의 꽃들로 뒤덮였다.

씨앗들이 대지의 여신인 모노라의 자궁 속에서 열을 받아 싹을 튀우는 온도는 각각 다르다.

대지가 이제 막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주 작은 꽃들만이 피어난다.

대지가 좀 더 따뜻해지면 좀더 큰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에도 수액이 돌기 시작한다.

더불어 나무들은 임신한 여자처럼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오르다가

드디어 가지 끝에 일제히 싹들을 터트리게 된다.

위험한 고비 부분

 

인디언과 관련한 서적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등을 봐도 그렇고,

인디언들은 대지를 여성의 자궁으로 인식한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을 여성의 자궁에 비유하며 신성시 했다.

봄날을 임신한  여자가 기지개를 켠다고 하는 부분,

작은 새싹들 하나하나를 생명체로 받아들이는

이런 자연을 읽어내는 인디언들만이 진정 자연인이었으며

자연을 사랑한 사람들 이었던 것일게다.

 

 

 

나는 열심히 해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해는 아침시간을 늘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위로 올라가지 않고 도로 옆걸음질하더니 산등성이에 눌러앉아버렸다.

할아버지는 해가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일은 자주 있다.

특히 오후 늦게 밭일을 끝내고 한시바삐 냇가에서 몸을 씻고 싶다는 생각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고 하셨다.

또 할아버지는 우리가 무슨 일엔가에 몰두해서 해가 아무리 더디게 움직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 해도 게으름 피우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작은나무가 며칠전부터 따 먹고 싶어하는 수박을

할아버지는 계속 덜 익었다며 미뤄오다가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 나절이면 따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작은나무는 해가 빨리  중천에 떠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오전일을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햇님은 작정한듯 옆걸음질하다가 산등성이에  눌러 앉아 버렸다는

어린 마음이 너무도 잘 드러난 미문이다.

 

어린아이의 맑은 심성과 그것을 똑같이 공감해주는 할아버지의 마음까지 읽혀진다.

눈길한번 주지 않으면 게으름 피우는 것도 포기한다는 부분,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부분,,,ㅎㅎ 너무 이쁜 문장이다.

 

이책을 읽고 나면 이렇게 게으름 부리는 햇님에 대한 표현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지는 문장이  많다. 저절로 영혼이 따뜻해지는 문장들이다.

 

 

 

여름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은 나의 계절이다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태어난 계절이 바로 그 사람의 계절이 되는 것이 체로키의 관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일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에 태어난 고향과 어버지가 한 일,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듣는 것 역시 체로키의 관습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나는 1억 명 중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좋은 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자연에서, 어머니인 모노라에게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산에 온 첫날 밤에 할머니가 노래하신 것처럼

자연 속의 모든 것을 형제자매로 가질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무와 새와 시냇물, 게다가 비와 바람에게까지

아낌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좀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집과 형제들이 있는 셈이었다.

다른 애들은 부모가 죽고 나면 외로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윌로존 부분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이 문장에도 그대로있다.

작은 나무가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나무와 풀 새 등

계속 자연의 사랑을 받은 아이로 인정해주고

그래서 부모님이 안 계셔도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자연을

집과 형제들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체로키족의 정통 생황관 같다.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목사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여서, 천당으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를 자신이 쥐고 있고,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목사들이 신조차도 그 결정에는 참견할 수 없는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목사도 일을 해야 하고 , 1달러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목사라 하더라도 내일이면 돈이 아무 쓸모 없어질 것처럼

돈을 낭비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도 나도 성경에 대해서 무척 무지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나 우리는 천당 가는 그 복잡한 의식절차에 대해서 몹시 혼란스러웠다.

할아버지와 나는 의식절차를 포함하여 그 모든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한 번도 납득이 가는 결혼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교회 다니기 부분

 

얼굴 흰 사람들이 가지고 들어온 기독교와 목사들의 언행등

인디언의 눈에 비친 목사의 모습을 읽을수 있다.

복잡한 의식 절차때문에 천당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나

그렇게 까다롭게 해서 천당에 가야 한다면

그곳도 별로 좋은 곳은 아닌것 같고, 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고 하는 부분까지,

작은나무도 할아버지와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부분이 재밌다.

 

 

 

와인 씨는 나에게 가르쳐준 연필 깍는 방법을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쓰야 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써야 할 때 돈을 쓰면서도 낭비하지 않은 것은 절약하는것이다.

와인 씨는 버릇은 또 다른 버릇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라서,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성격도 나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다음엔 생각을 허술히 낭비하게 되며,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든 걸 낭비하게 된다. 

 

와인 씨는 교육이란 것은 두 개의 줄기를 가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하셨다.

한 줄기는 기술적인 것으로, 자기 직업에서 앞으로 발전해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런 목적이라면 교육이 최신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자신도 찬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줄기는 굳건히 붙들고 바꾸지 않을수록 좋다.

와인 씨는 그것을 가치라고 불렀다. 정직하고, 절약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야 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만일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기술면에서 아무리 최신의 것들을 익혔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 쓸모도 없다.

사실 이런 가치들을 무시한 채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들을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쓴다고 하셨다. 

 

 

삶의 가치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잊지 말아야 하는것들.

정직, 절약, 최선을 다하고, 배려하는 일,

'이런 가치들을 무시한 채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들을 잘못된 일,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쓴다'는 말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갈을 가하는 경구같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위해서 산다고들 하고 그래야 하지만,

그 가치란 것이 이런 기본을 잊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치가 있는것들은 지켜야 할 것이다.

 

 

와인 씨는 항상 뭔가를 잊어버리곤 해서 큰일이라고 한탄하셨다.

사실 그분은 그랬다. 와인씨는 노란 코트 한벌을 바다 건너 사는 증손자에게 주려고 만들었는데.

그 사이에 세월이 흐른 걸 그만 깜박 잊고 증손자가 어렸을 때의 몸집에 맞추었다고 하셨다.

만들고 나서야 와인 씨는 완전히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 옷을 입을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와인 씨는 다른 사람이 쓸 수도 있는 물건을 버리는 건 죄악이다.

이제 자신은 늙어서 더 이상 죄를 짓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어찌나 걱정이 되는지 잠도 잘 못 자고 있다.

만일 그 옷을 입어주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은 완전히 쓰러지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 잠시 동안 그 문제를 연구했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와인 씨의 모습을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그분에게 그 옷을 내가 입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번쩍 고개를 든 와인씨의 수염 가득한 얼굴에는 기쁜 웃음이 번져갔다.

그분은,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하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정말 자신은 건망증이 심하다고 하셨다. 그분은 정말 기분이 좋으신지

일어서서 잠시 지그춤(움직임이 빠른 3박자의 춤 )까지 추시며,

내 덕분에 죄를 완전히 벗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셨다.

내가 그분을 그렇게 크게 도와 드린 것이다.

 

그날밤, 침대에 누워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설사 와인 씨를 위해서 해준 일이라고 해도 노란 코트를 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개 통로를 지난 뒤,

거실문을 가만히 밀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와인 씨는 자리 위에 무픞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이고 계셨다. 기도를 하시는 것 같았다.

 

와인 씨는 자신에게 큰 기쁨을 안겨준 작은 소년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소년이 바다 건에에 사는 증손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은 부엌 식탁에 초를 켜놓고 계셨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엇다.

남이 기도할때는 소리내면 안 된다고 할머니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와인 씨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등잔이 있는데 왜 촛불을 켰느냐고 물었다.

와인 씨는, 자신의 가족들은 모두 넓은 바다 건너에 살고 있어서

그들과 함게 있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밖에 없다.

이렇게 촛불을 켤때면 서로의 생각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과연 그럴 것 같았다.

와인 씨 부분

 

한아이가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할려면 주변에 30명 정도의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와인'씨가 작은나무에게 주기위해서 노란코트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증손자에게 줄 옷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와인씨가 이 옷을 입어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자신은 완전히  쓰러지고 말지도

모른다고 하는 부분을 읽다보면 쿡쿡 웃음이 난다.

 

작은나무가 내가 반드시 입어야 할 것 같다는, 와인씨가 더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시절에 이런 자양분을 먹고 자란 저자였으니

이렇게 멋진 책을 발간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

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

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큰 개자리에 속하는 별로 일명 시리우스라고도 한다. 겨울 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항성이다)알지?

저녁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 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

나는 잊지 않겠노라고 했다. 늑대별은 와인 씨의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검은 양복에 나처럼 구두를 신고 계셨다.

우리 두 사람은 터벅거리고 걸으며 골짜기길을 내려갔다.

낮게 드리운 소나무 가지들이 자꾸 내 팔을 붙잡았다.

참나무가 가지 끝 손가락들을 뻗어서 내 어깨에서 삼베 자루를 벗겨내려 했다.

또 어린 감나무들은 내 발을 휘감았다.

시냇물도 점점 더 세게 달리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요란한 물소리를 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우리 머리 바로 위까지 아슬아슬하게 내려와서 몇 번이나 울더니......

다시 높은 나뭇가지에 날아올라 까악거리며 울었다. 모두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지 마, 작은 나무야...... 가지 마......."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때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바람에 나는 할아버지 뒤에서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바람이 불더니 슬픈 소리를 내며 내 노란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 말라가는 찔레나무는 길로 비어져나와 내 발을 붙들었다.

문상 비둘기 한 마리가 길고 외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응답하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나를 위해 우는 게 틀림없다.

산을 내려가다 부분

 

인디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 당시 제도로 작은나무를 고아원으로 보내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 보면 초등학교 의무교육 비슷한 것 같다.

작은나무도 떠나고 싶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방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헤어지면서 늑대별을 보라고 어디에 있던지

할머니도 하늘의 늑대별을 볼거라고..

할아버지와 산을 내려오는 6살박이 작은 나무의 의연한 모습은 꼭 할아버지를 닮았다.

침묵과 절제등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작은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이 모두 자신이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걸 알지만 할아버지를 위해서도

그래야 하는 일같아서  떠나게 된다.

할아버지도 자신이 맡아가지고 있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기회가 될수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보내주신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마음을 엿볼수 있다.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처음 그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별을 보며 떠올릴 일들을

낮 동안에 미리 생각해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 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걸 때달았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추억들을 보내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산꼭대기에 앉아 있다.

햇빛을 받은 얼음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반짝거리고, 할아버니의 목소리가 똑똑히 드린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그러념 나는 그 창가에 서서 이렇게 대답한다.

"네 , 할아버지. 산이 깨어나고 있어요."

 

 

그는 굵다란 막대기로 내등을 내리쳤다.

처음에는 몹시 아팠지만,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내가 발톱을 뽑아야 했을때......

인디언이 고통을 참는 방법을....... 인디언들은 몸의 마음을 잠재우고,

대신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 영혼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몸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육체의 마음뿐이고, 영혼의 마음은 영혼의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를 맞으면서 몸의 마음을 잠재웠다.

짝짝 소리내며 내 등을 후려치던 막대기는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

목사는 다른 막대리를 또 가져왔다. 그는 심하게 헐떡이고 있었다. 

 

1학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고온 사슴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것 같으냐?'는 물음에

엉뚱한 대답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이 발표하는 부분이 있다.

자연이나 동물을 잘 알고 있던 작은 나무는

"수사슴이 암사슴의 엉덩이 위로 뛰어오른 걸 보면 그들이 짝짓기하는 중인게 틀림없다.

게다가 주위의 풀이나 나무 모습들을 보더라도

그때가 사슴들이 짝짓기 하는 철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일로 작은나무는 선생에게 목뒷덜미를 낚아채이어

목사 집무실로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목사에게 흠씬 두들겨 맞게된다.

인디언들이 백인들을 무시하던 시절이었고 작은나무는 고아원에서

학교에서 계속 외톨이로 지내게 된다. 작은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늘의 늑대별을 보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추억하는 것으로 다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작은나무는 점점더 그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진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하늘의 늑대별 보는 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는 일 뿐이다.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문득 눈을 들어 건물 쪽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사무실에서 나와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도 내려놓고 할아버지를 향해 달렸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려, 팔을 벌린 채 무릎을 꿇고 계신 할아버지의 가슴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두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그렇게 껴안고만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큰 모자 그늘 속에 가려진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할아버니는 내가 잘 지내는지 알아보려고 왔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할머니는 같이 오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할아버지가 걱정하실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삼키고 나서 할아버지와 함께 문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거기서 다시 한 번 나를 끌어안으시더니 일어나서 가버리셨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걸으셨다.

나는 잠시 그곳에 서서 할아버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할아버지가 버스정류장을 잘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뒤를 따라 뛰어갔다.

 

나자신도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어쨌든 도와드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고  계셨다. 나는 그 뒤를 따라 내려갔다.

이윽고 길들이 여러 갈래도 갈라지는 곳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그 길 중 하나를 건너 버스정류장 뒤쪽으로 가서 서셨다.

할아버지가 서 계신 곳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나는 길모퉁이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 모습을 보며 서 있었다.

크리스마스 탓인지 정류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류장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드디어 마음을 정한 내가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제가 행선지를 읽어드릴게요."

할아버지는 조금도 놀라신 것 같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그곳으로 건너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정류장 뒤편에 서서 버스안내판을 보았지만,

나로서는 어느 버스가 어디를 간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후 할아버지가 타야 할 버스가 어느 것인지 알려주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그 버스가 있는 곳까지 갔다.

 

버스문은 열려 있었다.

우리는 거리에 잠시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딴 곳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엄마의 장례식때처럼 할아버지의 다리를 꽉 붙들고 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간절한 심정은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셨다.

"할아버지, 나 집에 가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윽고 팔을 뻗어 나를 번쩍 안아올리셨다.

할아버지는 버스의 제일 윗발판에다 나를 내려놓으시더니 당신도 버스에 올라타셨다.

할아버지는 물림쇠가 달린 지갑을 꺼내. "나하고  내 손자의 요금을 내겠소"라고 말씀하셨다.

약간 긴장된 어조였다. 운전사가 할아버지를 흘낏 쳐다보앗지만 웃지는 않았다.

 

우리는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운전사가 한시바삐 문을 닫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의 문이 닫히고 버스는 정류장을 뒤로 한채 출발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안아서 무릎에 앉히셨다.

나는 할아버지 가슴에 머리를 기댔지만 자지는 않았다.

창박을 보니 성애가 끼어 있었다.

버스 뒤편에는 온기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이 상황에서 그런 건 정말이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늑대별 부분..

 

이 문장이 이 책의 백미다.

아무리 읽어봐도 매번 눈물이 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더스틴 호프만의 졸업이라는 영화장면도 생각나고..

무엇보다도 할아버지가 끝까지 작은나무의 생각이 어떤지 기다려 주는 모습은

그 어떤 부모라도 쉽지 않은 섬세하고 심사숙고한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런 의연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작은나무도 영혼이 따듯해지는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이런 놀라운 사랑법을 실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두분의 유산같은 작품이 아닐까.

 호들갑스럽지 않은 큰 사랑,, 산 같고 바다 같은 변함없는 사랑..

그 유산으로 작은나무는 큰 나무로 성장한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교육이란 사랑이란, 그리고 지혜로운  사랑이란.. .

 

 

 

그날밤, 난로 옆에서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늑대별을 보면서 갈수록 불길한 예감이 들어가던 어느 날 저녁 무렵에

불쑥 윌로 존이 찾아왔다. ----

 

고아원에서 할아버지를 보잔다는 거였다.

할아버지가 고아원을 찾아가니 목사는 몹시 짜증스런 얼굴로 자신은

나를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하는 중이라고 말하더란다.

목사 말로는 한 야만인이 이틀 동안이나 자기 뒤를 따라다니더니,

결국에는 사무실까지 뛰어들어와 '작은 나무'는 산에 있는 집으로 가야 된다는 말을 하더라고 한다.

그 야만인은 오직 그 말만을 하고 방을 나갔지만

목사 자신은 야만인이나 이교도와 분쟁을 일으키는 건 딱 질색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할아버니는 사무실에서 나와 나를 만났을 때

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다만 할아버지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어하는지.....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결정하게 만드셨던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고아원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이미 어떻게 하고 싶은 지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다 부분

 

윌로존 덕분에 집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버스입구에서 바지가랑이를

잡기 전까지는 그런 내색을 하나도 하지 않았던 모습까지..

정말로 본받아야할 자녀 교육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감동의 물결이다...

 

 

 

때로는 혹독한 겨울도 필요하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보다 튼튼히 자라게 하는 자연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얼음은 약한 나뭇가지만을 골라서 꺽어버리기 때문에 강한 가지들만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게 된다.

또 겨울은 알차지 못한 도토리와 밤 호두 따위들을 쓸어버려

산속에 더 크고 좋은 열매들이 자랄 기회를 제공해준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것다. 할머니가.

죽음의 노래 부분 

 

할머니가 남긴 유서부분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뒤 할머니도 돌아가신다.

혹독하고 긴긴겨울이 필요하다는 부분, 우리네 삶또한 그런 부분들로 인해

더욱 굳건하고 씩씩하게 성장해 갈 수 있으리라.

겨울은 혹독한것 같지만 지낼만한 것이고

봅날은 멀지 않았으니...

 

내영혼이 따듯했던 날들의 저자 포리스트 카터는

 체로키 인디언혈통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감사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준다거나

또 필요한 것 외에는 대지에서 가져가지 않는다 든지 하는

체로키족의 생활철학을 배워나가게 된다.

 

이 책은 체로키들이 세대를 이어오면서 입에서 임으로 전해 내려온 가르침들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이라고 한다.

소설속의 할아버지는 실존 인물로서 저자의 할아버지 모습과 일치하고 있고

소설속에서 처럼 할아버지는 저자가 열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76년에 출판되었지만 얼마 안 가 절판 되었고

 10년이 지난 1986년 뉴 멕시코대학 출판부에서 복간,

해가 갈수록 판매부수가 즐어나기 시작 결국 1991년에는

무려 17주 동안 <뉴욕 타임즈>베스트 셀러 1,2위에 기록되었다.

 

또 이 책은 같은 해 제 1회 애비상을 획득했는데 전미 서점상 연합회가 설정한

이 상의 선정기준은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초판발행되고 3년뒤 사망했고

사후 10년정도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세간에 알려진 셈이라고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