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or 여행 에세이

명동성당!

구름뜰 2010. 1. 25. 11:11

 

 

 

 

두 마천루 사이로 보이는 후미의 붉은 벽돌건물,,, .

 

 

 

 

두아들의 라식 수술 덕분에 서울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병원대기실(11층)에서 대여섯 시간을 기다리면서 내다본 서울풍경은 육안으로 볼때는

피사체들로 넘쳐날것만 같았는데 렌즈를 들이댈수록 단조롭다는 생각만 들었다. 

저렇게 조밀하게 짜여진 공간이 어찌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수 있는건지..

내  마음이 단조로와서 였을지도 모른다.

 

마천루로 넘쳐나는 서울풍경,, 흐린하늘!

그것들이 경외감 같은 것을 주는듯도 했지만 이내 눈에보이는 것 이상의 내 상상력을 자극하진 못했다.

 

 

그 틈새에서 발견한 붉은 벽돌 건물,, 한번도 가 보진 않았지만 명동성당이란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요새처럼,... 마침 병원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건물 사이에 있어서 줌해 당겨본 풍경!

이 풍경만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지난 가을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을 읽으면서 신앙은 다르지만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서

함게 기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났다. 

'저 곳에 꼭 가보리라' 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 수술로 첫날은 마음에만 담아 두었다.

낯선공간 서울이라는 익숙치 않은 공간속에서 내 상상력을 자극한 곳,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긴 것이다.

 

 

이튿날 이른아침, 혼자서 발길을 옮겨 보았다.

바람도 차고, 손도 시린 서울의 아침날씨 매섭다는 표현이 딱 맞는 날씨였다.

성당입구가  숙소와는 반대편이라 방향만 잡고 한참을 걸어 두어번 물어보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어제보다는 파랗고 맑은 하늘.. 

성전을 향하는 느낌은 신앙심의 유무를 떠나 사람을 한결 정갈하게 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계단 한계단 오를때마다 느껴지는 이런 마음은 몸을 함께 들임으로 마음까지 절로 

그  공간에 동화되어 간다는 느낌이 드는 묘한 기분을 가지게 했다.  

 

 

긴 그림자 드리운 명동대성당의 아침 풍경은 고요한듯 적막한듯,, 몇몇 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처럼 먼곳에서 왔다가 우연히 들른 사람들이리라 아마도,, 

 

대성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높은 천장 웅장미가 넘치고,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성스러운 정적이 정숙이 스며든 공간 같았다.

신도들이 각기 편한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벽에 붙은 성화같은 조각품 앞을 차례로 옮겨가며

기도를 드리는 나이 지긋한 여성의 모습도 보였다. 뒷좌석에서 젊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셔트소리는 감히 엄두도 못낼 고요가 대성당안을 메우고 있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기도를 끝낸 두 연인이 가벼운 입맞춤을 하더니 일어서 나갔다. 

내게 그 모습이 왜 소설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비슷한 풍경을 본 것 같은. 

소설책을 많이 본 탓인지도 모르겠다. ㅎㅎ 

누가 보고 있건 말건과 상관없는 가벼운 입맞춤이었는데 그 자연스런 몸짓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어찌라기 보다는 아름답게 보였다.

신앙을 함께하고 기도를 함께 할 수 있는 연인이 있다는 건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까..

 

 

그들도  나가고.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였을때..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그곳에선 내가 갑자기 성전앞에서 벌겋게  벗겨진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그런 공간에서 와닿는 자기성찰 이전의 이런 감정, 

엇때문에 그런 마음이 먼저 드는지 모르지만 이런 느낌은 무엇일까?

 

신선을 지양하고 찬양하지만, 오염된 나를 먼저 보는 일 같고, 

맑고 순한것을 원하지만 울퉁불퉁 굴곡진 삶에서 순결하지 못한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인정하기 싫어 묻어두고 살기도 하는 것들이 일순 잠깨는 공간,

이런 공간에 오면 내재되었던 그것들이 아귀다툼하듯 내 관념보다 왜 먼저 깨어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이 신앙을 필요로 하는걸까.

얼룩덜룩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맞설수록 수용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일까.

정화되는것 같은 이런느낌. 이런 카타르시스 때문에 신앙이 필요하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런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인이 아닌 내게도 이런 메세지를 주는데 신앙인이라면 그 영적인 감화가 오죽할까. 

마음의 짐을 덜어낼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 그것이 성전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성당을 나서면서 '데쟈뷰'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이 낯선 공간이 왜 낯설지 않은지 분명 처음인데....

언젠가 한번 와 본것 같은 느낌, 본당에서 느껴진 그 것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 저편

내 유년의 공간중 가장 성스러운 공간으로 남아있는 그곳을 떠올리게 했다.

때묻지 않았고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었던 유년의 시간중에서도 유독 성스러웠던 공간..

내게도 그런 공간이 있었다는 걸... 명동성당에 서고서야 불쑥 튀어나왔다. 

대구대교구  남산동에 있는 성모당!

 

집으로 돌아와 성모당 자료를 검색해보니 많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반갑기도 하여라..  (퍼갈수 있도록 해 놓으신 분들의 자료 이용했음을 알립니다.)

내 유년기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공간, 해 질 무렵이나 이른 아침,어느 비오는 날이나 눈쌓인 겨울까지..

인적이 있어도 기도하는 이 뿐이거나 조용히 벤취에 나처럼 앉았다가 가는 이들이 다였기에

인적이 없는 곳처럼 정적인 공간,,  성모당엘 들어서면 지은죄는 딱히 없었어도 내 영혼이 정화된다는

느낌이 어린나이에도 막연히 들었던 곳이다.

성모당 자료를 검색해서 올리며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성모당!

이곳은 중학교 때 이사간 대구 남산동 집에서 5분거리에 있는 곳이다. 

효성여중 정문 맞은편부터 시작되는 붉은 담장길은 100미터 정도 이어진다.

 

 

요 우측 붉은  담장이 끝나는 부분이 성모당 입구다. 왼쪽 건물은 카톨릭재단인 대건중고등학교

건물이었는데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김대건 신부와 관련있는 교명일것이다.

가끔 성모당엘 들르면 남학생들이 창박으로 고함을 지르기도 했던곳이다. 

  

들어서서 곧바로 우측에 안내라는 팻말이 붙은 수위실 같은 곳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인적이 워낙 뜸해 그 근처까지만 가보고 들어가면 안되는 공간인줄 알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어느날,,하교길에 짝궁이 정말 좋은 곳이 있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까지 들고 친구를 따라 나섰는데 자꾸 우리집 쪽으로 가는 걸 보고 혹여 그곳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성역같이 느껴지던 그곳, 이곳 성모당이었다.

 

 

안내실을 들어서면 바로 이런 갈래길이 나온다.

친구랑은 언제나 성모당 방향으로 우회전 해서 올라갔다.

 

 

 

표지판을 우회해서 오르는 이길이 성모당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분들은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저 아래 차가 주차한 쪽이 입구인 셈이다. 백여미터 남짓 걸어서 올라오면 된다.

처음엔 친구랑 발을 들였지만 한 번 길을 터고 나서는 집에서 가까워 혼자서 수시로 드나들었던 곳이다.

 

 

 

작은 언덕을 살풋이 오르면 성모당이 이렇게 한눈에 들어온다.

친구랑 갔을때도 이렇게 녹음방초 우거진 계절이었다. 아마도 1979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

 

 

이사진을 보면서 놀라운 것은 30여년이 지났는데 그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때는 하얀초를 썻는데 촛농이 굵직하게 흘러내리던 모습이

 장관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형상(모양)을 만들어냈던걸 기이하게 여기며 봤었다.

윗쪽 성모상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인상이 왼쪽 좌편에 하나 있다.

줄선사람들에 가려 약간만 보이지만 그 기도상과 성모상이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묘한 분위기를 주는 공간이다.

 

 

성모상을 마주하고 올려다보며 무릎꿇은 여인상은 나무에 가려졌다.

이 성모당 건물은 1917년에 착공 1918년에 완공된 건물이라는 걸 검색으로 알았다. 

시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성모당은 동산의 가장 윗부분에 모셔져있고 그외에는 야외 예배당같은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동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정원형식으로 꾸며져있다.  

잔디가 언제나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가끔 이곳에서 야외 미사가 있었는데 

하얀 머리수건을 쓰고 앉아 예배 드리는 모습은 매우 성스런 모습이었고 장관이었다.

 

요 공간 아래쪽 좌측으로 주교관과 성직자 묘지가 있다. 

무덤이 있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곳이었다. 

 

잔디 밭주변은 돌아가면서 벤취가 있는데 그 벤취에 앉아있으면 참 편안했다.

무언지 모를 평화가 깃드는 느낌이랄까.

 

 

어른이 되고는 거의 찾지 않았다.

젊을적에는 마음이 허전할때나 문득 몸이 먼저 가서 찾았던 공간이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마지막으로 간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생각마저도 가물가물하다.  20년은 넘은것 같다.

올 해 갈곳이 하나 생긴셈이다. 

그때 그 순수한 영혼은 아니지만 그곳에 가면 그때의 그 마음을 다시 찾아볼수 있을까.

혹여 그 마음일까.. 

 

 

 

다시 명동성당으로 돌아왔다.ㅎㅎ

 

 

 

사제관 건물이다.

 

 

혼자찾은 명동성당이 혼자 찾았던 성모당처럼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 번잡한 공간속의 번잡하지 않음처럼, 

낯섬과 익숙함이란 결국 내안에 나를 직면했을 때 느끼게 되는 본질적인 감정이 아닐까. 

사람도 사물도, 사랑도 어쩌면 사람의 모든 감정들이 다......

내가 빌딩숲을 보며 단조롭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상상력까지 가능했던 이 공간처럼, 

그 대상과 조우하는 내가 찾아내는 것에서만 얻어지는 신비로움! 

그래서 모든것은 내안으로 떠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서울나들이가 낯설었지만 낯설지 않은 그곳에서 가장 편안한 나를 조우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시간이었다.

종교가 주는 겻들이 무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일까.

용서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살고 있어서 일까. ...

 

 

명동성당 안내판에는 생전의 그 분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사랑하십시요." 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용서하고 더 많이 이해하십시요."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 하세요". 라는 미소를 보내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나는 행복합니다.

잠이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기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수 있는 귀

사랑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수 있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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