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떠 노래 부르네..
열살무렵 친구들과 나물 캐러 가면 꼭 불렀던 노래가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 있다니.
냉이를 된장소스에 살짝 무친 이 사진을 보면서 절로 흥얼거리며 나온 노래다..
책에서 배워 안 것보다 구전으로 전해져서 먼저 안 이런 노래는 잘 잊혀지지 않는다.
무의식속에 내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나오는 것 같다. 주로 어린시절의 경험들이 그렇다..
고향에서 앞 뒷집으로 살았던 큰집에는 동갑내기 사촌이 있었다.
우리는 봄이 오면 들로 나물캐러 자주 갔었다.
사촌은 어떤 일에서 건 느긋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엄마는 '사촌만 학교가고 나면 동네아이들 다 학교 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할 만큼 굼떴다.
그에 반해 나는 무엇이든지 미리 미리 준비하는 성격이었다.
등교도 먼저 해야 했고 무엇이든 잘하고 싶었고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나물캐러 갈때도 놀러갈때도 언제나 내가 적극적이었다.
가기싫어하는 사촌을 설득해 손잡아 끌고 밖으로 나갈려면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할 만큼 매사에 나 보다는 급한것이 없었다.
그러니 나물을 캐러 가도 내 바구니는 그득하지만
사촌의 바구니는 내 반을 넘을까 말까 했고 나보다 많이 캔 적이 없었다..
들에서 나물을 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둑방처럼 높게만 느껴졌던 그 외길에 들어서면,
종종 들로 일나가시는 마을 어른들을 만났었고 꼭 어린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였었다.
"나물 많이 뜯었니? 함보자?"
대충 이런 관심이었는데... 어린마음에 성적 매기듯 누가 누가 잘했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인줄 알고,
사촌은 부끄러워 했고 나는 내심 의기양양 했었다.
그런 부담때문인지 사촌은 저 편에서 어른이 오면 나물바구니를 뒤춤으로 숨기거나
부풀리기도 하였다. 바구니 속에 나물 캐던 호미나 칼을 묻는것은 기본이었다. ㅎㅎ
생각만 해도 너무 재밌었던 추억들.. 어른들 반응에 안그런척 했지만 촉각이 곤두섰던
그 정겨운 시절,,
태성이 느긋해 느림의 정수를 제대로 누렸던 사촌은 그 여유로운 기저가 성격과 부합,
지금껏 겪어 왔지만 화내거나 흥분하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은 멀리 살아 전화통화만 가능한데 내가 열번 정도 하면 한 두번 할까 말까이고
그것도 용건이 있어야만 한다.
역시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