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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발갱이 들소리 현지발표 공연 2010년

구름뜰 2010. 6. 5. 19:45

 

 

구미에는 <발갱이 들소리>라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제 27호인 농요가 있다.

모내기 철이면 발생지인 지금의 지산동 들녘(발갱이 들)에서 매년 발표공연을 한다.

 

좌측 들소리 보유자인 백남진 옹(87세)이 17살때 배운 소리라고 한다.

선소리를 매기면  뒤어어 일꾼들이 후렴구처럼 받는 형식인데, 

구전으로만 전해진소리라 당연 기록물은 전혀 없었던 농요를 20여 년 전에 살려낸 것이다.

학계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작업이라고 한다.

신세타령에서 시작, 가래질, 망깨소리로 등  <농자천하지 대본>인 농사 일을 13 마당의

우리 가락으로 나뉘어져서 펼쳐진다.

노래를 부르면서 기운을 돋우고 주고 받고 하는 걸 보니 합심하여 한 마음으로 일하게 되고,

도중에 노래때문인지 괴으름을 부리거나 딴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묘한 기운도 함게 서려 있는 듯 했다.

그러니 농요는 생산력 증대는 당연했을 것 같다.

힘든 일도 흥겹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마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안동mbc에서 방송용으로 일련의 과정을 찍는 바람에 현장 가까이 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지산들의 확 트인 벌판에서 우리네 부모님들의 옛 모내기 풍경을 보는 듯한 감회에도 젖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아파트나 비닐하우스 등 건물이 없었다면 더 멋진 풍경이 될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조선시대 우리 농민의 모습이었을, 아니 새마을 운동과 함께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농사를 전부로 알고 애썼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모습으로

손색없는 그런 공연이었다. 

 

구미의 자랑거리 <발갱이 들소리> 오늘 공연 사진을 올립니다.

블로그 손님들 중에 모내기  해 보셨다면 추억이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경스러울 수도 있을듯

무형문화재이고 농요(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정상,, 화면만으로도 즐감하시길... 

 

 

경지정리야 되었지만 옛 터 그곳(발갱이 들)에 야외무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주변에 샛강도 있고, 연밭도 있어 풍광은 예전보다 더 좋아진 셈이다. 

공연 시작은개래질 소리로 시작 되었다.

가래질은 주로 보를 만들때나 홍수로 터진 둑을 쌓아 올릴 때 부른다고 한다. 

 

 

 

 

목도소리 부분이다. 못둑, 밭둑, 보둑 혹은 산소 등에 석물을 운반할 때에 부르는 소리이며,

무거운 통나무나 돌따위를 끈으로 매달아 나무를 가로질러 종대로 매고가며 부른다.

 

 

 

모내기 하러 가기 전에 야외무대에서 쌓인 보릿단이다.

잠시후 이것들을 그러니까 보리타작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마도 이모작에서 보리수확이 끝나고 나서 그 논에 모내기를 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도리깨질은 콩, 보리타작을 하면서 힘을 더하기 위하여 선소리 후소리로 짧은 사설로 이루어지는 소리다.

이런 모습도 어릴적 우리집 마당이나  친구집 마당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도리깨질도 명번 해본 적이 있다..

저것이 처음에 할때는 마음대로 돌아주질 않은다. 농기구가 사람을 알아본다고 할가.

몇번 하고 나면 저절로 원리를 알게되는 처음엔 영 뻣뻣한 것이 나긋나긋 해진다 할가.. ㅎㅎ

 

 

야외무대에서 시연을 하고 직접 모내기를 하러 들로 나가는 길인 셈이다.

농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실재로 완벽 재현인 셈이다. 공연이 곧 실상이 된 셈이다.

직접 오늘을 위해서 전수회 회원들이 못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

 

 

모를쩌서  1단씩 멀리 논바닥으로 보기좋게 야구공 던지듯 힘껏 던지는 모습을 얼마나 오랫만에 보는지

예전 우리 어른들이 던지던 모습을 많이 봐 왔었기에 더 정겹게 보였다..

 

 

 모를찌고 논을 메고.. 선소리 농요는 계속 된다.

 

 

부모님이 농사일 하는 것을 중학교 적까지 보면서 커온 터라 정겨운 모습들이 많았다.

모내기 철이면 어둑어둑 해거름이 되어야 집으로 올만큼 부모님이 바빴던 기억.

직접 모내기를 도와드린적은 없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였던 것 같다.

전교생이 오후 수업을 하지 않고, 학교옆 면소재지 논으로 모내기를 간 기억이 한 번 있다.

그때  모내기 한 경험이 있는데 그 부드럽고 물컹한  논 바닥의 느낌..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가끔 들에서 모내기 하는 부모님께 갔던 적은 있는데 

발목이나 종아리에 살진 거머리가 붙어 있어도 모르고 일하던 모습,

그 아귀같은 것이 피를 빨아먹고 남은 흔적, 그 붉은 핏빛도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그 색이 주는 느낌은 무어라 할까. 저렇게 되도록 어찌 모르실까 뭐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농번기에는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엄마는 늦은 저녁 밥상에서 누구네는 일이 다 끝나가지만 누구네는 시작도 못했다는 얘기,

특히 큰집 걱정을 이맘때면 항상 했던 기억이 있다. 

일이 굼뜬 큰엄마 큰아버지 논이 가장 늦다는 것과,

먼산 밑 논이라 품앗이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며,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했던 부모님의 대화는 동네 소식을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대화를 듣다 보면 동네소식 웬만한건 안봐도 비디오고 오디오였다. 

 

한번도 큰 엄마가 모내기 하는걸 본 적 없지만

기억속 큰엄마가 좀 굼뜨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걸 보면,

어른들이 하는 말이 아이 생애를 두고 관념화 시키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모심기 소리는 모판에서쩌낸 모를 논에 옮겨 심으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모심기소리는 논농사의 과정 중 가장 흔하게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어르신의 구성진 가락이 발갱이 들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논매기 소리부분이다. 논 가장자리부터 차츰 한가운데를 향하여 원형으로 모여들면서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논 가운데 어울려 선소리를 하면 후창을 받아서 메나리 소리를 한다.

 

 

 

새참을 들고 오는 아낙의 모습이 보인다.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일끝나고 선 퇴장하는 소.. 직접 농사일을 하는 소라서 그런지 너무도 잘 재현해 냈다.

내년에는 3마리쯤 해서 더 많이 데려올 참이라고 한다.

 

 

세벌 논매기를 마치고 상머슴을 깽이말(걸채)에 태우고 흥겹게 마을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소리다.

소 등에 거꾸로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칭칭나네를 부르는 데, 선 후창을 주고 받으며

시작하다가 흥이 날때에는 가면서 빨라지는 소리라고 한다.

겨운 치나칭칭이 소리를 부르며서 일끝내고 행진하는 모습이다.

 

 

 

 

 

 

 

 

 

 

 

보유자인 백남진 옹이시다.

백남진 옹의 기억속에만 있던 소리였던 것을, 무형을 유형으로 제대로 살려낸 셈이다. 

정신이란 뜻이란 이렇게 놀랍다. 무형이 있어야 유형이 빛난다.

신명이 얼마나 많으신지 무대 공연물(어린아이를 봐도 좋아하셨고, 민요하는 아줌마들, 춤추는 학생들,)이 

오르면 무대 앞마당으로 나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시기를 몇 번이나 하셨다.

 

할머니 말씀이 원래 신명이 많다고..

발갱이 들소리의 산증인 이시니, 건강하신 것으로도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할머니께 할아버지가 구미 문화재의 보물이시라고 꼭 전해달라고 하고 돌아왔다.

 

 

 

잠깐 한 컷을 부탁했는데 이런 금슬좋은 포즈까지

주문하지 않았는데 하나 둘 셋 했더니 바로 나오는 포즈,,생활화된 포즈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멋진 노년을 보내고 계신듯 했다. 얼마나 보기 좋은지 할머니는 81세 이시다.

건강하게 이런 모습 오래도록 간직하시며 사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