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사랑굿 . 1, 2 김초혜(金初蕙)詩集

구름뜰 2010. 10. 1. 10:17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火焰)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사랑굿 1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 시집은 나온지가 25년은 족히 된 시집이다.

사랑굿 1에서 108까지 연작시로 지어진 시가 두 권에 묶여져 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은 이야기들.

언제적 이었는지 이런 마음을 만나고 이런 감성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너무 아득한 것 같기도 한 것들..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찾고 싶을 때

위로 받고 싶을 때 종종 옛날 시집을 들춰 보게 된다.

 

시집속에 그 시절 심상처럼 접혀져 있거나  밑줄 그어진 시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읽으면 같은 마음이 된다.

그리고 읽다 보면 다시 접게 되는 시들도 있다..

누렇게 바랜 책갈피를 넘기면서

시간은 참 야속하게도 많이 흘렀다는 생각을 하는 아침이다.

 

 

 

가장 큰 모습은

형태가 없듯

보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참 많이 어디에나

있는 그대

발돋움은

오래 서지 못하는

비뚠 길인데

생각만으로도

바로 서지 못하는

내가

떠 있는 곳은 어딘가.

- 사랑굿 17

 

 

피어서는 안될 꽃이

피는 것은 눈물이오

그대 의해

피워지는 꽃이라면 갈증이오

 

모순을 증거할 수 없어

병들고 잠들다가

내가 나를 견뎌내

이제야 그대가 보이오

 

목마른 내게

불만 주는데도

모순은 반짝임처럼

사랑이 되오

 

땅은 땅밖에 모르듯이

다른 형상의 모습 말고

그대 내 시가 되어

남아 있어야 하오.

-사랑굿 19

 

 

너와 내가 합쳐져

하나의 별이 되자

아무도 못 보게

억만 광년 빛으로

반짝거림이 되자

 

입이 메어지도록

고통이 들어 차도

변덕부림 없이

나뉘인 육신을

서로 잡아 주자

 

제일로 가까운

첫번째의 별에

집을 짓고 맹목을 심어

태양도 여기에선

휘어지게 하자

 

아무 것도 못 아는

무재주를 사랑하며

차 있으나

넘쳐 흐르지 않은

순한 불이 되자.

-사랑굿 25

 

 

이제 마음을 얘기하지 않으리

사랑으로 사랑을 벗어나고

미움으로 미움을 벗어나리

죽어 묻히는 날까지

그대 떠난다 해도

마음 속에 살게 하리

끝없는 연료되어

재까지 태우며

던졌던 생명을 거두어

천천히 빛나게 하리

갈망하지 않고 꿈꾸면서

혼자서 가져 보는 그대

고운 병 만들어 앓으며

짓궂은 그대 허위

벗기지 않으리

-사랑굿 32

 

 

나만 흐르고

너는 흐르지 않아도

나는 흘러서

네가 있는 곳으로 간다.

 

흐르다 만나지는

아무 데서나

빛을 키워 되얻는

너의 모습

 

생각이 어지러우면

너를 놓아 버리고

생각이 자면

네게 가까이 가

몇 개의 바다를

가슴에 포갠다.

-사랑굿 33

 

 

그대 어디로 가는가

어둠에서도 빛을 나눌

다사로움 마련했으니

정화(淨化0의 불 속에서

새로 태어납시다.

 

엇갈려 감겨 있는

여러 생각 풀어 버리고

만나면 우리

백치가 됩시다.

 

눈물은 물리고

탈 바꾸어

아무 데서나

서로 향해 오는

등불이 됩시다.

 

속된 일에

고달프지 말고

많이씩 우둔하면서

세속 밖의 꿈을 꿉시다.

-사랑굿 38

 

 

 

물이어라

 

이룬 것 없는듯

이루는

 

너를 잠기게 할 수 있고

네 속에 들 수 있는

 

죽어도 딴 마음

가질 줄 모르는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머물게 하는

 

나를 잃지 않으면

너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물이어라.

-사랑굿 40

 

사랑굿 40번은 연작시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시다.

그 시절에도 그러 했고 지금 읽어도 역시 그러하다.

스무살 감성에도 그 지향점이 좋아서

이 시를 편지지에 쓰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굿이 108번까지 있는 것은 백팔번뇌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같고,

초극의 의지를 보이려한 작가의 의도이기도 한 것 같다.

한가지 주제로 이렇게 엄청난 분량의 시를 적는다는 것은

아마도 '사랑'말고는 없을 듯 하다.

 

 

 

하늘에

해가 하나이듯

물 흐르는 도리에

두 가지가 없어라

 

그대로가 하나이어

마음에

두 길을 내지 못하고

짧은 생명에 갇히어

내 영혼은 울어라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채

어지러움을 견디며

세월을 돌려 놓아도

눈먼 돌 속에

아득히 있는 그대

-사랑굿 41

 

 

다르다 하면

하나로 되고

같다고 보면

거리가 없어지는

그대

누구시오

 

가까이 있을 땐

가까와 못 가고

멀리 있을 땐

멀어 못 가

맘 졸이며

그대신가  기다리고

 

잊지도 않고

구하지도 못하며

네 속에 네가 숨어도

내속에 내가 숨어도

감추어지지 않은

사랑이란 말

차마쓰기 어려워

더디게 울어 보내오.

-사랑굿 48

 

 

잊었노라 함은

잊히지 않았다는 것이고

벗어 났다 함은

결박을 말하는 것이리

 

바람의 발은 붙들어도

그대 붙들 수 없어

무너져도

못 무너지는 마음

어찌해

애닯지 아니하리

 

미혹이 진실인 줄 알아

한 생각 잘못하면

모든 것 떠나가리

뿌리를 파내어

서로를 버리는 일

마땅히 없이 하리.

-사랑굿 57

 

 

내 수치를

아는 것도

 

나를 피하려

비켜서는 것도

 

나를 조금도

숨길 수 없는 것도

 

내 의지의 문을

부수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것도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는 것도

 

한 덩이 무덤인

나입니다.

 

최초로

그늘 속에 햇빛으로

서신 이

그것만 당신입니다.

사랑굿 68

 

 

화염(火焰)의

옷을

벗을 수도

벗길 수도 없어

태워지면서

형극(刑棘)의

길로 든다

살들이

타고 남은 재

영혼을

맑게 하고

그대만이

벗길 수 있는

이 옷은

타지도

낡지도 않고

나를 태운다.

-사랑굿 93

 

 

봄이 올 때는

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겨울이 오면

겨울로

데려다 놓는

그대

 

땅을 벗어나

살 수 없듯

그대 눈에

하늘을

두르고 있는 한

 

해가 지지 않아도

해가 뜨지 않아도

그대는

나의

고요한 중심

-사랑굿 96 

 

 

더러는

지나치고

못 미치기도 하나

천성이

그런 것은

아니었음에

심지 속에

그대 지니고

새로이 머물고 싶어라

 

깊고도 머언

소중한 이여

그대에게서 비롯하여

그대에서 마치는

아픔일진대

그대

물로 흘러가

돌아오지 않아도

구석구석 어디나

그대 곁이네.

-사랑굿 100

 

 

나를

고집하여

생긴

병입니다

 

그림자만 걷는

이 길은

멀어

끝없는 길입니다.

 

뜻하는 길로

가지지도 않고

가로질러

갈 수 없는

 

얼굴이

자신에게

안 보이는

길입니다.

-사랑굿 108

 

시는 강렬한 정서의 치명적 드러남이라고 워즈워드는 말했으며.

릴케는 시는 체험이라고 말했다.

시는 허구지만 허구가 주는 진정성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 묘한 장르다.

그러니 시를 쓰는 일은 노출증 환자 보다 더 완벽한 드러냄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출증 환자와 다른것이 있다면

 그것을 볼 줄 아는 독자와  볼 줄 모르는 독자만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침밥 먹다가 생각 난 시집, 사랑굿 때문에 오늘 아침 일은

 제쳐두고 잠시 오래전 그 시절로 되돌아 가 보았습니다.

접혀져 있던 시들과 오늘 새로 접게 된 시들을 올려 봅니다.

'굿'이라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는 현실 초극의 의지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잘 접목된 ,,

제목을 참 잘 붙인 시집이고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