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능수버들 - 원용수

구름뜰 2011. 3. 6. 18:45

 

 

 

 우편함에서 종종 모르는 분들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문인협회에 등록된지가 오래되었고 서울쪽이라

대구에서의 동아리 모임이나 활동은 거의 없었음에도

어떻게들 아시고 책을 내시는 분들이 친필 사인을 하여 보내주시는 책들이다.

 

<능수버들> 수필집은 대구에 사시는 원용수님의 책이다.

한번 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뵌 것 같기도 하고...

 책을 받고 가물 가물했다..

한 권을 읽고보니 아니 만났어도 두어번 아니 서너번은

자리를 한 분 처럼 느껴진다.

글의 힘일 것이다.

 

읽다가 공감가는 작품들이 있어서 수필 두편 올려봅니다.

즐감하세요.

 

 

지난 겨울에 막내가 누렁 고양이 한 마리를 가져왔다.

아내는 털이 날린다며 못 기르게 하였다. 고양이 집을 밖에 두기로 하고 허락하였다.

 

우리 가족은 새끼 고양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고기도 주고, 고깃국에 밥을 말아 먹이기도 하였다.

어느 정도 자란 다음부터는 고양이 전용 사료를 먹였다.

아침에는 막내가 사료를 주고 낮과 저녁에는 아내가 주었다.

고양이는 먹이 주는 사람만 잘 따르는 것 같았다.

가끔 귀여운 놈을 한 번 안아주려고 가까이 가면 마당으로 도망쳐 버렸다.

따라 다니다가 어렵사리 붙잡아 안고 다독거려도 이내 내 곁을 떠났다

그래도 사람이 없어 끼니를 굶을 형편이 되면 나에게 와서 먹이를 달라고 칭얼거렸다.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막내다.

저녁 늦게 들어 와도 그 녀석과 놀아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잔디밭에서 운동을 하며 고양이와 장난을 친다.

휴일에는 목욕을 시키고, 자기 방에 데리고 들어가 물기를 말린 다음 밖으로 내보낸다.

이런 지극 정성을 그놈도 아는것 같다. 막내가 화장실에 가면 그 앞에 앉아서 나올때까지 기다린다.

 

겨울에는 고양이가 추울까봐 보일러실에 두었는데,

보일러실 가까이 있는 화장실에 사람 소리가 나면 방에 들어오려고 울어댔다.

그러면 막내는 우리 몰래 고양이를 방에 데려다 재웠다.

아내는 대소변 가리는 훈련도 안 시키고 방에 재우면 이부자리를 망친다고 성화지만

고양이와 정이 든 아들은 어머니의 걱정은 귓전으로 흘리며 고양이에게 정을 쏟았다.

나이 서른을 넘긴 녀석이 장가갈 생각은 안 하고 하찮은 짐승에게 사랑을 주는것 같아 걱정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사랑을 줄 수 없다면 정서적으로 얼마나 메마르겠나.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애완동물이라도 있는 게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는 막내가 다 컸다고 정을 주지 않았더니 고양이와 정을 내고 있다.

 

초여름 어느 날, 고양이가 갑자기 새끼를 한 마리 낳았다.

아내가 아무래도 새끼를 가진 것 같다고 말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며칠 동안 새끼를 돌보느라 방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하더니,

새끼가 접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문을 열어 달라고 보챘다.

자기 새끼에게 사랑을 주어야 할 녀석이 막내와 사랑을 받으려고 아침마다 찾아들었다.

 

고양이가 방에서 어쩌는가 보았더니 침대 위에 앉아서 막내를 처다보기만 한다.

막내는 잠결에 가끔 쓰다듬어  줄 뿐이다. 그 손길이 사랑이었다.

고양이는 사랑이 그리워 막내 곁에 오고 싶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 광경을 보고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새끼에게 사랑을 주어야 할 어미가 사랑 받겠다고 문을 열어 달라 애원하니. 그 사랑이 뭔고!"

"당신은 청상이 임의 품을 그리며 잠 못 이루는 독수공방을 상상해 보았어요.

그 녀석이 밤새 사람을 그리워하며 참다가,

날이 새어 사람이 일어났을 시각에 찾아온 게 뭐 그리 잘못이란 말이오!"

나는 고양이가 기특하여 편을 들어주었다.

 

고양이가 사람을 찾는 것은 이성이 그리워서는 아니다.

자기를 아끼고 보살펴주는 사람의 정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 같다.

낮에도 몰래 마루에 들어와서 막내 방을 기웃거리다가 나간다.

밤이 되면 가서 밖을 내려다보며 기다린다. 막내가 와서 휘파람으로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간다.

 

나는 고양이를 관찰하면서 그놈의 사랑법이 묘하다는 걸 발견했다.

고양이 암컷은 짝을 찾아 밖으로 나다니지 않은다. 수놈이 찾아온다.

수놈이 와도 배란기만 교접을 한다.

성을 쾌락의 도구나 생의 활력소로 여기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오로지 종족을 번식시킬 목적으로 육체적인 접촉을 한다.

자기들끼리는 필요할 때만 만나고 고상한 정은 사람과 나눈다.

영물인 고양이에게 그런 사랑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가 막내와 나누는 사랑은 플라토닉러브인지 모를 일이다.

고양이 사랑법에 우리 인간이 본받을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가씨를 사귀어 장가를 가야할 녀석이 고양이와 사랑을 나누다가 혼기를 놓칠까 걱정이다.

--막내와 고양이

 

 

고양이가 방에서 어쩌는가 보았더니

침대 위에 앉아서 막내를 쳐다보기만 한다.

막내는 잠결에 가끔 쓰다듬어  줄 뿐이다.

그 손길이 사랑이었다.

언어소통은 불가능하지만

더 육감적이라고 할만큼 애완동물들은 눈치가 구단이다.

맹목적이고 하나만 알고 둘은 생각할 줄도 모르는

그것이 넘치든 모자라든 그렇게 자기들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사람과는 고상한 정을

나눈다는 고양이,,

사람들끼리의 고상한 정은 어떤 것일까.

정(情)의 반대말이 무정(無情)이던가.

마음이 가는 것이 정이고 마음이 가지 않은 것이 무정이니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음이 가는 것을

다 고상한 것으로 봐도 되는 것일까.ㅎㅎ

 

고상함의 반대말은 평범함이던가.. .

평범하지 않음이 다 고상함을 의미하진 않을 터인데..

고상한 정이든 고상한 사랑이든 사람과 동물사이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이 흐르는 것은 좋은 징조다.

장가못간 총각에게 처럼..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처마 네 귀에 나무로 깍아 만든 나부상(裸婦像)이 앉아있다.

그 상은 비너스처럼 아름다운 자태가 아니고, 얼굴은 남상에 가까운 여인이다.

알몸으로 쪼그리고 앉아서 지붕을 이고 있다.

네 개의 나상 중 두 개는 두 팔로, 나머지 둘은 한 팔로 추녀를 떠받치고 있다.

상들이 추녀 밑 조그만 판자에 앉아 있으나 공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여인은 사하촌 주막의 주모였는데.

고향을 떠나와서 전등사 짓던 도편수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단다.

두 사람은 불사가 끝나면 집을 지어 살림을 차리기로 하였다.

남자는 그 약조를 지키려고 돈이 생길 때마다 그녀에게 주었다.

공사가 끝날 무렵에 남자가 주막으로 갔더니 그녀는 야반도주하고 없었다.

 

배신당한 도편수는 화가 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을 다잡아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나부상을 만들어 두었다.

 

그는 도망간 주모에게 무거운 불사를 이고 억겁(億劫)의 고통을 당하는 벌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찰 안내판에도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원숭이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용덕(勇德)의 자세라고 하나,

상이 원숭이와는 달라 사찰 안내판의 설명이 맞는 것 같다.

동행한 일행 중에 불교 신자들은 도편수가 그녀에게 죄를 씻을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의 소중한 치부를 드러내 놓은 것으로 보아 용서해 줄 뜻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아는 친구가 퇴직 후에 이와 같은 일을 당하였다.

그는 교육계에 있다가 갑년에 명퇴하였다.

퇴직할 무렵에는 부부가 고급 맨션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자놀이가 쏠쏠하다고 퇴직금을 일시불로 탔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운명하였다. 아들 형제는 분가시키고 부부만 재미나게 살려던 꿈이 깨어졌다.

정이 많던 그는 혼자 살 수 없다면서 연하의 여인과 재혼하였다.

 

보통 늙바탕에 재혼하면 자녀들 모르게 현금을 주거나 집을 한 채 사주고 남자 돈으로 생활한다.

그는 신의를 독톡히 하려고 혼인신고까지 하였다.

새로 맞이한 부인에게 미장원을 차려주고, 아파트를 저당 잡혀 융자까지 내어 주었다.

전처에게 잘못해 준 것을 반성하며 부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부부간이면 남자가 차려둔 미장원의 수입으로 생활해도 되는데, 생활비는 남자가 대었다.

그렇게 5년쯤 살다 부인이 친정에 다녀온다면서 집을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이 돌아오지 않는 게 수상하여 부인의 사업장으로 가보았더니

미장원은 주인이 바뀐 지 한참 되어 있었다.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다.

살 집이 없어졌다. 말 그대로 몸 둘 곳이 없는 알거지 신세였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모시려고 하였으나 어디론다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어느 촌락의 빈 집에 숨어들었을 것 같다.

인생 말로에 달콤한 사랑에 빠졌던 자신을 반성하는 눈물을 머금고

 '망처(亡妻)에 망신살(亡身煞)이 뻗쳤다'고 신세타령을 할 것이다.

그를 만나 위로주(慰勞酒)를 사고 싶다.

 

그녀들이 왜 도망갔을까. 

그 사연이야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니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업다.

숨겨둔 가족을 돌보려 갔는지, 재물에 욕심이 앞섰는지,

지금 살고 있는 남자보다 나은 남자를 따라 갔는지 모를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그 속내를 어찌 알 수 있었으랴..

 

사랑에는 신뢰가 첫째 요건이다.

도편수와 내 친구는 신뢰를 얻으려고 물량공세를 취하였다.

사랑은 남녀가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면서 가꾸어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사랑을 표시할 줄 몰랐는데 그들은 돈으로 사랑 탑을 쌓은 것 같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수시로 사랑을 확인해 보지 않은 것이다. 

 

여인들이 도망을 가고 난 다음 도편수는 실형은 아니더라도 주모에게 벌을 주었다.

자기 죄는 덮어두고 상대의 잘못만 응징하였다. 하지만 내 친구는 벌을 주고 싶어도 참았다.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스쳐가는 운으로 넘겼다.

찾아가서 따지거나 법률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을 섞으며 살던 사람에게 벌을 줄 수 없다는 선생님다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인간성 좋은 사람이 살기 때문인지 모른다.

 

절을 나오려는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나부상이 측은해 보였다.

--전등사 나부상

 

 

 

 

 책을 받을 때마다

어느 산골로 들어가 이름없는 여인이 되는 사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활동하시오'라고 채근하는 듯한 메세지를 받는다.

또 연말 동인지 편찬을 앞두고 일괄 원고 청탁 서한을 받을

때도 이런 기분이 된다.

한번 맺은 인연을 아직도 이어주는 협회덕분에 나 같은

게으름뱅이 회원은 한 일도

없이 책을 통해 좋은 향기를

맡게된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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