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가 지난 6일 영문판으로
15일은 영국판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 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화제다.
2008년 나왔고, 그 때도 잠시 뜨거웠던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존 닷컴 챠트 19위까지인가 올랐다는 얘기를 지난주에 접했고,
지금 신경숙 작가는 미국을 비롯 캐나다까지 북(book)투어 일정으로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지난주에 접했다.
한국판 김치냄새나는 크리넥스적 소설이라고 혹평한 미국의 모대학 교수가 했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작품이 해외로 진출하는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음은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삼년만에 다시 읽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병이 뭔지는 모르지만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내색않는 엄마와
그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묵인하며 사는 남편, 그리고 큰딸, 큰아들의 이야기가
엄마를 잃어버린 뒤 즉 엄마 부재상황에서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시간들과 자신을 되짚어 보는 형식이다.
화자가 1장에서 4장까지,
큰딸, 큰아들, 남편 그리고 영혼이 된 엄마까지 각각의 입장에서 진술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큰딸의 진술이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형식으로 끝 맺는다.
1장 아무도 모른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 째다.
--
지금까지의 습성, 오빠니까 오빠가 어떻게 해봐라!고
늘 미루는 마음이던 습성이 이런 상황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의 가족들은 큰오빠 집에 아버지를 두고 서둘러 헤어졌다.
헤어지지 않으면 또 싸우게 될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줄곧 그래왔다.
엄마의 실종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상의하러 모였다가 너의 가족들은 예기치 않게
지난날 서로가 엄마에게 잘못한 행동들을 들춰내었다
순간순간 모면하듯 봉합해 온 일들이 툭툭 불거지고 결국은 소리를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너는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얘길 처음 듣자마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식구들
중에서 서울역에 마중나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고 성질을 부렸다
-그러는 너는?
나? 너는 입을 다물었다. 너는 엄마를 잃어버린 것조차 나흘 후에나 알았으니까.
너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엄마를 잃어버린 책임을 물으며 스스로들 상처를 입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음흉한 것이 엄마의 머리를 찍어내리고 있지 않음에야
지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너의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엄마
누가 엄마를 거기 헛간에 내버리고 간 듯 너의 의식에 분한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인간이란 그렇게 이기적이다.
그 순간 너의 엄마를 헛간에 버린 사람이 따로 있기라도 한 듯 노여움을 느끼며 분개했으니 말이다
너의 엄마를 헛간에 혼자 둔 건 다음아닌 너이기도 한데.
-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마주치는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1장 아무도 모른다 중에서
1장, 화자가 큰딸인 자신을 '너'라고
지칭한(아무래도 신경숙작가의 자전적 느낌이 드는)진술이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남은 자식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였지만,
서로 지난날 잘못한 부분들만 들춰내는,,
이럴때 가족은 형제는 너무 잘 알아서 상처주는 관계다.
대소사를 두고 대체로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모면하듯 이해해주길 바라고 넘어가버린 것들이
이런 상황에서 앙금으로 남아 있음을 직면하게 되고,
그 툭툭 불거저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서로서로 용량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기 한계인지를 규정해두지 않아도
저절로 규정되어지는 시점을 맞는 기분이랄까.
누구나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되는 것 같다.
그리보면 부모자식간도 형제간도
철저하게 역지사지 해야 하는 관계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상대에게 바라는 것은 이기심이다.
가족이니까 하는 무관심이나 방관은 철저한 이기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울수록 더 조심하고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2장 미안하다, 형철아
그의 집이나 동생들의 집 말고 이 도시에서 엄마가 갈 만한 곳은 없다.
그와 가족들에겐 그것이 고통이었다.
엄마가 찾아갈 만한 곳이 있으면 거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뒤져볼 텐데.
갈 만한 곳이 없으니 이 도시 전체에서 엄마를 찾아봐야 했다.
여동생이 엄마가 왜 거길갔겠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여자가 말한 용산2가동 동사무소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처음 근무한 일터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벌써 삼심년 전의 일이니까.
--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대체로 엄마를 잊고 지냈다.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낯선 지하철역에
홀로 남겨진 그 시각에 나는 뭘 했는가?
그는 동사무소를 한번 더 올려다보고 뒤돌아섰다.
-미안하다, 형철아 중에서
화자가 큰아들이다.
검사가 꿈인 큰아들에게 큰딸을 맞겨둔 이후로
엄마는 항상 큰아들에게 미안해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의 꿈이고 희망이었던 엄마가 항상 미안해했던 대상.
다른 동생들 다 논 밭으로 일 나가도
큰 아들 형철이만은 책상에 앉혀두었던
엄마에게는 장땡이었던 큰아들 형철!
젊은 날의 엄마는 그로 하여금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결의를 품게 하는 존재였다고 진술하지만.
화자의 진술처럼, 그는 언제부턴가 그렇게 엄마를 잊고 지냈다.
내가 힘들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3장 나 왔네.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나 왔네."
아내를 잃고 시골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혼자서 하는 독백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고, "나 왔네." 라고 하면 반겨주던
메아리 없는 아내의 부재를 확인하는 말이다.
그때는 왜 그것이 평화롭고 복된 일이란 걸 몰랐을까.
아내한데 미역국 한번 끓여줘본 적 없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모든 것은ㅡ 어찌 그리 당연하게 받기만 했을까.
-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넘의 손에 살어서 당신이 헐 줄 아는 게 머 있소이?
안 봐도 뻔하요이, 말수도 없는 늙은이가 방 차지하고 냄새 풍기고 있으믄 누가 좋아하겠나.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데 아무 쓸모 없는 짐덩이요.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허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믄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요.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 거기까지는 내가 할 것이니께는."
그날, 서울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에서 당신이 뭔가를 때닫는 데는 몇분이나 걸렸을까.
지하철은 떠나는데 아내가 타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채는 데 흐른 시간들.
당신은 당연히 아내가 당신을 뒤따라 지하철을 탔을 것이라고 여겼다.
지하철이 남영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어떤 충격이 당신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충격을 확인해보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잘못을 저질럿다는 절망이 당신의
뇌를 후리치고 지나갔다.
당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그 순간 당신 귀에 들릴 만큼 커졌다.
당신은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
당신은 당신의 일생이 심하게 손상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앞서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거리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나서라도 바로 뒤를 돌아 확인했더라면 이리되지 않았을까.
젊은날부터 아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
어딘가 함께 갈 때면 항상 걸음이 늦어 뒤처지곤 하던 아내는
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당신을 뒤따르며
좀 천천히 가면 좋겠네. 함께 가면 좋겠네.,......
무슨 급한 일 있고? 뒤에서 구시렁 대었다.
마지못해 기다려주면 아내는 민망한지 웃으며 내 걸음이 너무 늦지라오? 했다.
당신은 아내가 마치 이리될 것을 알고나 한 소리처럼 여겨졌다.
스무살에 만나 오십년이 흘러 이 나이가 되는 동안 아내로부터가장 많이
들은 게 좀 천천히 가자는 말이었다.
평생을 아내로부터 천천히 좀 가자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찌 그리 천천히 가주지 않았을까.
저 앞에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일은 있었어도 아내가 원한 것,
서로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걷는 것을 당신은 아내와 함께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를 잃고 나서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지 듯했다.
-
당신은 아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던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 마음이 아내가 깊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것도,
빠깥일을 보고 돌아오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아내가
사실은 눈을 뜨기조차 힘들 만큼 머리가 아파 눈을 감고 있는것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이었고 그런 당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아내였다.
어쩌다가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프면 아내는 이마를 짚어보고 배를 쓸어보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녹두죽을 끓이고 하였으나 당신은 약 지어다 먹으라고 하곤 그만이었다.
내가 니 에미를 환자 취급을 안하고는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내 혼자 걸음으로 앞질러 걸었다.
평생 그리 살다보니 기냥 그 버릇이 나온 거여. 일이 이리된 것이여.
자식들을 앞에 두고는 얘기하지 못한 말들이 당신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겠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들을 사람이 없구나.......
--나, 왔네 중에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되면 더 간절해 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걸까.
어리석음 때문일까.
책 도입부 전 한장을 빌어서 이런 문구가 실려 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라스트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을 더 애타게 갈구하는
이 책 엄마를 부탁해가 도입부부터 마지막까지 안고가는 이야기는 그것이다
이미 떠나버린것,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자기 성찰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엄마라는 대상이고, 또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반성하고 싶지 않은데 반성하라고 하는 것 같다면
이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며 도움도 안 될 것이다.
너무 윤리적인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거나 교조적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읽힐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책속 엄마는 우리 부모세대의 모습과 닮아있다.
우리세대. 꿈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위해서 살 줄 도 아는
우리세대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는 우리부모세대보다 더 영악하게 살 줄 알며,
그것이 자식세대들에게도 훨씬 더 유익한 일이라는 것도 인정하는 세태다.
미국의 모 교수가 혹평을 통해서 한국적 정서가 너무 짙어서
눈물만 짜내는 격이라고 했다지만,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어머니의 희생도 아니고,
자식들의 죄의식도 아니고.
간접적으로 나마 독자에게
가족에 관한 부모에 관한 형제에 관한
성찰의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소나무가 울창하구나..
내가 앉기 좋으라고 꼭 그 사람이 옳겨심어놓은 것 같구나.
내가 그 사람 얘기를 꺼내다니.
그래도 나는 너를 만나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갈 것 같어.
그럴 게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서울의 일류대학에 합격해서, 그것도 약대에 합격해서,
네가 디닌 여학교엔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어.
어짜믄 그리 똘돌한 딸내미를 두었느냐고 인사를 받을 때마다
아마도 내 입이 귀밑까지 벙싯거렸을 거여.
너는 모를 게야.
너를 생각하면 엄마로서 버젓한 기분이 들었던 내 마음 말여.
아무리 자식이라도 뭔가 해줘야 할 일을 못해준 자식들에겐 그런 마음 안 들더라.
자식인데도 미안하고, 너는 그런 마음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해준 자식이었재.
-
엄마! 혹시 나를 잃어버리게 되면 왔다갔다 하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 서 있어.
그럼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
왜 그 말이 이제야 생각나는지 모르겠네.
지하철 서울역에서 네 아버지를 따라 열차에 올라타지 못했을 때
그때 떠올렸어야 했는데.
엄마가 새가 되어 둘째 딸 집으로
와서 내려다 보는 장면이다.
당신은 오래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밭 속의 자갈처럼, 흙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즐 속의 거미줄처럼, 젊은날이었네요.
사는 동안 어느 때도 이게 나의 젊은날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것 같은디
당신을 처음 만나던 때를 생각해보니 젊은 내 얼굴이 떠오르네
3년전 이글을 읽었을 때 가장 충격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이다.
다 읽고 덮었을때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그에게 가 있었음을 느꼈다.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내 인생의 동무였네..
그런 사람이
엄마에게도 있었다는 것,
신기했고,
소설이지만 삶은 나만 안고사는 비밀이 존재하며
그것을 부담없이 제시한 부분같아서 좋았다.
영혼의 독백이어서 그랬을까.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내 인생의 동무였네.
-목숨은 때로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두 어떤 목숨은 무서울 만큼 질기요.
큰딸이 그러는데 트랙터로 잡초를 베어내면 말이우,
베어지는 그 순간에도 잡초는 트랙터바퀴에 매달려 번식하려고 씨앗을 흩뿌린다 합디다.
당신의 아이는 무섭게 젖을 빨았고.
어찌나 세차게 빨던지 내가 딸려들어갈 것 같아 아직 태열이 가시지 않아 붉은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기까지 했소이.
--
아이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는데 그때 당신이 내게 물었소.
이름이 무엇이냐고, 결혼하고 그때까지 내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었네
갑자기 수줍어져서 고개를 반쯤 숙였소.
-박소녀.
그때 당신이 웃었네..
- 나는 당신이 내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게 틀림없소이
당신에게 그토록 내 마음대로 해버린 걸 보면 말이요이.
짐자전거에 내 함지를 싣고 도망을 쳤어도 내가 찾아내버렸듯이 말도 하지 않고
당신이 곰소로 이사를 가버렸어도 난 당신을 찾아내버렸네.
- 곰소는 당신때문에 잊지 못할 곳이 되었재요.
나는 늘 감당하기 벅찬 일이 생겨야 당신을 찾았재.
그리고 내가 그만그만 평화로워졌을 땐 당신을 잊었고.
잊은 줄 알았소.
곰소로 찾아간 나를 보고 당신이 내게 한 말도 무슨 일이요? 였재.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 당신을 찾아간 건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오로지 당신을 찾기 이해 간 길이었네.
-
그때 한번 곰소로 도망친 거 빼놓고는 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주었네. 거기 있어줘서 고마웟소이.
그래서 내가 살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오.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당신을 찾아가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손도 잡지 못하게 해 미안했소.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 다가갔으면서 당신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으면 몰인정하게 굴었네.
생각해보면 참 나쁜 일이었네. 미안하구 미안허요.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랬고,
얼마 후엔 그래선 안 될 것 같아 그랬고.
나중엔 내가 늙어 있었소이.
당신은 내게 죄였고, 행복이었네
난 당신 앞에선 기품있어 보이고 싶었네
어딘가를 함께 가보자고 하는 말을 당신에게서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소이.
내가 당신을 다시 찾아가지 않은 게 그날 이후부턴가보오.
사실은 나는 그곳이 어딘 줄도 모르고 가고 싶지도 않으요.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데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데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 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하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지금 일어나는 일은 지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당신은 생각하오?
-
이제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
동무! 영혼의 동반자,
현실은 언제나 살아야 하고
존재해야 하는 곳이지만
영혼은 자유로울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이 아닐까.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얼마나 풍요로우며 여유로울 수 있는지.
땅에 있으나 하늘에 있을 수도 있는.
진흙밭에 있으나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그런 삶인 것이다.
--머리가 깨지게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찾지 않은 그 사람에게 또 가고 싶었어.
그러면 나을 것도 같았재. 그러나 가지않았어.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내 물건들을 정리했네.
내가 무감각해져 그 무엇도 알아보지 못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네.
내 손에 익은 것들을 내가 알아볼 수 있을 때 치워놓고 싶었재.
- 아 봄날 새싹들처럼 정신없이 솟아나는 이 기억들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겠네.
잊혀진 온갖 것들이 다 몰려오네. 부엌 살강에 엎어진 밥그릇이며.
장꽝의 크고작은 항아리들이며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다란 나무계단이며
흙담 밑에서 태어나 담장을 타고 무성히 뻗어나가던 호박덩쿨들까지.
--또다른 여인 중에서
에필로그 - 장미묵주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
엄마를 잃어버리고도 이렇게 내 아이들 밥을 챙겨먹이고 머리 빗기고 학교 보내고 있느라
제대로 엄마를 찾아나서지도 못하는 내가아주 낯설어.
엄마는 우리만 생각할 수밖에 없엇던 건 엄마 상황에서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무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언니,
감나무를 옮겨심느라 파놓은 구덩이 속에 그만 얼굴을 처박고 싶었어.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오빠는 용케도 엄마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던 말을 생각해냈다.
엄마는 조금만 기쁜 일이생겨도 감사허구나! 감사헌 일이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누군나누리는 사소한 기쁨들을 모두 감사함으로 대신 표현했다.
오빠는 엄마의 감사함들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고,
감사함을 아는 분의 일생이 불행하기만 했을리 없다고.
엄마가 더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는지..
너는 엄마를 잊지 말아달라고,
엄마를 가엾이 여겨달라고 말하고 싶어 여기에 온 것인지도.
그러나 막상 투명한 유리 저편 대좌에 앉아 창세기 이래 인류의 모든 슬픔을 연약한
두팔로 끌어안고 있는 여인상을 보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는지도
너는 넉을 잃고 성모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한방울 너의 감은 눈 아래도 흘러내렸다.
너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듯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사를 보려는 지 사제들이 줄을 지어 네 곁을 지나갔다.
너는 성당 입구까지 걸어나와 긴 회랑과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광장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에필로그 장미묵주 중에서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상 앞에서
큰딸이 화자가 되어 차마 피에타상앞에선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서 나오며 하는 말이
'엄마를 부탁해' 이다.
다시 읽으면서 워낙 토속적인 우리만의 것들이 사투리까지
생동감있게 묘사되어 있는데.
우리와 정서가 다를 수 밖에 없는
해외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진다.
어떻더라도 '엄마를 한번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고,
다르더라도 '부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기에
이책의 메세지는 알차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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