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or 여행 에세이

아름다운 집!

구름뜰 2011. 6. 2. 20:49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고 밤이 늦도록 /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가 어울리는 그런 여인이 사는 집을 다녀왔다.

 

중고생 시절 막연히 상상하며  줄줄 외던 시가,

이 집을 들어서 주인을 보는 순간 툭 튀어 나왔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시였다.

 

 

 

그저께 시 수업은 수강생 한 분이 퇴직 전 마련한 시골집으로 초대, 야외수업을 했다.

놀고만 싶었지만 그래도 교수님 쬐끔이라도 할일은 하고 놀아야 한다고 부드럽게 회유.ㅎㅎ

써온 시 첨삭 합평수업만 하고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고  꿀맛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가 놀러간 곳은 초대받은집  바로 아랫집이었다.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 집이 우리 모두를 부르는 듯 모두들 구경가기를 원했고,

집주인인 우리 일행 중 한분과, 형님 아우 하며 지내는 사이라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서울에 집이 있는 분인데.. 이곳은 고향이라며 한번씩 내려와 보름정도 머물다 간다고 했다. 

 

집주인이 허락해 주어서 구석구석 맘껏 담아 온 아름다운 공간 올립니다.

보여 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인테리어 미학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즐감하시길..

 

 

 

 

 

 

 

항아리를 유독 좋아하시는 분 같았다.

술도가 같은 곳에서 사들인 항아리라고 하는데 크기가 엄청났다.

 

시도 좋아하고,

꽃도 좋아하고,

군데 군데 주인장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장독대 뒤 불두화 꽃잎을 따서 깨진 항아리 위에 띄워둔 품새란,

이런 소박한 것들을 즐길 줄 아는 그 맛,

보는 맛에 비길까..  

 

 

 

어릴적 자란 곳이니 얼마나 편안할가.

방은 작고 지붕은 낮았다. 어머니 자궁속 같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어른 셋 넷 들어앉으면 꽉 찰것같은.

찾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어도

회귀하듯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은데,

여기서 서울이면 얼마나 먼 곳인가.

 

숙부님이 사시던 옛집을 사용하면서 마당만 손질을 했다고 한다.

아랫집 터까지 사들여서 정원으로 가꾸어 쓰고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와 닿으면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이 백장미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는데 들을 여가가 없었다. ㅎㅎ

 

 

사람이 가끔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았다

이렇게 바꾸고 싶다..

 

사람냄새가 듬뿍 나는 집.

차한잔 하며 한참 놀다가고 싶은,,

아니 주저 앉은 김에 며칠 쉬어 가고 싶은..

 

 

 

 

 

 

 

 

 

 

 

 

찔레꽃이 유독 많은 동네다.

끝물 찔레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아침에 꽃았다고 하는데

약탕기에다 꽂아놓았는데 찔레 꽃이

방갈로 등받에서 걸쳐누워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ㅎㅎ

 

 

 

흙에서 나온 소재들이라 그런지

깨진항아리대로도 운치있었다.

그저 그렇게 생긴대로 소중한 것,

어느 하나 이쁘지 않은게 없다.

 

자연물이어서 그런 것 같고,

그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였다.

 

 

저 뜰에 봉숭아가 필 때를 기다려

빠알갛게 물들인 손톱

손톱위에 핀 봉숭아는 그해 겨울 첫눈이

올때까지 설레임을 전해주는 꽃이었습니다.

 

기다림, 설렘이 들어있는 여운을 주는 문장이다.

이 집에서 누구를 기다린다면 기다리는 동안 오래 좀더 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한나절 쯤은 대수롭지 않게 화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집이다.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면

지상의 것은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지상이

천상같을 때가 더 많기도 하다. .

 

 

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가장 먼지 밀어 올리는 들꽃

그게 너 였으면 좋겠다.

 

삽작(고샅)에서 볼 수 있는 대문 옆에 있는 나무 담벼락 모습이다.

드나드는 문은 아니다.

대체로 돌담과 벽돌로 되어있었는데 이렇게 나무도 있었다.

어디에 커메라 렌즈를 들이대도

책 표지 같은 사진들이 나왔다.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둑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엣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우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갓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가.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들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김사인

 

이 시는 대문밖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빈 벽에 있는 시 인데, 지인이 알려준 시라고 한다.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기도 하고

잃고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사람있으면 차 마시러 오라고 했는데,

서예하는 지인이 내 얘기만 듣고도 흥분해서는

먹이랑 붓 준비해서 가자고 재촉한다.ㅎㅎㅎ

아름다운 것은 누가봐도 아름다울 터이니.. 이를 어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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